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2017년 4월의 봄날. 노병준(38)은 이렇게 작별을 고했다. 15년간의 현역 생활을 하며 묵묵하게 331경기의 출장 기록을 세웠던 '노뱅' 노병준다운 화려하지 않은 이별이었다.
대구 FC와 전남 드래곤즈의 경기가 열렸던 9일 대구 스타디움에서는 노병준의 은퇴식이 열렸다. 전광판을 통해 팬들에게 전하는 영상 편지를 띄운 그는 구단이 준비한 공로패와 꽃다발을 전달받고, 약 17초 동안 이어지는 팬들의 긴 박수를 받으며 그라운드를 떠났다. 그토록 사랑했던 푸른 그라운드를 떠나는 그의 얼굴은 힘겨웠지만 영광스러웠던 지난 세월이 스쳐 지나가는 듯 만감이 서려 있었다.
여러모로 의미가 있었던 은퇴식었다. 노병준은 2002년 전남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했고, 2017년 대구에서 현역을 마쳤다. 공교롭게도 이날 경기는 그의 시작과 끝을 지켰던 대구와 전남의 경기였다. 노병준은 "내가 대표팀을 왔다 갔다 했던 선수도 아니었고…. 이렇게 양쪽에서 큰 행사를 해 주셔서 감사하다. 아무나 이렇게 은퇴식을 열 수 있는 건 아니지 않겠는가"라며 거듭 감사 인사를 했다.
그는 K리그를 대표하는 '마당쇠'였다. 노병준은 전남과 포항 스틸러스, 울산 현대와 대구 등을 거치며 K리그 통산 331경기에 나서는 동안 59골 26도움을 기록했다. 충실하게 경기에 나서긴 했지만 공격수로서는 득점 기록이 다소 적은 편이다. 2006~2007년 오스트리아 그라츠 AK에서 잠시 뛰었던 시기를 고려하더라도 그는 막강한 화력을 자랑하는 화려한 공격수는 아니었다.
본인도 그 사실을 담담하게 인정했다. 노병준은 "솔직히 공격수로서 60골 남짓은 저조하다. 나는 개인기가 두드러지거나 피지컬로 상대를 압도하는 선수가 아니었다"며 "그래서 나는 화려한 선수보다는 11명의 팀원과 팬들에게 특별한 선수가 되기로 결심했다. 소소하게 특별했던 나를 사랑해 주신 팬들께 고맙다"고 했다. 노병준은 포항에서 뛰던 6년(2008~2013년) 동안 아시아챔피언스리그(2009년)와 K리그(2013년), FA컵(2008년·2012년·2013년) 우승컵을 모두 모았다. 모두 '화려하지 않았지만 특별했던' 그였기에 가능한 성과였다.
노병준의 아들 수인(11)군은 아빠를 따라 축구를 하고 있다. "그 힘든 걸 뭐 때문에 하려고 하는가"라며 뜯어 말렸지만 집에서 혼자 아버지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32·레알 마드리드)의 영상을 보며 축구 공부를 하는 아들의 열정을 막지 못했다고 한다. 노병준은 "아들에게 '너는 11명의 선수들과 함께 경기를 뛰고 있다'고 강조한다. 골도 중요하지만, 선수단 사이에서 꼭 필요한 선수가 됐으면 한다'고 말하고 있다"고 했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아직 K리그에는 노병준과 동갑내기 선수들이 많다. 이동국(전북 현대), 현영민(전남 드래곤즈), 정성훈(김해시청)은 여전히 현역 생활 중이다. 노병준은 "먼저 축구화를 벗어서 친구들에게 미안하다. 다들 다치지 않고 오랫동안 좋은 기록을 남겼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한편 노병준은 당분간 지도자 생활을 위해 차분하게 준비에 나선다. 그는 "지난 1월 B급 지도자 과정을 들었다. 그간 못 했던 축구 공부를 하며 지도자로서 인생 2막을 열 준비를 하겠다"고 힘줘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