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수'를 맡은 조광래(63) 대구 FC 사장은 이제야 마음이 놓인 듯 "그 봐라, 우리가 또 못 이길 팀도 없다고 안 했나"라며 호탕하게 웃었다.
개막 38일째. 간절한 '첫 승'을 이룬 지난 9일 밤 대구에서 였다. 대구는 이날 전남 드래곤즈를 물리치고 2017시즌 승격 뒤 마수걸이 승리를 거뒀다. 그동안 3번의 무승부(1패)로 승점 3점에 그쳤던 대구는 단번에 승점 6점째를 쌓고 7위로 도약했다.
조광래 사장은 40년이 넘는 세월을 오직 푸른 그라운드에서만 보냈다. 대구의 성장 뒤에는 지도자에서 행정가로 변신한 그의 헌신이 있었다.
일간스포츠는 이날 조광래 사장을 만나 대구를 비롯한 최근 K리그의 판도, 그리고 요동치는 '슈틸리케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한마디 한마디가 무척 조심스러웠지만 후배 지도자들이 쉽게 넘겨 서는 안 될 뼈 있는 말이 담겨 있었다.
◇ '슈틸리케팀'을 향한 조심스러운 걱정
조 사장은 2010~2011년까지 A대표팀을 맡았다. 그러나 브라질월드컵 3차 예선 레바논과 원정경기에서 패한 뒤 2011년 12월 갑작스럽게 대표팀을 떠났다.
그의 경질 배경을 두고 축구계에서는 이런저런 뒷말이 무성했다. 조 사장은 무소불위의 힘을 갖고 있던 대한축구협회를 향해 자신의 소신을 뚜렷하게 밝히며 소용돌이의 중심에 섰다.
1년 5개월. 비록 짧은 시간이었으나 한국 축구팬들은 '태극전사'들을 이끌던 그를 아꼈다. 상상 속에서나 등장할 것 같은 축구라며 붙여진 '만화축구', 젊은 자원을 수없이 발굴해 '조광래 유치원'이라는 애칭이 조 사장의 이름 뒤에 따라붙었다.
'티켓 파워'도 상당했다. 그가 대표팀 감독으로 재임하며 치른 9경기의 경기당 평균 관중은 3만9380명이었다. 이는 허정무(62)·최강희(58)·홍명보(48)·울리 슈틸리케(63) 감독까지 최근 9년 동안 대표팀을 맡았던 수장 중에서 가장 많은 숫자다. 물론 대진도 한몫 거들었겠지만 조 사장의 축구 색깔이 대중의 관심과 사랑을 받았다는 건 부인할 수 없다.
대표팀 감독으로서 산전수전 다 겪은 조 사장은 위태롭게 흔들리는 '슈틸리케팀'을 걱정하고 있었다. 슈틸리케 감독은 유임 결정이 난 뒤 해외로 출국해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와 독일 분데스리가를 지켜봤다. 주말 K리그 관전이 예정된 상황이었기에 슈틸리케 감독의 갑작스러운 출국은 다소 의외였다.
취재진에게 슈틸리케 감독의 출국 얘기를 건네 들은 조 사장은 "해외는 왜 나갔는가. 코치를 구하러 간 것인가"라고 물었다. 지금은 해외파를 점검하기보다는 하루라도 빨리 코칭스태프 전열을 가다듬어야 한다는 뜻으로 들렸다. 이어 "차두리(37) 전력분석관이 잘해 주고 있다. 후배들도 잘 따를 것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코치 개념은 아니었다"며 "대표팀에 (말이 통하는) 외국인 수석 코치가 필요할 듯싶다. (노력했는데) 구하지 못했다면 그건 무언가 문제가 있다는 뜻"이라고 덧붙였다.
한국은 러시아월드컵을 통해 9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에 도전한다. 본선행에 떨어진 기억이 거의 없기에 지금의 위기가 낯설다. 맞닥뜨린 문제를 해결하느라 대한민국 축구의 국제 경쟁력과 질적 발전은 생각하지도 못하는 형국이다.
"어찌 됐건 버텨서 (월드컵 본선에) 나가긴 할 것"이라던 조 사장은 잠시 생각에 잠긴 뒤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과정도 결과 못지않게 중요하다. 내용이 좋아야 한다. 긴 시간 팀을 이끌었다면 무언가 결과를 냈어야 했는데…."
◇ 2% 부족한 K리그와 대구
조 사장은 1970~1980년대 대표팀과 실업 축구의 간판 미드필더였다. 은퇴 뒤에는 대우 로얄즈와 수원 삼성, 안양 치타스(FC 서울 전신), 경남 FC 등 K리그 팀을 두루 이끌었다. 2012년부터 재야에서 유소년 축구를 돌보던 그는 2014년부터 대구의 대표이사 겸 단장으로 선임돼 행정가로 변신했다.
반열에 오른 지도자가 행정 실무 경험까지 갖추면 축구를 보는 눈이 더욱 깊고 선명해 질 수밖에 없다. 그런 조 사장에게 '대구의 5라운드까지 판도를 짚어 달라'라고 하자 손사래를 쳤다.
"글쎄…. 축구는 손현준(45) 감독이 하는 거지. 나야 뭐 아직 '조금 더 지켜보자' 하고 있다. 오늘(9일) 경기까지는 보려고."
이어 짐짓 아닌 척 한마디를 더했다.
"무언가 조금 부족하다. 다른 팀에 (경기력이) 뒤지는 건 아니고 잘하는데. 이제 막 클래식에 올라와서 적응을 못 해서 그런 것인지. 그 조금 부족한 부분을 신경 쓰고 보완해야지."
비단 대구의 일만은 아니다. '부족한 2%' 때문에 허덕이는 건 K리그 클래식도 마찬가지다.
최근 1부리그에는 무승부가 부쩍 늘어나는 추세다. 경기 질은 물론이고 흥행까지 책임져야 할 FC 서울과 수원 삼성이 시즌 초부터 고전하면서 경기장을 찾는 팬 숫자가 뚝 떨어졌다. 비교적 막대한 수준의 투자를 하는 팀들의 경기력이 떨어지면서 축구의 전반적 수준도 하향 평준화되고 있다는 우려도 흘러나온다. 국내 여러 정치적 사회적 이슈와 맞물린 분위기 탓도 없진 않다. 하지만 축구팬이 발길을 돌리는 원인 중 하나는 '재미없고 무의미한 승부'를 한 축구인에게 있다.
"요 근래 경기를 보면 무언가 조금씩 실망한다. 경기 내용들이 왜 다 그런지 모르겠다. 올 시즌에는 제주 유나이티드 정도를 제외하면 다 고만고만하다. 좋은 경기가 별로 없다. 이러려고 지도자들이 경기를 하는 건 아닐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