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백년이 넘는 시간동안 '영화배우'라는 한 길 인생을 걸었다. 출연작만 130여편에 달하고 포털사이트에서 필모그래피를 검색하면 무려 16페이지가 넘어간다. '안성기-영화=0'. 안성기 인생에서 영화를 제외한다면 과연 안성기는 무슨 이야기를 꺼낼까. 이는 다시 말해 안성기의 인생을 영화라는 한 단어 만으로도 표현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항상 안성기는 '영화만 하겠다'는 대쪽같은 목표는 있었다. 과거 인터뷰에서 안성기는 "배우로사 원리원칙은 영화만 하겠다는 것이었다. 연극, TV드라마 모두 하지 않고 영화만 하겠다는 다짐을 했었다. 물론 영화를 제외하고 다른 부분에서는 흐물하게 거절도 못하면서 살아왔지만 이상하게 영화만큼은 대쪽같이 지켜냈다. 그렇게 55년이 버텨지더라"고 전한 바 있다. 1957년 영화 '황혼열차'로 데뷔한 후 한 편 한 편 60년간 출연한 수 많은 영화들이 모여 지금의 안성기를 만들었다. 감히 어느 작품이 안성기의 대표작이라고 꼬집을 수 없을 정도다. '지금 당장 떠오르는 안성기의 대표작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돌아오는 대답 역시 분명 제각각일 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대 잊을 수 없는, 10년, 20년이 지나도 잊을만 하면 한 번씩 회자되는 안성기의 인생 걸작 5편을 뽑아봤다.
◇1984년 '고래사냥' 거지役 '고래사냥'(배창호 감독)은 1983년에 출판된 최인호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로드 무비다. 신군부 정권에 맞서는 민주화 운동이 한창이던 1980년대 어디론가 탈출하고 싶은 젊은이들의 심정을 속시원하게 대변해준 작품으로 손꼽힌다. 소외 계층의 마음을 제대로 저격시킨 이 작품은 당시 서울에서만 관객 43만 명을 동원하는 돌풍을 일으키기도 했다.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거지를 연기한 안성기는 20회 백상예술대상에서 남자연기상을 거머쥐기도 했다.
◇1993년 '투캅스' 비리경찰 조형사役 강우석 감독과 원조 브로맨스 안성기X박중훈 콤비의 전성기를 열어준 작품. 여전히 브로맨스를 논할 때는 '투캅스 뛰어 넘는 호흡 보여줄까'라는 문구가 공식처럼 쓰이고 있다. 한국 경찰 버디무비의 효시로 설명되기도 하는 '투캅스'에서 안성기는 부패 끝판왕 비리 경찰 조형사 캐릭터를 맡아 능청스러운 코믹 연기를 펼쳤다. 그의 원맨쇼 활약은 역시 수상으로 이어졌고, 안성기는 30회 백상예술대상에서 남자최우수연기상을, 32회 대종상에서는 박중훈과 함게 남우주연상을 공동 수상했다.
◇1999년 '인정사정 볼 것 없다' 범인 장성민役 죽기 전에 무조건 봐야 할 작품으로 손꼽히는 명작. 이명세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안성기X박중훈 콤비 플레이가 정점을 찍은 '인정사정 볼 것 없다'는 완벽한 분장술로 경찰을 따돌리는 살인사건의 범인과 강력반 형사들간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을 그린 작품이다. 안성기는 형사가 아닌 분장술의 귀재 범인 장성민으로 사람 좋은 이웃집 아저씨, 우편배달부, 국군장교 등 10여 가지의 완벽한 변장술을 통해 관객들을 현혹시키는데 성공했다. 끈질긴 추격 끝에 폐광에서 마주하게 된 안성기와 박중훈(우형사)의 빗속 사투는 빼놓을 수 없는 명장면으로 기록됐다.
◇2003년 '실미도' 김재현 준위役 "날 쏘고 가라" 한 마디로 설명되는 작품이다. 역사 속으로 사라질 뻔했던 684부대의 실화를 그린 작품 '실미도'(강우석 감독)는 2003년 개봉 당시 사회적 이슈와 맞물려 엄청난 반향을 일으키며 한국 영화 역사상 최초 1,000만 돌파 작품이라는 전설적인 기록을 남겼다. 충무로의 살아있는 전설 안성기는 설경구와 함께 천만 클럽에 입성한 첫 번째 배우로 명예를 더했다. 특히 극중 냉혹한 군인 김재현 준위로 분한 안성기는 수 많은 패러디를 양산시키며 여전히 회자되고 있는 역대급 유행어 "날 쏘고 가라"를 남기기도 했다.
◇2006년 '라디오스타' 스타매니저 박민수役 '라디오 스타'(이준익 감독)한물간 철없는 가수와 그의 매니저 사이의 우정을 그린 작품이다. 안성기는 '투캅스', '인정사정 볼 것 없다'에서 호흡 맞춘 박중훈과 다시 한 번 손 잡았지만 캐릭터부터 분위기까지 180도 다른 이미지 변신으로 이들이 왜 충무로 최고의 배우라 손꼽히는지 입증시켰다. 안성기와 박중훈의 깊이있는 우정이 돋보이는 영화. '타짜'에 밀려 흥행 성적은 다소 주춤했지만 평단의호평을 한 몸에 받으며 그 해 각종 영화제 시상식을 휩쓸었다. 안성기는 44회 대종상 영화제 남우주연상, 26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남우주연상, 27회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조연경cho.yeongyeong@join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