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구단 kt의 애칭은 '마법사(위즈)'. 그리고 kt에는 '너클볼의 마법사'가 있다. 투수 라이언 피어밴드(32)다.
너클볼은 공의 회전이 적다. 그래서 홈 플레이트 부근에서 불규칙적으로 떨어지거나 휘어진다. 포수조차 낙구 지점을 알 수 없을 정도로 흔들린다. 제구가 어렵고, 만족할 만한 변화를 주기도 쉽지 않다. 그렇기에 너클볼을 던지는 투수도 많지 않다. KBO 리그에서 너클볼을 구사한 투수는 김경태(은퇴)·마일영(한화) 정도다. 너클볼을 주 무기로 삼거나 타자에게 통할 만큼 완벽한 공은 아니었다.
피어밴드는 다르다.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너클볼러로 유명한 R.A 디키(애틀랜타)나 팀 웨이크필드(은퇴)처럼 구사 비율은 높지 않지만 충분히 주 무기로 삼을 수 있을 정도다. 변화가 심한 데다 KBO 리그에선 워낙 생소한 구종이기 때문이다.
한국 무대 3년 차 피어밴드는 지난 스프링캠프에서 너클볼을 집중 연마했다. 포구에 어려움을 겪는 포수와 호흡을 많이 맞추면서 더 자신감 있게 공을 던질 수 있게 됐다. 올 시즌 다승(3승)·평균자책점(0.36)·승률(1.000)에서 1위를 휩쓴 큰 이유가 너클볼이다. 시즌 세 차례 등판에서 총 25이닝을 소화했다. 지난 2일 SK전 2회 정의윤에게 솔로홈런을 맞은 게 유일한 실점. 이후 23이닝 연속 무실점 행진 중이다.
피어밴드는 영리하다. 또 노력한다. 지난 15일 LG전 등판 전엔 상대팀에서 자신의 너클볼에 준비했다는 기사를 직접 검색, 번역까지 해 이를 역이용하는 노력함도 보여 줬다.
- 'LG가 너클볼에 대비한다'는 기사를 봤다고 했는데.
"포털 사이트에서 직접 검색했다. LG가 너클볼에 대비한다는 걸 알았다. 그에 맞춰 경기 준비를 했다."
(kt 통역 담당자에 따르면 피어밴드의 한국어 실력은 특출나지 않다. 하지만 전자 기기에 자신의 한글 이름 '피어밴드'을 저장시켜 놓고 검색한다고 한다. 이후 기사 등을 찾아 번역 서비스를 이용해 정보를 얻곤 한다고 귀띔했다.)
- 올 시즌 너클볼 구사 비율을 크게 높였는데.
"예전부터 너클볼 구사에 대한 생각은 있었다. 하지만 15년 프로 생활 동안 던질 기회가 별로 없었다. 너클볼을 편하게 잡아 줄 포수가 없었다. 지금은 (포수 장성우가) 잘 잡아 주니 더 많이 던질 수 있다. 예전에도 캐치볼할 때나 재미로 던져 감각은 유지했다. "
- 장성우와 호흡은.
"너클볼을 잘 잡아 준다. 그래서 던지기에 더 편하다. 호흡도 굉장히 잘 맞는다. 지난 9일 삼성전 타격 도중 허리를 다쳐 굉장히 걱정했는데 포수로 호흡을 맞출 수 있어 마음이 놓인다."
- 너클볼의 성공을 예감했나?
"시즌 초반이라 성공이라 말하긴 어렵다. 하지만 더 잘 구사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전지훈련 NC와 연습 경기에서 5이닝 1실점을 기록했다. 그때 너클볼을 많이 던졌는데, 효과적이었다. 정규 시즌에서 잘 활용한다면 주 무기가 될 수 있겠다 싶었다."
- 아무래도 수비진의 도움이 필요할 텐데.
"우리팀 타격이 아직 많이 올라오지 않았지만, 마운드와 수비진이 좋아진 것을 100% 느낀다."
- 시즌 초반 성적이 굉장히 좋다.
"성적을 말하기엔 아직 이르다. 다만 스트라이크존이 넓어지면서 타자들이 적극적으로 반응한다. 삼진 비율은 좀 떨어질 수 있겠지만 맞춰 잡기 편하다."
- 최근 23이닝 연속 무실점 중인데.
"(손가락을 입술에 갖다 대며) 쉿! 외국에서는 선수가 잘하고 있을 때 기록과 관련해 언급하지 않는 징크스가 있다. 좋은 기록이 깨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웃음). 연속 이닝 무실점 기록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으려고 노력 중이다."
- 올 시즌 한층 좋아진 성적의 비결로 너클볼을 꼽을 수 있을까? "그런 면도 분명 없지 않아 있다. 하지만 너클볼과 함께 다른 구종의 제구력과 스피드도 향상시켰다. 지금의 좋은 성적을 계속 유지하려 노력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