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가지 이유로 닮은 점이 많은 에릭 테임즈(왼쪽)와 세실 필더. 에릭 테임즈(밀워키)는 과연 'KBO 리그판' 세실 필더가 될 수 있을까.
테임즈는 메이저리그 복귀 첫 시즌을 뜨겁게 보내고 있다. 19일(한국시간)까지 홈런 7개를 때려 냈다. 조지 스프링어(휴스턴)와 함께 메이저리그 공동 1위. 크리스 데이비스(오클랜드)·요에니스 세스페데스(뉴욕 메츠·이상 6개) 등 내로라하는 강타자들이 테임즈 밑에 있다.
18일 시카고 컵스와 원정경기에선 밀워키 타자로는 1997년 8월 제로미 버니츠 이후 처음으로 5경기 연속 홈런을 기록했다. 팀 기록 달성에는 실패했지만 19일 컵스전에선 이틀 연속 3안타를 때려 내며 쾌조의 타격감을 자랑했다. 아직 시즌 초반이지만 타율이 무려 0.426이다. 장타율(1.000)과 출루율(0.491)을 합한 OPS가 1.491로 메이저리그 전체 1위. 콘택트와 장타 모두 못하는 게 없다. '퍼펙트 타자'다.
시애틀 시절의 에릭 테임즈. 예상을 크게 웃도는 결과다. 테임즈는 '실패한 메이저리거'였다. 2011년 토론토에서 데뷔해 12홈런을 때려 냈지만 주전 자리를 확보하지 못했다. 2012년과 2013년에는 각각 시애틀과 볼티모어로 트레이드됐다. 2013년 9월 웨이버로 공시돼 휴스턴 유니폼을 입었다. 하지만 그해 12월 휴스턴은 테임즈를 버렸다. 메이저리그에서 갈 곳을 잃었다. 손 내민 곳은 KBO 리그 제9구단 NC였다. 테임즈는 2013년 12월 NC와 계약하며 태평양을 건넜다. 그리고 3년 동안 KBO 리그를 평정했다.
2014년 첫해부터 3년 연속 '타율 3할·30홈런·100타점'을 기록했다. 2015년에는 KBO 리그 역사상 처음으로 40-40 클럽에 가입했다. 한 시즌에 사이클링 히트 2회를 달성하며 리그 역사를 새로 쓰기도 했다. 2016년에는 40홈런으로 최정(SK)과 공동 홈런왕에 올랐다. NC가 2014년부터 기록한 팀 홈런 473개 중 26.2%인 124개를 혼자서 책임졌다. 결국 지난해 겨울 밀워키와 3년 총액 1500만 달러(171억3000만원)에 계약했다. 문자 그대로 '금의환향'.
롯데에서의 활약 후 미국으로 건너갔던 펠릭스 호세. 하지만 마이너리그 계약으로 메이저리그 출전을 보장 받진 못했다. 파격적인 조건이었다. KBO 리그에서 뛰었던 외국인 선수가 메이저리그 구단과 계약하는 사례는 꽤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 신분이 불안정한 마이너리그 계약이다. 1999년 롯데에서 최고의 타자로 군림했던 펠릭스 호세는 2000년 뉴욕 양키스에 입단했다. 하지만 메이저리거 신분이 보장되지 않은 마이너리그 계약이었다.
밀워키의 테임즈 영입을 두고 '무리한 영입'이라는 회의적인 반응이 이어졌다. 메이저리그 공식 사이트(MLB.com)는 테임즈 영입 소식을 전하며 "중대한 도박(Significant Gamble)"이라고 평가했다. 홈런왕 크리스 카터와 재계약을 포기하며 영입한 테임즈였다. 그래서 '돈을 아끼려는 계약'이라는 시각도 있었다.
여기에 재정 규모가 작은 밀워키는 아시아 지역에 고정 스카우트를 두고 있지 않다. 그럼에도 과감한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2017년 4월, 이 도박은 '대박' 조짐을 보이고 있다. 테임즈는 18일 컵스전이 끝난 후 "메이저리그에 돌아와서 기쁠 뿐이다. 메이저리그 투수들의 공을 보고 싶었고, 내가 어떻게 적응하는지 알고 싶었다"고 말했다. KBO 리그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은 테임즈는 훨씬 강해졌다. 3년 전의 '실패한 메이저리거'가 아니었다. NC 관계자는 "빠른공 대처가 관건이라고 봤는데, 복귀한 메이저리그에서 기대 이상으로 잘하고 있다"고 말했다.
1991년 디트로이트 시절의 세실 필더. 테임즈가 시즌 끝까지 순항한다면 KBO 리그 사상 최고의 '역수출'이 된다. 1990년 아메리칸리그 홈런왕 필더가 비슷한 사례다. 텍사스 1루수 프린스 필더의 아버지인 그는 1985년 토론토에서 메이저리그에 데뷔했다. 1988년까지 4시즌 역할은 백업 1루수·지명타자였다. 강타자 프레드 맥그리프와 윌리 업쇼에 밀려 기회를 잡지 못했다. 결국 눈길을 돌린 곳이 일본이었다.
한신 타이거스의 적극적인 구애를 받았던 필더는 105만 달러에 계약하며 미국을 떠났다. 전해 토론토에서 받았던 연봉은 12만5000 달러였다. 훗날 필더는 "돈보다 더 많은 기회를 얻기 위해 일본으로 갔다"고 말했다.
한신은 필더에게 풀타임을 보장하는 계약을 했다. 1989년 필더는 그해 타율 0.302에 38홈런과 81타점을 기록했다. 오카다 아키노부(24홈런)·마유미 아키노부(16홈런)와 함께 중심타선을 이루며 맹활약했다. 홈런왕은 주니치의 오치아이 히로미쓰(40개)에게 내줬지만, 인상적인 활약이었다. 필더의 38홈런은 요코하마 팀 전체 홈런(76개)의 딱 절반이었다. 필더는 일약 한신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엄청난 체격을 자랑했던 세실 필더 그를 주목한 이들은 태평양 건너에도 있었다. 디트로이트는 '실패한 메이저리거'였던 필더를 눈여겨봤다. 1990년 필더는 연봉 125만 달러에 디트로이트와 계약하며 메이저리그에 복귀했다. 일본 프로야구 38홈런 기록을 대단하게 여긴 이들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필더는 이해 홈런 51개를 때려 내며 최고 시즌을 맞았다. 1973년 이후 무려 27년 만에 나온 메이저리그 50홈런 기록이었다. 필더는 1991년에도 44홈런으로 2년 연속 아메리칸리그 홈런왕에 올랐다. 타이거스타디움 지붕 위로 타구를 올려놓는 초대형 홈런은 그의 트레이드마크였다.
일본에서 돌아온 필더는 180도 다른 타자가 됐다. 일본 진출 전 연평균 7.8개던 홈런은 32.0개로 늘었다. 필더가 일본에서 배워 온 건 인내심이었다. 한신 입단 전 필더의 타석당 볼넷은 8.2%, 삼진은 25.8%였다. 일본에서 돌아온 뒤론 각각 12.0%, 18.9%로 향상됐다. 이 점은 테임즈도 비슷하다. 타석당 볼넷은 2011~2012년 5.6%에서 올해 11.4%로 두 배가량 높아졌다. 테임즈가 KBO 리그에서 배운 건 칠 수 있는 공과 치지 않을 공을 고르는 능력이었다. 27년 전 필더도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