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국제축구연맹(FIFA) U-20 월드컵경기장 보수 공사 때문에 시즌 초반 안방인 전주월드컵경기장을 사용하지 못하게 된 전북 현대가 품고 있던 고민이었다. 전북은 U-20 월드컵 대회 개막 한 달 전후부터 종료까지 전주월드컵경기장을 사용하지 못한다. 이 때문에 시즌 초반 열리는 리그 7경기는 전주종합경기장으로 옮겨서 치를 수밖에 없었다.
전주종합경기장은 도심 한복판에 있어 입지가 좋지만 낙후된 시설 때문에 관중들을 불러 모으기 쉽지 않다. 평균 관중 수 1만 명 이상을 꾸준히 모았던 전주월드컵경기장 때와 상황이 달라졌다. 실제로 개막전은 2만 명이 넘는 관중이 찾았지만 점점 숫자가 줄어들었다. 관중을 모을 수 있는 아이디어가 필요했다. 고심하던 전북은 '원조 전주성' 전주종합경기장에서 뛰던 그때 그 시절의 기억을 되살린다는 의미의 '레트로 매치'를 기획했다.
1997년도, 1998년도 아닌 1999년을 선택한 데는 이유가 있다. 1999년은 전북에 의미 깊은 해다. 1999년은 지금의 전북을 있게 한 모기업 현대자동차가 구단을 직영 체제로 전환한 해이자 전북 서포터즈가 '매드그린보이즈(MGB)'란 명칭을 사용하기 시작한 해다. 그뿐 아니라 전북 유니폼 메인 컬러가 녹색으로 결정된 것도 바로 이때부터였다. 전북 현대 '다이노스'가 '모터스'로 바뀌기 전 보낸 마지막 시간이 바로 1999년이다. 전주종합경기장에 '복고 열풍'을 불러일으키기에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시간이었다.
'레트로 매치'의 상대는 포항 스틸러스로 결정했다.
월드컵경기장으로 돌아가기 전, 마지막으로 전주종합경기장에서 치르는 5월 27일 수원 삼성과 경기를 '레트로 매치'로 치르는 방안을 고려했지만 시즌 초부터 적극적으로 복고 마케팅을 실시했던 포항 쪽으로 의견이 기울었다. 이런 기획이 성사될 거라고 예감이라도 한 듯 마침 포항은 올 시즌 원정 경기마다 레트로 유니폼을 입고 뛰고 있었다.
'레트로 매치'는 포항으로서도 거절할 이유가 없는 제안이었다. 덕분에 홈팀과 원정팀이 나란히 1999년 유니폼을 입고 뛰는 색다른 풍경이 연출됐다. 양 팀 선수단이 옛 유니폼을 입고 나란히 경기장에 들어서는 순간 팬들의 환호성이 쏟아졌다.
팬들의 반응도 뜨거웠다. '올드팬'들은 옷장 속에 고이 간직했던 다이노스 시절 옛 유니폼을 오랜만에 꺼내 입고 경기장을 찾았다. 옛 유니폼을 입고 어린 아들과 함께 경기장을 찾은 서포터즈는 "결혼 전에 입었던 유니폼이라 사이즈가 작은 게 흠"이라며 웃고는 "오랜만에 옛날 유니폼을 입었더니 추억도 떠오르고 아들에게 보여 줄 수 있어 기쁘다. 유니폼을 다시 입어볼 수 있게 돼 행복하다"고 '레트로 매치'에 대한 감동을 전했다. 일부 서포터즈는 아예 레트로 디자인의 티셔츠를 맞춰 입기도 했다.
구단에도 레트로 유니폼 판매 문의가 쏟아졌다. 전북 관계자는 "레트로 유니폼을 원하는 팬들이 많다. 레트로 패키지 판매도 고려 중"이라고 귀띔했다. 기분 좋은 추억을 바탕으로 한 전북은 경기에서도 포항에 2-0 승리를 거두며 만족스러운 결과를 챙겼다. 이날 승리로 7경기 연속 무패(5승2무·승점 17)가 된 전북은 제주(4승2무1패·승점 14)를 밀어내고 선두에 복귀했다.
하나 아쉬운 게 있다면 '레트로 매치'에 대한 관심에 비해 1만 명을 넘지 못한 관중 수였다. 이날 전주종합경기장을 찾은 관중은 9105명으로 지난 상주전(7664명)에 이어 두 번째로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