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 초반을 지나 중반으로 향하는 KEB하나은행 K리그 클래식 2017의 얘기다. 득점왕(20골)에 오른 정조국(33·강원 FC)을 제외하면 지난 시즌 K리그 클래식 득점 상위권은 아드리아노(30·전 FC 서울)를 비롯해 티아고(24·전 성남 FC), 로페즈(27·전북 현대) 등 외국인 골잡이 천하였다.
17골을 넣은 아드리아노는 득점 2위, 13골의 티아고와 로페즈는 각각 3위와 5위를 차지했다. 이랬던 그들은 올 시즌 찾아볼 수 없다. 실력을 인정받은 아드리아노와 티아고는 거액의 연봉을 받고 각각 스좌장 융창(중국)과 알 와흐다(아랍에미리트)로 이적했기 때문이다. 또 로페즈는 무릎을 다쳐 복귀를 위한 재활 치료에 전념 중이다.
덕분에 지난달 4일 개막한 K리그 클래식은 포항 스틸러스 양동현(31·5골)과 상주 상무 김호남(28·4골)이 나란히 득점 선두와 2위를 달리는 등 한 달 반이 지나도록 토종 골잡이 세상이었다.
하지만 리그 7라운드(22·23일)부터 상황은 달라졌다. 그동안 잠잠했던 신구 외국인 골잡이들이 일제히 득점포를 가동한 것이다. 7라운드 6경기에서 나온 총 19골(자책골 제외) 중 외국인 선수가 기록한 골은 무려 14골이나 됐다. 외인 킬러들이 숨겨 둔 발톱을 드러내면서 득점왕 경쟁은 올 시즌 K리그 클래식 최대 관전 포인트로 떠올랐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 전설의 귀환
외국인 골잡이의 선두 주자는 서울의 간판 스트라이커 데얀(36·몬테네그로)이다. 그는 22일 인천 유나이티드전(서울 3-0 승)에서 시즌 4·5호 골을 쏘아 올리며 단번에 득점 공동 선두로 뛰어올랐다. 데얀의 골 장면에서는 '베테랑의 품격'이 드러난다. 전성기 시절에 비해 스피드와 힘이 떨어졌지만, 노련한 움직임으로 여전히 상대 수비수들을 농락하기 때문이다.
인천전 골은 그의 진가가 드러난 대표적인 경기다. 전반 36분 윤일록(25)의 패스를 가볍게 방향만 바꿔 득점으로 연결한 데얀은 후반 5분에는 상대 골키퍼가 펀칭으로 쳐 낸 공을 여유롭게 밀어 넣으며 골망을 흔들었다.
데얀은 K리그 역대 최고 골잡이로 꼽히는 '살아 있는 전설'이다. 득점 기록은 그의 모든 것을 말해 준다. 2007년 한국 무대에 데뷔한 데얀은 사상 최초로 세 시즌 연속(2011~2013시즌) 득점왕을 차지했다. 2014년 중국 슈퍼리그로 옮긴 데얀은 데뷔 시즌 15골(득점 5위)을 기록한 데 이어 2015시즌에도 16골(3골)을 몰아쳤다. 지난 시즌 국내 무대로 복귀해 13골(득점 6위)로 시즌을 마친 그는 이번 시즌 초반 예열을 거친 뒤 '왕의 귀환'을 알렸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 '트리플M', 공격 블록버스터 예고
제주 유나이티드 공격 삼격편대 '트리플M(멘디·마그노·마르셀로)'도 본격적인 '득점 전쟁'에 가세했다. 그중 장신 공격수 멘디(29·기니비사우)는 선봉장격이다. 지난 시즌 울산 현대에서 6골을 터뜨린 그는 올 시즌 제주 유니폼으로 갈아입었다. 큰 키(193cm)에 발재간까지 갖춘 멘디의 합류로 제주는 전북과 더불어 강력한 우승 후보로 떠올랐다.
하지만 그는 개막 후 6경기에서 이렇다 할 활약을 보이지 못했다. 그러자 3연승을 달리던 제주도 2무1패로 주춤했다. 이런 가운데 멘디는 이를 악물었다. 평소 몸싸움에서 밀리는 모습을 보인 그는 의식적으로 상대 수비들과 거친 몸싸움을 펼치는 등 조성환(47) 감독이 지휘하는 '제주식 축구'에 적응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보였다 .
땀방울은 22일 대구 FC전(제주 4-2 승)에서 결과로 나타났다. 멘디는 시즌 1호와 2호 골을 연달아 쏟아 내며 오랜 골침묵을 깼다. 멘디가 살아나자 동료들도 펄펄 날았다. 이 경기에서 마르셀로(32)와 마그노(29·이상 브라질)도 나란히 시즌 2호 골을 터뜨렸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 '제2의 데얀', 대거 멀티골 신고
데얀과 제주 공격 삼격편대 외에도 위협적인 '외인 해결사'가 대거 득점 신고를 마쳤다. 멀티골을 기록한 외국인만 해도 3명이나 된다. 전남 드래곤즈 공격수 자일(29·브라질)은 22일 울산 현대전(전남 5-0 승)에서 멀티골(시즌 2·3호)을 몰아쳤다. 올 시즌 초반 발목 부상을 극복한 그는 지난 시즌 전남에서 기록한 10골을 넘어서는 것이 목표다.
올 시즌 국내 무대를 밟은 대구 골잡이 레오(27·브라질)도 '포스트 데얀'을 꿈꾸는 외인이다. 그는 제주전에서 시즌 3·4호 골을 성공시켰다. 하지만 팀 패배로 빛이 바랬다. 외국 출신 '수트라이커'도 나타났다. '수트라이커'는 수비수와 스트라이커를 합친 말로 골 넣는 수비수를 뜻한다. 주인공은 수원 삼성 중앙 수비수 매튜 저먼(29·호주)이다. 그는 강원 FC전(22일·수원 2-1 승)에서 헤딩으로만 멀티골(시즌 1~2호)을 뽑아내며 팀의 시즌 첫 리그 승리를 안겼다.
토종과 외국인의 자존심을 건 '득점 전쟁'으로 올 시즌 K리그 클래식은 더욱 열기를 더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