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장훈이 형이 자꾸 전화해서 '꼭 잘해야 한다'고 당부하더라. 아무래도 (감독직으로) 오고 싶은 것 같다."
창원 LG 세이커스 신임 사령탑으로 선임된 현주엽(42) 감독이 수줍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어쩌면 연이 닿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감독직을 맡게 된 데 이어 수많은 축하 인사를 받는 상황이 얼떨떨한 듯했다.
"꿈 같다. 고향에 온 기분이다. 지도자 경험도 없는데 이렇게 좋은 기회를 주셔서 감사하다. 목표는 '봄농구'다."
그의 표정에는 지금의 기회를 꽉 붙잡아 성공을 이루겠다는 깊은 다짐이 실려 있었다.
LG는 24일 잠실야구장 내 미팅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현 감독의 제7대 사령탑 취임을 공식적으로 알렸다. 현 감독은 고려대를 졸업한 뒤 1998 신인 드래프트를 통해 청주 SK(현 서울 SK)에 전체 1순위로 지명됐다. 이후 광주 골드뱅크와 부산 KTF(현 kt)를 거쳤고, FA(자유계약) 자격을 획득한 2005년 LG 유니폼을 입었다. 4시즌 동안 197경기를 소화하며 2008~2009시즌을 끝으로 현역을 떠났다.
은퇴 후 그의 삶은 녹록하지 않았다. 지도자 수업 대신 개인 사업을 시작한 현 감독은 내내 안타까운 송사에 휘말리며 마음고생을 했다. 2014년에는 모든 걸 털고 한 방송사의 해설위원직을 맡았다. 이후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소탈한 매력을 자랑하며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 속에서도 그의 마음 한편에는 코트를 향한 열망이 있었다.
현 감독은 "현역 시절에 '원 없이 농구를 했다. 처다보고 싶지도 않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항상 그리웠다. 내가 제일 잘할 수 있고 많이 아는 것도 농구"라고 되새김했다. 이어 "지도자 경험이 없지만 은퇴 후 해설을 하며 선수 때보다 폭넓게 농구 흐름을 새롭게 배웠다. 선수들 지도하는 데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부족한 지도자 경험은 능력과 경험을 갖춘 지도자들과 함께 극복해 나갈 예정이다. 현 감독은 "많은 분들이 적은 경험을 걱정하신다. 구단과 상의해 코칭스태프를 선임할 때 지도자 경험이 있는 분들을 데려올 생각"이라며 "다른 종목이긴 하지만 야구에는 감독보다 나이 많은 코치가 있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분들도 고려해 보겠다"고 설명했다.
현 감독의 복귀로 남자 프로농구에는 '마지막 승부' 세대가 대거 집결하게 됐다. 그는 이상민(45) 서울 삼성썬더스 감독, 문경은(46) 서울 SK나이츠 감독 등과 함께 한국 농구의 절정기를 이끌었던 인물이다. 현 감독은 "지도자로 좋은 모습을 보여 주고 있는 선배들이다. 나는 아직 지도자 경험이 쌓여야 한다"면서도 "내 밑으로 장훈(43)이 형도 오고 싶어 한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의 감독 선임을 가장 축하해 준 이도 서장훈이라고 한다. 그는 "장훈이 형이 가장 많이 전화를 걸어 왔다. 통화를 끊으면 또 하고, 끊으면 또 걸더라. 늘 자기 말만 하는 스타일인데 '잘해야 한다'고 반복했다. 아무래도 감독으로 오고 싶어 하는 것 같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한편 현 감독은 비시즌 기간이 끝나는 오는 5월 25일까지 선수단 파악을 하며 다가올 시즌을 준비한다. 그는 "농구는 즐거워야 한다. 수비를 강화해 선수들의 개성을 살리겠다"며 각오를 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