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는 최근 트레이 힐만 SK 감독이 중용하는 1번 타자다. 지난달 27일 잠실 LG전부터 팀이 치른 10경기 중 9경기에서 1번 타자로 이름을 올렸다. 지난해까지 1군 기록이 전혀 없었던 선수. 파격적인 기용이다. 성적도 준수하다. 최근 5경기 타율이 0.429(21타수 9안타)다.
조용호의 야구 인생은 각본 없는 드라마 그 자체다. 2011년 8월 신인 드래프트에서 어느 팀으로부터도 지명을 받지 못했다. 그해 12월 독립구단 고양 원더스에 입단했지만, 불과 한 달 만에 방출됐다. 불운했다. 단국대 1학년 때는 경기 중 슬라이딩을 하다 어깨를 다쳤고, 4학년 때는 1루수와 부딪치며 오른 발목 인대가 끊어졌다. 발목 부상이 완쾌되지 않은 야구 선수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꼬리표처럼 달고 다닌 부상의 악순환을 끊어내지 못한 결과는 뼈아팠다.
2012년 3월 사회복무요원으로 병역 의무를 시작한 조용호는 야구를 잊고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했다. 복무 중 겸직 허가 신청을 내고 우유와 신문 배달을 했다. 중국집 주방에서도 일하며 생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그러면서도 야구에 대한 끈을 놓지 못했다. 2014년 3월 소집해제 후 개인훈련을 시작했다. 5개월 만인 그해 8월 SK에 육성선수로 입단하는 데 성공했다. 시작은 미약했지만 묵묵히 땀을 흘렸다. 지난해까지 1군에서 한 경기도 뛰지 못했다. 그의 모습이 힐만 감독의 눈에 들어왔다.
-1군에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데. "처음 1군에 올라왔을 때 주루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 내 장점이 스피드다. 다음이 수비, 마지막이 타격이었다. 중요하게 생각했던 수비에서 아쉬운 플레이가 계속 나와서 화가 난다. 타격이 잘 되고 있지만, 잘 맞는 날도 있고, 아닌 날도 있기 마련이다. 수비가 생각만큼 잘 안 돼서 답답한 마음이다."
-5일 고척 넥센전에선 타구 판단을 잘못해서 단타를 3루타로 만들어줬다. "판단을 확실하게 했어야 했는데 우물쭈물하다가 큰 실수를 했다. 판단 미스였다. 1군 경험이 있고 없고를 떠나 판단 자체가 잘못 됐다."
-평범한 내야땅볼을 쳐도 1루까지 전력질주를 하는 게 인상적이더라. "어릴 때 프로야구 경기를 보면서 양준혁 선배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투수 앞 땅볼을 쳐도 항상 열심히 뛰시더라. 난 힘이 좋은 선수가 아니다. 다만 주력은 좋은 편에 속하기 때문에 장점을 살리기 위해 뛴다. 내야 땅볼을 쳐도 열심히 뛰면 상대 실수가 나올 수 있다. 그것만큼은 시즌 내내 꼭 하고 싶다. 평범한 땅볼을 쳐도 전력으로 달리겠다."
-학창 시절에는 내야수였던 걸로 아는데. "야탑고 3학년 때 어깨가 아팠다. 그때는 유격수였는데 수비가 좀 터프하다는 평가를 들었다. 완전한 내야수는 아니었던 것 같다. 단국대에선 2루를 맡았다. 외야수는 SK에 입단한 뒤로 맡았다. 1군 내야진이 워낙 탄탄해서 비전이 없을 것 같아 포지션을 전환했다."
-신인 드래프트에서 지명 받지 못한 사연이 있다. "대학 졸업반 때 발목 부상을 당했다. 춘계 대회를 제외하곤 신인 드래프트가 열릴 때까지 경기에 나가지 못했다. 지명을 기대할 수 없는 처지였다."
-드래프트 뒤 입단했던 고양 원더스에서도 한 달 만에 방출됐는데. "발목이 완전하게 낫지 않았다. 제대로 뛸 수가 없었다."
-원더스에서 퇴단한 뒤 다른 일을 한 것으로 안다. "사회복무요원으로 군 복무를 했다. 병무청에 겸직허가 신청을 내 승인이 나면 아르바이트처럼 일을 할 수 있다. 일과가 끝나면 우유 배달, 신문 배달, 피자집 아르바이트까지 해 봤다. 중국집 주방에도 잠시 있었다."
-다시 야구를 하게 된 계기는. "원더스를 나왔을 때는 사실상 야구를 그만둔 상태였다. 소집해제가 한 달 정도 남았을 때였다. 야구가 정말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욕심이 생기더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아무 기약도 없이 은사인 김유진 단국대 코치께 전화를 드렸다. '운동이 너무 하고 싶은데, 같이 운동할 수 있을까요'라고 여쭸다. '해줄 수 있는 게 있으면 있으면 도와줄테니까 오라'고 하시더라. 감사하다."
-2014년 SK에 육성선수로 들어오게 됐는데. "단국대에서 같이 운동을 했던 선수 중에 이창재(kt)가 있었다. 창재가 제물포고 출신이라 SK 연고에 지명 후보였다. 김용희 SK 육성총괄과 송태일 스카우트가 드래프트를 앞두고 이창재를 보러 현장에 왔다. 내가 운동하는 모습을 보더니 테스트를 받겠냐고 하시더라. 물불 가릴 게 없는 상황이었다."
-올 시즌을 앞두고 1군 스프링캠프에도 합류하지 못했는데. "2군 대만캠프를 갔다. 거기서 (이)대수형과 훈련하면서 많은 걸 배웠다. 운동하는 모습이나, 후배들을 잘 격려하는 데서 본보기가 됐다. 정신을 다시 한 번 차리는 계기가 됐다. 나약해질 수 있었는데,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구나'하는 생각이 들더라."
-이대수와 함께 1군에 있으니까 의미가 남다르겠다. "지금도 수비 끝나고 더그아웃에 들어올 때면 가장 먼저 큰 소리로 내 이름을 불러주시곤 한다. 정말 감사드린다. 내가 SK에 처음 들어왔을 때 한화에서 트레이드 돼 오셨다. 그때 처음 만났다. 함께 2군에서 운동도 같이 하면서 많은 걸 가르쳐주셨다."
-1군에서 1번 타자를 맡고 있는데, 부담은 없나. "이젠 설렘이 크다. 감독님이 부담을 안 주시고, 즐기라고 하신다. 경기 전에 불러선 '어떤 압박도 받지 말라'고 말씀하시더라." -1군 초반에는 공을 최대한 많이 보려고 했는데, 최근엔 초구에도 배트가 나간다. "1군 경험이 없다보니까 처음에는 공을 많이 봐야 한다고 생각이 강했다. 테이블 세터인 1번 타자라 공을 많이 보는 게 중요했다. 하지만 공을 무작정 많이 보려고만 하니까 볼카운트가 몰렸다."
-팬들에게 어떤 선수로 기억되고 싶나. "최선을 다 하는 선수다. 어린 나이에 1군에 데뷔해 경기를 뛰는 친구들을 보면 부럽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다. 그래서 야구에 대한 절실한 마음이 있다. 열심히 하지 않을 수 없다. 어려웠던 시절을 생각하면 2군에서라도 야구를 하고 있다는 게 감사하다. 처음이나 지금이나 마음가짐은 똑같다. 매타석 절실한 마음으로 들어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