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제주 서귀포의 제주 유나이티드 클럽하우스에서 만난 조성환(47) 제주 감독은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는 "한 경기가 끝나면 곧바로 다음을 준비하는 것이 축구다. 딱 오늘까지만 이 기분을 즐기겠다"며 한 번 더 크게 웃었다. 평소 무뚝뚝하기로 유명한 '경상도 남자' 조 감독의 얼굴에 웃음꽃이 핀 이유는 올 시즌 '제주발 돌풍'이 K리그를 넘어 아시아로 향하는 중이기 때문이다.
제주는 전날 제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7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ACL) 조별리그 H조 최종 6차전에서 감바 오사카(일본)를 2-0으로 꺾었다. 승점 10점을 기록한 제주는 장쑤 쑤닝(중국·승점 15)에 이어 조 2위에 오르며 창단 후 첫 16강행에 성공했다. FC 서울·수원 삼성·울산 현대가 조별리그에서 탈락한 가운데 제주는 유일하게 16강에 진출하며 K리그 자존심을 지킨 것이다. 제주는 K리그 클래식(1부리그)에서도 선두를 질주 중이다.
이런 제주는 현역 국가대표는 물론 이동국(38·전북 현대)을 비롯해 염기훈(34·수원), 박주영(32·서울) 등 스타플레이어도 1명 없다. 그럼에도 제주는 압도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팬들은 '조성환 매직'이라고 부른다.
2015년 조 감독이 처음 지휘봉을 잡았을 때만 해도 제주는 약팀이었다. 2010년 정규 리그 '깜짝 준우승'을 한 것을 제외하면 대부분 중하위권이었다. 그가 넘어야 할 장애물은 많았다. 선수들은 뚜렷한 목표가 없었고, 자신감 저하로 강팀에는 어김없이 꼬리를 내렸다.
조 감독은 '원 팀 만들기'가 가장 시급하다고 판단했다. 그는 "좋은 팀을 만들기 위해서는 선수의 평소 생각까지 알아야 했다. 상대를 분석하고 팀 훈련을 지휘하는 시간 외에는 최대한 선수들과 보냈다"고 말했다. 숙소에서 마주친 선수와 '티타임'을 갖고, 3~4명 단위로 그룹을 만들어 '흑돼지 맛집'을 찾았다. 사석에서 만난 선수들은 축구는 물론 진로와 연애에 대한 고민까지 털어놨다. 조 감독은 "진솔한 이야기를 통해 선수들의 숨은 재능을 찾았고, 목표를 함께 설정했다"고 설명했다.
현역 시절 측면 수비수로 활약한 조 감독의 별명은 '악바리'였다. 상대 선수를 철저히 분석하고 나와 악착같이 막아 냈기 때문이다. 덕분에 조 감독은 연구를 통해 선수의 장단점은 물론 재능까지 파악하는 남다른 '눈'을 가졌다. 지난 시즌 영플레이어상(신인왕)을 수상한 안현범(23)은 조 감독의 철저한 분석이 만들어 낸 대표작이다. 작년 제주에 입단한 안현범은 뛰어난 스피드에도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 미드필더였다. 조 감독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단거리는 몰라도 30~40m 이상을 달려 (안)현범이와 겨룰 선수는 없었다. 장점을 최대한 살려 후방에서 단번에 상대 진영까지 돌파하는 측면 수비수를 권했다"고 밝혔다. 보직 변경은 대성공이었다. 안현범은 작년 8골 4도움을 올리며 웬만한 공격수를 압도하는 활약을 펼쳤다.
조 감독은 '밀당의 고수'다. 그는 고른 출전 기회를 통해 주전과 비주전을 구분 짓지 않는다. 실제로 이번 시즌 공식전 17회(리그 10경기·ACL 6경기·FA컵 1경기) 중 제주는 한 번도 선발 라인업이 같은 경우가 없었다. 선수들은 "훈련 때마다 일일이 선수들에게 '할 수 있다'고 격려해 주시는데 어떻게 포기할 수 있겠냐"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조 감독은 '과감한 기용'으로 백업 선수들의 신뢰를 얻기도 한다. 지난달 19일 김해시청과 FA컵 32강전에서 그는 주전급 2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후보 선수들로 채웠다. 당시 제주는 3연패를 기록 중이었다. 승부수는 통했다. 김해시청에 1-0 승리를 거두며 분위기 반전에 성공했다. 조 감독은 "외부에서는 우리팀에 스타가 없다고 하지만 내 눈에는 모두 필요한 선수다. 당근과 채찍을 번갈아 주는 것이 모두에게 동기부여가 된다"고 강조했다.
조 감독의 꿈은 올해 우승 트로피 하나를 들어 올리는 것이다.
"시즌 전 '실현 가능성 없는 목표'라며 비웃는 이도 있었다. 하지만 큰 목표를 설정해야 버금가는 목표를 이룰 수 있다. 더 철저히 연구하고 분석해 마지막에 웃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