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 리그 FA(프리에이전트) 시장에서 선발 투수는 ‘가격 대비 성능비’가 가장 나쁜 포지션이었다.
감독과 구단은 늘 투수에 목마르다. 수요는 많은데 좋은 투수는 드물다. 그러니 몸값이 비싸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투자의 결과는 좋지 않았다. 2012년부터 2016년까지 3년 이상 다년 FA 계약을 한 선수는 모두 59명이었다. WAR(대체선수대비승리기여) 1승당 비용은 선발 투수(6명)가 10억5600만원으로 가장 높았다. 그 다음이 구원 투수(17명)로 10억5100만원이었고, 포수(3명) 5억8200만원, 외야수(12명) 4억7000만원, 내야수(17명) 4억6100만원, 지명타자(4명) 4억5400만원 순이었다. 투수 FA 영입의 위험성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양상이 변하고 있다. ‘왼쪽’, 그리고 ‘앞’에서부터다. 2017년 FA 선수 중 투수는 모두 6명. 이 가운데 단연 두드러지는 투수는 KIA 양현종과 LG 차우찬이다. 양현종은 시즌 7경기 전승이라는 무시무시한 페이스다. 차우찬은 삼성에서 LG로 유니폼을 갈라입은 첫 해 7경기에서 42⅓이닝을 던지며 4승(2패)에 평균자책점 2.28을 기록하고 있다. 둘의 공통점은 ‘왼손 선발 투수’다. 또다른 왼손 선발 투수인 김광현은 팔꿈치 수술로 올시즌 등판하지 않는다. 하지만 소속 팀 SK는 2017년 시즌아웃을 감수하고 계약을 했다. 김광현의 계약에 대한 평가는 아직 이르다. 반면 오른손 선발 투수인 우규민은 5점대 평균자책점으로 부진하다.
‘왼손 선발 FA’의 강세는 사실 이전부터 있었던 현상이다. 첫 FA 시즌인 2000년 투수 4명(송진우, 이강철, 송유석, 김정수), 야수 1명(김동수)이 계약에 성공했다. 이 중 유일하게 성공한 계약의 주인공이 왼손 선발 송진우였다. 송진우는 계약 기간 3년 동안 41승을 거뒀다. 2006~2007년 두 번째 FA 계약 기간에는 10승에 그쳤다. 2007년 나이가 41세였다는 점에서 그럭저럭 제 몫을 했다.
2007년 전병호는 상대적으로 저가 계약을 했음에도 2년 14승으로 역시 평년작은 했다. 이후 왼손 선발 투수 FA는 한동안 나오지 않았다, 2014년 장원삼이 4년 계약으로 배턴을 넘겨받았다. 그는 첫 두 시즌 21승을 거뒀지만 3년째인 지난해 5승으로 부진했고, 올해도 고전 중이다. 반전은 두산이 2015년 영입한 장원준이 이뤄냈다. 장원준은 두 시즌 27승을 따내며 두산의 한국시리즈 2연패에 큰 공헌을 했다. 그리고 올해 양현종과 차우찬이 장원준의 성공을 재연할 기세다.
김광현을 제외한 왼손 선발 FA 6명 중 계약 기간 중 평균자책점이 개인 통산 기록보다 높았던 투수는 장원삼 한 명밖에 없다.
반면 오른손 선발 FA의 역사는 참담하다. 송진우와 같은 해 삼성과 FA 계약을 했던 이강철은 역대 최고 잠수함 투수다. 하지만 FA 계약 3년 동안 고작 8승에 그쳤다. 2001년 조계현은 그해가 은퇴 시즌이었고, 2002년 4년 계약한 김원형은 10승 시즌이 한 번 뿐이었다. 2004년 롯데 이상목도 4년 중 딱 한 시즌만 10승 이상을 했다.
2007년 박명환과 김수경, 2009년 손민한 계약은 ‘참사’ 수준이었다. 배영수는 2011년 첫 FA 계약(2년) 기간엔 18승으로 제몫을 했다. 하지만 2015년 한화와의 4년 계약 첫 두 시즌엔 4승에 그쳤다. 같은해 한화에 입단한 송은범의 계약 기간 평균자책점은 6점대다. 왜 오른손보다 왼손 투수가 성공 확률이 높을까. 샘플이 작기 때문에 단순히 개인의 능력 때문인지도 모른다. 송진우는 KBO 리그 최다승 투수이며, 양현종은 류현진, 김광현과 함께 선발 빅 스리에 꼽혔던 투수다.
하지만 야구는 왼손잡이에게 유리한 경기다. 타자들은 어려서부터 오른손 타자를 더 많이 본다. 왼손 투수의 시속 145km는 오른손 투수의 145km보다 더 위력적이다. 구위가 어느정도 떨어져도 오른손에 비해 버티기에 더 유리하다. 여기에 왼손 투수가 마운드에 있으면 1루 주자는 도루를 시도하기 어렵다. 숫적으로 많은 우타자의 타구를 수비하는 데도 유리하다.
FA 자격을 얻은 선발 투수라면 일정 수준의 구위, 제구력과 자기 관리 능력이 있다. 이런 FA 투수는 당연히 비싸다. 실패할 경우 리스크는 매우 높아진다. FA 계약을 앞두고 구단 프런트가 특히 눈여겨 봐야 할 점은 그 투수가 ‘어느 쪽 팔로 던지는가’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