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우륵, 고구려 왕산악과 함께 3대 악성으로 추앙받는 박연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은 황해도 개성이다. 아마도 박연폭포 때문일 것이다. 국사 시간에 배운 '송도삼절'이라는 것이 있는데 송도, 즉 지금의 개성에서 유명한 3가지를 뜻하는 것으로 기생 황진이, 화담 서경덕, 박연폭포를 일컫는다. 사람들은 박연폭포를 조선 세종 때의 문신이면서 궁중음악을 완성했던 박연과 관련 있는 줄 안다. 박연폭포의 박연(淵)은 송도에 있는 지명에서 따온 이름일 뿐이다. 그럼 박연(堧)의 고향은 어디일까. 충북 영동 심곡면이다. 영동은 박연이 태어나고 죽은 곳이기도 하다. 당연히 박연과 관련된 박연폭포도 영동에 있다.
박연이 태어난 국악의 고장
영동군에 들어서면 '난계'라는 단어를 자주 볼 수 있다. 국도 4호선 일부 구간을 '난계로'라고 부른다. 심천면 국악로에 가면 난계국악당도 있고 난계국악박물관, 난계국악기제작촌도 눈에 들어온다. 난계(蘭溪)는 바로 박연의 호이다.
[사진=난계 생가]
난계 생가는 심천면 국악로를 따라 고당리 방면으로 가다 보면 나온다. 물론 옛날 모습은 찾을 수 없고 새로 지은 초가와 기와집이 생가 터에 자리 잡고 있다. 박연은 계유정난 때 겨우 목숨을 건진 후 고향으로 내려와 죽을 때까지 생가에서 살았다고 한다. 그의 묘도, 그를 기리기 위한 사당(난계사)도 생가 인근에 있는 이유다.
국악로에는 난계국악박물관이 있다. 영동군에서 난계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지난 2000년 9월 만들었다. 서울 예술의 전당에 있는 국립국악원에 이어 전국에서 두 번째로 큰 국악 관련 박물관이라고 한다.
1층에는 국악실이 있다. 가야금을 비롯해 거문고 등 현악기 14종과 타악기 37종, 관악기 19종 등 100여 종의 국악기와 국악 의상이 전시돼 있다. 박연선생을 기리기 위한 난계실에는 그의 삶과 업적을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도록 그래픽 등으로 연출해 놓았다.
난계국악박물관에서 차로 5분 정도 가면 폭포가 하나 나온다. '진짜' 박연폭포다. 정식 명칭은 옥계리에 있다고 해서 옥계폭포이지만 마을 사람들은 박연과 관련된 이야기가 많이 전해져 온다고 해서 박연폭포라고 부른다.
"어릴 때부터 박연선생은 피리를 그렇게 잘 불었다고 합니다. 박연선생이 폭포 앞에서 피리를 불면 하늘에서 새가 모여들어 춤을 추었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유다향 영동군청 안내사의 설명이다.
또 박연은 폭포수 옆 바위틈에 아름답게 피어난 난초에 반해서 호를 난계로 지었다고 한다.
박연폭포는 생긴 것이 묘하다. 음기가 강한 폭포라고해서 음폭, 즉 여자폭포라고도 불린다.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자들이 박연폭포에서 음기를 듬뿍 받고 가면 아기를 갖는다는 믿어지지 않는 이야기도 전해져 온다.
대한민국 와인 1번지
영동은 일교차가 심해서 당도가 높고 맛이 뛰어난 포도의 주산지로 이름을 날렸다. 현재 전국에서 가장 많은 40여 곳의 와이너리가 있어 와인의 고장으로 불리기도 한다. 영동 읍내에 11곳, 학산면에 10곳 등이 있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와이너리도, 가장 큰 와이너리도 영동에 있다.
영동의 와인 역사는 196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컨츄리 와이너리 김덕현 사장의 할아버지인 고 김문환씨가 포도를 재배하고 가양주를 만들기 시작한 때부터다. 김씨는 태평양전쟁 때 남태평양의 미크로네시아 포로수용소에서 강제 노역을 했는데 이때 연합군 포로였던 스페인 병사로부터 와인 제조법을 배웠다고 한다.
영동 와인은 2000년대부터 전국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지난 2002년에는 당시 국가대표 축구팀 감독이었던 거스 히딩크가 와인 홍보대사로 위촉돼 영동 와이너리를 찾았고, 2008년에는 고 노무현 대통령이 컨츄리 와인 농장을 방문하면서 유명해졌다.
또 컨츄리 와인을 비롯해서 도란원 등 영동의 와이너리가 우리 술 품평회 등 각종 와인 페스티벌에서 대상 등을 수상하면서 국내 와인 애호가들로부터 사랑을 받기 시작했다.
국내 유일의 와인열차도 서울에서 영동까지 운행 중이다. 와인코리아와 코레일이 함께 운행하는데 열차 내에서 와인 강좌, 레크리에이션, 영화 상영 등 다양한 이벤트가 열린다. 와인코리아에 도착해서는 와이너리 투어와 시음, 와인 족욕 체험이 이어진다. 영동 국악체험촌도 방문, 우리 가락의 멋도 감상한다.
글·사진=이석희 기자
여행정보=서울시청에서 영동군청까지는 약 210㎞ 거리이며 자동차로 3시간쯤 걸린다. 군청에서 난계국악당·박물관·영동국악체험촌·생가·옥계폭포 등과 와이너리 등 영동의 명소까지는 차로 30분이면 닿는다. 영동국악체험촌에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다. 연주 체험(3000원), 제작 체험(미니 장구 2만원), 세계에서 가장 큰 북인 천고 타북 체험(3000원) 등을 할 수 있다. 영동군 관광안내소 043-745-77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