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0회 칸 국제 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된 '옥자(봉준호 감독)'이 19일(이하 현지시간) 프레스 스크리닝을 진행한 데 이어 20일 프랑스 칸 칼튼호텔에서 한국 취재진 간담회를 열었다. '옥자'는 넷플릭스가 제작·투자한 영화. 한국·미국·영국에서는 극장에서 상영하지만 이외의 국가에선 극장 개봉 계획이 없다. 전통적인 개봉 방식이 아니라 온라인스트리밍서비스를 통해 관객들에게 선보인다는 점에서 프랑스 영화계 반발을 샀다. 설상가상 19일 칸에서 프레스 스크리닝 때는 스크린 앞 천막이 반쯤 가려진 상태로 상영이 됐고, 결국 시작한지 8분 만에 상영을 중단하는 작은 소동까지 있었다. 이에 전세계 취재진과 영화인은 상영 초반 휘파람을 불거나 야유를 보냈다. 이곳 저곳에서 "스톱"을 외치기도 했다. 기술문제를 해결한 후에도 야유는 이어졌다. 재상영에서도 넷플릭스 로고에 대한 취재진의 야유는 이어졌다. 넷플릭스 로고에 엄지손가락을 거꾸로 드는 행위로 불만을 표현하는 영화인도 있었다.
상영이 끝난 후엔 환호와 기립박수가 더 컸다. 곳곳에서 터진 웃음과 눈물이 한데 엉킨 118분의 상영시간 후, 봉준호 감독을 비롯한 배우들은 만족함을 드러냈다. 칸으로 출국하기 전 "영화의 스토리 자체가 폭발적이고 많은 논쟁거리가 있을 것"이라고 했던 봉 감독은 이날 '옥자'에 대한 모든 질문에 상세히 답했다.
-제목은 왜 '옥자'라고 지었나. "김성수 감독님께서 '봉감독 다음 작품이 뭐야' 하시기에 '옥자입니다' 했더니 '내 어머님이 옥자인데' 하더라.(웃음) 실제 어머니 세대에 많이 있는 이름이다. 실제 옥자에게 죄송하지만 극한의 촌스러운 이름을 붙이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다. 미자도 극중 할아버지 변희봉 선생님이 붙인 이름이 아닐까. 그런 옥자란 이름의 동물이 뉴욕 맨해튼 한복판에 본사를 둔 다국적기업의 동물인 것이다. 안 어울리는 조합이다. 되게 안 어울리는 것을 섞어놓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사람들 반응이 '제목은 '옥자'인데 틸다 스윈튼 나오고 제이크 질렌할 나오고 뭐냐' 이런 질문을 초창기 들었다. 저는 오히려 그런 반응을 즐긴다. 가장 촌스런 작명. 그외에 상징적 의미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
-'괴물' 속 괴물의 이미지를 맡았던 크리쳐 디자이너 장희철은 옥자의 외양을 완성했다. 그런데 옥자의 생김새는 결코 사납거나 무섭지 않다. "옥자를 처음 머릿속에 상상할 때, 덩치는 큰데 내성적인, 억울하게 생긴 얼굴을 생각했다. '뭐가 억울하고 뭐가 슬플까. 누가 쟤를 힘들게 하는거야' 하면서 스토리가 발전되는 식이었다. 마이애미에 가면 매너티라는 동물이 있는데, 그 얼굴을 디자이너에게 줬다. 가장 수줍고 순하고 순둥이 같은, 남이 공격해도 당하기만 하는 억울하고도 순한 동물의 인상을 만들어보자고 생각했다. 돼지, 하마, 코끼리 등 여러 요소가 섞여있는데 얼굴 느낌은 순하게 생긴 매너티를 참고했다."
-배우 이정은은 옥자의 목소리를 맡았다. "뮤지컬 연기를 한다는 건 목소리를 콘트롤하는 탁월한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하루 종일 돼지 다큐멘터리를 봤다'고 하는 등 배우가 너무 깊게 몰입해서 미안했다. 감정을 실어가며 소리를 내야 하니 육체적으로 힘들었을 것이다. 메이킹 필름을 보면 감탄할 것이다. 이정은 덕에 섬세하게 녹음할 수 있었다."
-공장식 동물 교배와 야만적 도축 시스템을 직접적으로 비판하는 영화다. "자연의 흐름 속에서라면 인간이 동물을 먹는 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동물도 동물을 먹지 않나. 단지 지금의 형태 자본주의 체제에서 대량 생산을 위해 생긴 거대한 공장형 도살장은 문제다. 오랜 기간에 거쳐 인류가 고기를 먹었지만 자본주의 이전 시대에 인류가 고기를 먹는 방식은 필요한 만큼 먹는 것이었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었다. 지금은 애초부터 먹히기 위해 배치되고 키워지는 동물들이 공장 시스템의 일부가 돼서 고통 속에 자란다. 금속 기계 속에서 아주 빠른 속도로 분해된다. 인간의 원초적인 생존이 아닌 돈을 벌기 위한 것이다. 그런 것이 영화의 메시지와 관련이 있다."
-한국에서 투자를 받지 않고 넷플릭스와 작업했다. "500억 원이 넘는 부담스런 예산 탓에 한국 투자사와는 처음부터 접촉하지 않았다. 전체 한국영화 산업에서 돌아가는 돈이 있는데 내가 하면 동료, 후배 감독들의 50~60억짜리 영화 10편이 스톱되는 셈이기 때문이다. '설국열차' 때도 후배 프로듀서로부터 '민폐 말고 미국 가서 하라'는 농담 섞인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옥자'는 동료 선후배들, 전체 산업에 민폐를 끼치지 않고 할 수 있는 한 외국 투자자들과 하겠다고 생각했다."
-넷플릭스가 봉 감독에게 100% 편집권을 줬다. "넷플릭스는 이 영화가 원하는 예산도 제공하고 시나리오도 글자 하나 고칠 필요가 없다고 했다. 청소년관람불가 등급도 좋고, 피가 철철 넘치는 영화도 좋다더라. 이런 큰 예산의 영화를 100% 자유를 가지고 연출할 수 있는 드문 기회였다."
-극장 산업과 온라인 스트리밍 산업 간 갈등이 있다. "배급 형태로 갈 때는 여러 논란이 있고, 기존 극장 산업과 스트리밍 산업이 오픈 마인드로 타협해야 하는 면이 있지만 적어도 창작자들에겐 좋은 기회다. 노아 바움벡도 넷플릭스와 작업했고 토드 헤인즈도 아마존과 작업했다. 창작자들에겐 (새 플랫폼과의 작업이) 좋은 기회이니 긍정적으로 본다. 넷플릭스가 끝까지 그런 비전을 바꾸지 않고 100% 지원해줘서 이런 영화가 나왔다. 만약 넷플릭스와 하지 않았다면 '옥자'는 지금의 모습이 아닌 이상한 모습을 하고 있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