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의 '폭염'과 '원정 징크스'만 넘으면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중동의 말썽쟁이'로 떠오른 카타르의 정치적 상황까지 변수로 떠올랐다.
갈 길 바쁜 '슈틸리케팀'이 산을 오르기도 전에 진땀부터 빼고 있다. 울리 슈틸리케(63)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대표팀은 오는 14일(한국시간) 카타르와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예선 원정 8차전을 앞두고 있다. 8일 새벽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두바이에서 이라크와 평가전을 통해 컨디션을 조율한 '태극 전사'들은 카타르와 일전을 위해 10일 도하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 '말썽쟁이' 카타르…축구 올인 분위기?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이 생겼다. 카타르가 이슬람국가(IS) 같은 급진 테러 조직 지원을 한 '테러 불량국'으로 떠오른 것이다. 이에 사우디아라비아와 UAE, 바레인, 이집트 등 수니파 아랍권 7개국은 지난 5일 카타르와 전격 단교를 선언하고 일제히 카타르와 육로·선박 등의 왕래를 중단했으며, 카타르 항공사의 자국 영공 통과도 차단했다.
영토의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카타르로 가는 항공편이 막히자 한국 축구대표팀의 일정에 불똥이 튀었다. 원래 두바이에서 카타르의 도하까지는 직항편의 경우 1시간10분이면 갈 수 있다. 하지만 모든 항공편이 취소되면서 한국 축구대표팀은 쿠웨이트를 경유하는 일정을 새로 짰고, 결국 이동 시간이 4시간으로 늘어났다. 대한축구협회 관계자는 "당초 예정보다 출발을 조금 앞당기기로 했다. 비행 시간은 4시간이지만, 도하에 도착하는 시점은 애초 계획보다 1시간40분가량 늦춰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까지 대표팀 내 분위기는 동요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카타르에서 치를 예선 일정 자체에는 변동이 없을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이미 중국과 최종예선 6차전 때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로 인한 '혐한' 분위기를 겪었다는 점도 심리적 완충지대가 될 수 있을 전망이다. 대한축구협회 측도 "선수단 분위기는 전과 다름없다. 해외 원정경기를 다니다 보면 예기치 않은 일들이 일어나는 만큼 주어진 환경에 최선을 다한다는 입장"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문제는 복잡한 국제 정세 속에서 더욱 뜨거워진 카타르의 축구 열기다. 이번 최종예선 8차전은 주변국과 단교된 카타르가 가장 먼저 치르는 A매치다. 카타르 정부로서는 국내 정치 안정을 위해서 이번 경기 승리에 모든 걸 걸 수 있다. 안 그래도 한국 축구대표팀은 한낮에는 40도, 저녁에도 30도를 웃도는 극한의 환경을 견뎌야 하는 어려운 상황이다.
슈틸리케팀은 이 같은 카타르의 '특수성'과 '애국심'에 호소하는 편파적 응원도 견뎌 내야 한다. 이미 다른 경기에서 그 위력을 뼈저리게 느낀 바 있다. 단적인 예가 지난해 10월 열린 이란과 4차전이다. 당시 태극 전사들은 이란 자하디스타디움의 높은 해발고도와 극단적인 편파 응원 앞에서 완패를 당했던 경험이 있다.
그 사이 카타르는 차곡차곡 다가올 일전을 착실하게 준비했다. 카타르는 7일 카타르 도하의 자심 빈 하마드스타디움에서 열린 북한과 평가전서 2-2 무승부를 거뒀다. 내용은 썩 좋지 않았다. 홈팀인 카타르는 압델카림 하산과 알리 아피의 연속골로 2-0 리드를 잡았다. 하지만 후반 들어 급격하게 체력이 떨어졌고 연달아 두 골을 허용하면서 무승부에 만족했다.
카타르가 북한과 경기를 치른 자심 빈 하마드스타디움은 한국과 8차전이 열리는 바로 그 장소다. 경기 일주일 전 같은 경기장에서 실전 경기를 치르면서 적응을 완벽하게 마쳤다고 볼 수 있다.
◇ 카타르…월드컵 개최는 가능할까?
카타르의 꼬인 국제 정세는 한국 축구를 넘어 전 세계 축구계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카타르는 2010년 서아시아 국가 중에서는 최초로 2022 월드컵 개최지로 선정됐다. 카타르는 인구 약 230만 명의 소국으로 고온다습한 사막성 기후다. 여러모로 월드컵을 치르기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평가가 많았지만, 카타르는 개최지로 선택되는 데 성공했다. 그 과정에서 뇌물 스캔들이 불거졌지만 카타르 정부가 에어컨이 작동되는 돔 형식의 경기장 건설 등을 약속하면서 흐지부지 묻혔다.
그러나 이번 단교 사태로 경기장 건설에 빨간불이 켜졌다. 외국에서 충당해 온 노동자와 각종 건설자재를 들여올 길이 난망해졌기 때문이다. AP통신은 "카타르는 오래전부터 아시아 노동자들의 대규모 인력에 의존해 왔다. 2022 월드컵을 위한 건설도 예외가 아니다"면서 "20만 명이 카타르에서 일하는 필리핀 정부는 근로자 추가 배치를 중단시켰다"고 보도했다.
현재 2022 카타르월드컵에서 사용될 12개의 스타디움 중 완공된 곳은 칼리파 국제경기장이 유일한 것으로 알려졌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카타르에서 월드컵을 진행하는 것이 옳은가'라는 회의론이 불거지고 있다. 설령 경기장을 다 짓는다고 하더라도 7개국이 단교를 선언했고, 미국과 우방인 나라들이 카타르월드컵을 '보이콧'할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FIFA는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 아직 할 말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전 세계인을 하나로 모으는 지구촌 축제가 자칫 반쪽짜리로 치러질 수도 있기에 카타르월드컵의 개최 여부는 현재로선 미지수다. 실제로 월드컵 개최가 무효가 된 사례가 있다. 콜롬비아는 1986년 월드컵 개최를 승인받았지만 경제적인 이유로 개최권을 반납한 바 있다. 당시 콜롬비아가 포기한 월드컵은 멕시코가 가져갔다. 만약 카타르가 계속 IS를 지원하는 등 테러 지원 국가로 치닫는다면 FIFA도 다른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