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에서 끝내기 홈런만큼 짜릿한 게 있을까? 팬들에게 환상과 카타르시스를 주는 화려한 마침표인 끝내기 홈런은 야구의 해피 엔딩이다.
2003년 10월 16일 뉴욕의 양키스타디움. 영원한 숙적 보스턴 레드삭스와 뉴욕 양키스의 ALCS(아메리칸리그챔피언십시리즈) 7차전 경기는 11회말 애런 분의 끝내기 홈런으로 마무리됐다. 양키스 팬들에게는 멋진 가을 밤이었고 삭스 팬들에게는 또 하나의 쓰라린 추억이었다.
손에 땀을 쥐게 한 명승부를 끝까지 지켜본 수많은 야구팬들 중에는 텍사스 레인저스 유격수 알렉스 로드리게스도 있었다. 로드리게스는 그 끝내기 홈런을 집에서 보며 결심했다고 한다. 자신도 저 라이벌 전통의 일부가 되겠다고.
로드리게스는 역사상 가장 많은 연봉을 받은 야구 선수다. 그는 2000년 시즌 종료 후 텍사스와 역대 최대 규모인 10년 2억5200만 달러에 계약했다. 뛰어난 파워와 스피드를 겸비하고 공수에 모두 능한 로드리게스는 그 천문학적인 액수를 충분히 받을 만한 선수였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다. 선수단 연봉 총액의 30% 이상을 한 선수에게 몰아준 레인저스는 균형을 잃고 말았다. 로드리게스의 특출한 개인 성적에도 불구하고 레인저스는 그가 합류한 첫 3시즌 동안 단 번도 팀 승률이 5할을 넘기지 못했다. 성적이 죽을 쑤자 구장을 찾는 홈 팬과 구단 수입은 급격히 줄어들었다. 한 마디로 레인저스의 멍청한 경영 판단이었다.
결국 2003년 시즌이 끝나자, 레인저스측은 구단의 재정 상태를 실토하며 로드리게스에게 트레이드 되고 싶은 팀이 있는지 물어봤다. 로드리게스는 주저없이 삭스와 양키스를 언급했다. 억만 달러를 받는 슈퍼스타도 이기는 팀에서 뛰고 싶었고,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를 끼고 싶었다.
뉴욕에서는 로드리게스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양키스는 이미 주장 데릭 지터가 유격수 자리를 꿰차고 있었다. 경기력 면에서는 로드리게스가 우월했지만 양키스의 얼굴인 지터를 대체할 수는 없었다. 보스턴 역시 노마 가르시아파라라는 간판 유격수가 있었지만, 사정이 조금 달랐다. 삭스 프런트는 당시에 이미 전성기에서 하향길이던 왕년의 스타 가르시아파라에 집착하지 않고 있었다.
2003년 11월 28일, 삭스는 양키스가 눈독과 공을 들였던 투수 커트 실링을 영입했다. 하루 빨리 2003년의 아쉬움을 털고 다음 시즌을 준비하겠다는 삭스의 선전포고였다. 세간에서는 2003년 월드시리즈 우승에 실패한 두 라이벌이 냉전시대를 방불케 하는 ‘군비 경쟁’을 벌이고 있다고 떠벌렸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2003년 두 팀의 연봉 총액만 봐도 알 수 있다. 삭스가 1억500만 달러에 미치지 못한 반면, 양키스는 1억8천만달러를 넘었다. 두 팀의 재력은 애초에 비교 대상이 아니었다.
삭스 단장 테오 엡스타인은 빠듯한 팀 예산 범위 내에서 로드리게스를 최대한 배려할 수 있는 대안을 찾으려 했다. 재무팀과 변호사들을 총동원해 ‘현실적인 대안’을 어렵게 마련해냈다. 보스턴은 그 제안을 메이저리그 총재 버드 셀릭에게 보고했고, 셀릭은 삭스가 로드리게스와 72시간 동안 협상할 수 있도록 허락했다.
엡스타인은 뉴욕으로 날아가 로드리게스를 한 호텔방에서 만났다. 삭스의 예산을 솔직히 설명하고 로드리게스에게 잔여 연봉 재조정에 대한 양해를 구했다. 로드리게스는 엡스타인이 가져온 ‘현실적인 대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로드리게스는 보스턴을 우승시키고 테드 윌리엄스처럼 도시의 전설이 돼 훗날 명예의 전당에 삭스 유니폼을 입고 들어가는 모습을 상상할 정도로 긍정적이었다고 한다.
엄청난 성과를 거둔 삭스는 곧바로 로드리게스가 서명한 ‘조정’ 트레이드 계약서를 메이저리그 선수노조에 넘겼다. 언론은 로드리게스의 보스턴행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며 삭스팬들을 흥분시켰다.
며칠 후, 노조는 삭스와 로드리게스의 ‘조정’ 계약을 승인할 수 없다고 발표했다. 노조와 구단주 사이 체결된 단체협약(CBA) 원칙에 따라 조합원은 ‘금전적인 손해’를 감수하며 기존 계약을 수정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노조는 2억5200만 달러 계약 중인 ‘갑부’ 로드리게스가 자발적으로 연봉을 재조정하는 선례를 남기면 나중에 다른 선수들이 금전적인 피해를 입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보스턴 팬들은 물론, 로드리게스라는 애물단지의 출구전략을 애타게 찾던 레인저스는 실망을 금치 못했다. 자발적으로 자신의 수입을 어느 정도 포기하면서 원하는 팀에서 야구를 하겠다는 선수의 진로를 가로막는 노조에 대해 로드리게스와 많은 이들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노조는 조합원들이 착취를 당하지 않기 위해 만들어진 집단이자 독립체이다. 조합원들의 금전적인 이해를 극대화하는 것이 우선 목적이 아니다. 노조의 불가 판정은 야구의 본질에서도 많이 벗어난 것 같았다.
로드리게스 트레이드 소동극은 그렇게 2003년과 함께 사라져 가는 것 같았다. 그러다… 2004년 1월 16일에 웃지 못할 황당한 뉴스가 메이저리그를 뒤흔들었다. 정확히 석 달 전에 ALCS 7차전 끝내기 홈런을 쳤던 양키스 3루수 분이 친구들과 농구를 하다 무릎을 크게 다쳐 병원에 실려갔다. 스프링트레이닝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 날벼락을 맞은 양키스는 재빨리 로드리게스에게 물었다. "혹시 포지션을 3루로 바꿔볼 생각이 없는가?"
2004년 2월 15일, 로드리게스는 양키스로 트레이드됐다. 레인저스는 로드리게스의 잔여 연봉 1억7900만 달러 중 6700만 달러를 지급하기로 합의하고 뉴욕에서 알폰소 소리아노와 호아킨 아리아스를 데려갔다. 로드리게스는 포지션 뿐만 아니라 평생 써온 등번호 3번(베이브 루스의 영구 결번 등번호)을 13번으로 바꿔야 했다. 로드리게스가 다른 팀도 아닌 양키스로 갔다는 소식에 쇼크를 먹은 보스턴 팬들은 ‘밤비노의 저주’가 변형돼 돌아왔다고 낙담하며 2004년 시즌을 걱정했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가장 비싼 선수와 양키스의 만남은 과연 해피 엔딩이었을까.
로드리게스가 야구 역사상 위대한 선수 중 한 명이라는 사실에는 이견이 없다. 그의 통산 기록과 로드리게스가 2007년말 양키스와 체결한 10년 2억7500만 달러라는 어마어마한 계약이 이를 증명한다. ‘양키스 돈지랄의 끝판왕’이라고 볼 수 있는 이 계약은 기존에 로드리게스가 갖고 있던 메이저리그 연봉 기록을 갱신했다.
하지만 로드리게스의 양키스 커리어는 우아하지만은 않았다. 우선 2004년 ALCS와 월드시리즈의 승자는 양키스가 아닌 레드삭스였다. 그 후에도 양키스 유니폼을 입은 로드리게스는 유난히 가을야구에서 부진을 면치 못했다. 한때 그의 별명은 ‘A Rod’(막대기)가 아닌 ‘A Fraud’(사기)가 되기도 했다. 그가 그리도 원했던 월드시리즈 우승은 단 한 차례밖에 못했고, 약물 복용과 같은 불미스러운 스캔들로 곤욕을 치뤄야 했다. 로드리게스는 경기력 향상 약물 복용을 시인하며 천문학적인 연봉을 받는 선수로서 늘 경기력에 대한 압박감을 안고 있었다고 고백했다. 작년에 은퇴한 로드리게스가 쿠퍼스타운에 갈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프로야구 관계자들은 늘 입버릇처럼 말한다. 산업 수요자인 팬들이 제일 중요하고, 팀 구성원인 선수들이 최우선시 돼야 된다고.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대부분의 트레이드는 팬들과 선수들의 의사와 무관하게 이뤄진다. 공동체의 ‘주체’로부터 권한을 위임 받은 ‘대리인’은 ‘주체’의 이해관계를 위해 일해야 되지만, ‘대리인’들은 ‘주체’의 이득이 아닌 ‘대리인’의 목적을 위해 일하며 ‘주체’의 이해와 충돌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주체-대리인 문 제’(Principal-Agent Problem)는 정부가 국민을 배신하고, 경영자가 주주를 무시하고, 조합이 조합원을 위해 일하지 않는 사례들을 통해 종종 볼 수 있다. 메이저리그 역시 예외가 아니다.
2003년 ALCS의 끝내기 홈런을 보고 어린 아이처럼 흥분한 로드리게스는 오래 된 전통의 일부가 돼 정말로 멋진 야구를 하고 싶어했다. 그러나 그의 미래는 그런 희망과 다르게 흘러갔다. 로드리게스의 꿈은 왜 해피 엔딩으로 끝날 수 없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