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김대유(26·SK)가 하비에르 로페스(40·전 샌프란시스코)의 길을 따라갈 수 있을까.
지난 시즌을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한 로페스는 메이저리그 통산 839경기(역대 42위)를 뛴 베테랑이다. 2010년과 2012년 그리고 2014년 샌프란시스코의 짝수해 월드시리즈 우승을 이끈 주역 중 한 명. 2015년에는 77경기에 등판해 39⅓이닝을 소화했을 정도로 왼손타자에 특화된 왼손 불펜이다. 화려함은 없었다. 스피드건에 찍히는 직구 평균 구속은 86마일(138.4km)로 웬만한 선수들의 변화구 속도였다. 하지만 무기가 하나 있었다. 바로 투구폼이다.
버지니아대를 졸업한 로페스는 1998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4라운드 지명(애리조나)을 받은 후 마이너리그 싱글A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결과가 최악에 가까웠다. 1998년부터 2년 연속 6점대 평균자책점을 찍었고, 상위 싱글A에서 뛴 2000년에는 평균자책점이 5.22로 높았다. 답답했던 로페스는 2002년 스프링캠프 때 팀의 선배 마이크 마이어스를 찾아가 조언을 구했다. 마이어스는 리그를 대표하는 중간 계투로 왼손 사이드암이라는 특화된 투구폼을 갖고 있었다.
20대 초중반의 로페스는 장점이 없었다. 구속은 88~92마일(141.6~148.1km)에 형성됐다. 평범한 왼손 오버핸드로 커브볼과 체인지업을 구사했다. 스스로가 "마이너리그의 레벨을 밟고 올라갈 수 있는 일관성이 없다"고 말할 정도였다. 고민을 거듭한 로페스는 마이어스에게 지도를 요청하고, 팔각도를 내리는 결단을 내렸다. 그리고 이 선택은 로페스의 야구 인생을 바꿨다. 투구폼 수정 1년 만에 빅리그 무대를 밟았고, '스승' 마이어스(통산 883경기)와 비슷한 839경기를 뛰고 유니폼을 벗었다.
김대유가 꿈꾸는 '반전'도 비슷하다. 2010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3라운드 넥센 지명을 받은 김대유는 2013시즌 후 2차 드래프트를 통해 SK 유니폼을 입었다. 하지만 그의 1군 기록은 올 시즌 전까지 2014년 9경기(1패 평균자책점 10.03)가 전부였다. 사실상 전력 외로 분류됐던 그는 지난해 겨울 혹독하게 투구폼을 수정하는 변화를 줬다. 왼손 오버핸드에서 릴리스 포인트를 내리면서 스리쿼터로 바꿨다. 왼손타자 기준으로 공이 등 뒤에서 날아오는 느낌을 들게 했다.
그는 "왼손타자 공략을 확실하게 하려고 했다. 지난해 겨울부터 준비를 했는데 의외로 나한테 잘 맞는 투구폼이다. 김경태, 제춘모 코치님께서 지도를 잘 해주셨다"고 말했다. 변화는 우연한 기회에 왔다. 갑작스럽게 목에 담이 왔고, 고개가 잘 안 돌아가는 상황에서 피칭을 시도하다 자연스럽게 팔각도가 내려갔다. '이거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어 유형이 비슷한 크리스 세일(보스턴)을 비롯한 왼손 투수 영상을 찾아 몸으로 익혔다.
처음에는 적응에 애를 먹었다. 김대유는 "변화구를 던지는 게 어려웠다. 그런데 대만 2군 캠프(2월 14일~3월 11일)에서 잘 맞아 떨어졌다"며 "컨트롤이 문제였는데 지금은 많이 좋아졌다"고 만족감을 나타냈다. 작은 결실도 맺었다. 시즌을 2군에서 시작했지만 지난 7일 무려 1024일 만에 1군에 올라왔다.
트레이 힐만 SK 감독은 "좋은 활약을 했으면 좋겠다. 효과적으로 스트라이크를 던져줬으면 한다.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다"고 기대했다. 현재 김대유는 커터와 슬라이더, 체인지업, 투심을 다채롭게 구사한다. 간절함은 보이지 않는 동력이다. 그는 "연차가 적지 않기 때문에 팀에서도 기다려줄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을 거다. 생존 같은 느낌이랄까. 마지막에 변화를 시도하지 않나. 마지막이 될 수 있으니까 해볼 수 있으면 해보자는 생각이다"고 말했다.
로페스의 장점 중 하나는 적극성이었다. 훗날 마이어스는 미국 스포츠 전문채널 ESPN과의 인터뷰에서 "로페스는 정말 많은 질문을 했다"고 회상하기도 했다. 김대유는 "처음 야구를 하는 기분으로 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신호등이 켜졌을 때 악셀레이터를 밟아야 한다. 지금 아니면 언제 밟아보겠나"라고 너털웃음을 지었다.
김대유가 다른 왼손 투수보다 낮은 릴리스포인트에서 공을 놓는다. 그가 그리는 두 번째 야구인생의 출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