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광양축구전용구장에서 열린 KEB하나은행 K리그 클래식(1부리그) 14라운드 전남 드래곤즈와 전북 현대의 맞대결. '호남 더비'로 치러진 이날 경기는 전북이 전반에만 3골을 몰아치며 3-0 대승을 거뒀다. 그러나 전북 관계자의 얼굴에는 완승의 기쁨을 찾아볼 수 없었다. 선수단이나 벤치도 마찬가지였다. 승점 3점으로 희석시킬 수 없는 무거운 분위기가 전북 선수단 전체를 감싸고 있었다. 이날 경기를 앞두고 벌어진 안타까운 사건 때문이다.
지난 16일 전주월드컵경기장 내 사무국 근처 관중석 통로에서 스카우트 A씨가 목을 매 숨져 있는 것을 구단 직원이 발견했다. 사망한 A씨는 지난해 심판 매수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은 전북의 스카우트다. 그는 유리한 판정을 해달라는 청탁과 함께 주심에게 수백만원을 건넨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징역 6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이 사건으로 A씨는 직무정지 처분을 받고 전북을 떠났다. 그리고 사건 후 약 1년 만에 경기장에서 생을 마감했다.
누구보다 침통한 이는 당연히 최강희(58) 감독이다. 경기 전에 만난 최 감독은 취재진의 질문에 평소와 같이 답변하다가도 이번 일에 관한 얘기가 나오자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경기 중에도 마찬가지였다. 평소 무표정한 포커 페이스로 유명한 최 감독이긴 하지만 이날은 전반에만 3골을 몰아치는 화력쇼에도 굳은 얼굴을 풀지 않았다.
사건 이후 "고인이 최 감독을 만나러 나간다고 한 뒤 돌아오지 않았다"는 보도가 나오는 등 '최 감독 연루설'이 불거져 입장도 한층 난처해졌다. 그래서인지 최 감독은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관련 질문이 나오자 "경찰에 있는 그대로 이야기했다. 누굴 만나고 그런 부분들은 나중에 다 밝혀질 것이라 생각하고 지금 이 자리에서 얘기하는 것은 불필요한 것 같다"고 털어놨다. 이어 "지금 뭐라 표현하기 어려운 심정이기 때문에 이해해 주시길 바란다"며 침통한 표정을 지었다.
갑작스러운 비보에 전북 구단도 안타까움과 난감함이 교차하는 모양새다. 광양에서 만난 전북 관계자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고 조의를 표한다"고 애도의 뜻을 전하면서도 "이런 경우가 처음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혼란스러운 상황"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고인이 불미스러운 일로 팀을 떠난 만큼 추모는 물론이고 유가족들에 대한 예우 같은 부분들도 선뜻 처리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사건 자체도 아직 종결되지 않았다. 전주 덕진경찰서가 수사 중에 있으며 유가족들도 장례를 치르느라 경황이 없어 구단 측과 자세한 얘기를 나누지도 못했다. 전북 관계자는 "이번 일의 추후 처리 문제에 대해서는 아직 구체적으로 논의를 하지 못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일단 백승권(56) 단장을 비롯한 임원들은 빈소가 차려진 16일 곧바로 전북대병원 장례식장을 찾아 조문했다. 17일 광양 원정경기를 위해 하루 전날 이동해야 했던 선수들과 코칭스태프는 원정이 끝난 뒤 개별적으로 빈소를 방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북 관계자는 "이동국 등 베테랑 선수들 중에는 평소 고인과 친분이 두터웠던 이들도 많아 침울해 하고 있다"고 귀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