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는 우주의 중심이고 천체는 지구 주위를 돈다'는 도그마를 '상식'으로 받아들이는 이들이 있다. 세상이나 과학이 뭐라고 하든 조상 대대로 지켜 온 '과거의 중력'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고방식을 고수하는 이들이 있다. 불완전하고 잘못된 관찰로 굳어진 추정에 기반한 그들의 분석과 논리는 과연 어떤 결론과 결과를 초래할까?
21세기 프로야구 선수 평가 방법은 20세기 방식보다 훨씬 과학적으로 진화했다. WAR(대체선수대비승리기여도) 같은 전문용어는 이제 구단 관계자들뿐 아니라 일반 팬들도 사용한다. 그런데 아직도 야구를 다루는 주요 매체들은 투수와 타자를 다승과 타점이라는 틀린 잣대로 평가하고 있다.
1959년 5월 26일 피츠버그 파이어리츠 투수 하베이 하딕스는 12회를 '퍼펙트'하게 막았다. 첫 27명이 아닌 첫 36명의 타자를 연달아 잡아낸 하딕스는 13회말 동료의 실책 때문에 퍼펙트게임, 노히트노런, 완봉승을 모두 날려 버리고 패전투수가 되고 말았다. 이와는 반대로 오직 '운'으로 승리를 챙긴 투수의 사례는 야구사에 너무나 많아 언급하지 않겠다.
팀 스포츠인 야구에서 경기의 승패를 한 선수가 책임진다는 것은 공정하지도 논리적이지도 않다. 야수와 타선의 도움 없이는 투수의 퍼펙트게임은 불가능하다. 투수의 승패 기록이 가진 근본적인 모순이다.
승패 기록은 승리 또는 패전투수의 투구 내용에 대해 아무 것도 알려 주지 못한다. 경기 내용을 조금도 반영하지 못하는 승패 기록은 투수의 경기력을 해석하는 데 전혀 쓸모가 없다. 오히려 투수의 진가나 특정 경기 내용을 파악하는 데 방해가 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면에서 보면 단타와 홈런을 동일하게 취급하는 타율도 부정확한 평가 기준이다.)
다른 선수들의 성과에 크게 의존하지만 개인 기록으로 처리되는 타점이라는 기록 역시 오해의 소지가 많다. 1985년 내셔널리그 우승팀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토미 헐은 터무니없이 낮은 장타율(0.416)과 단 8개의 홈런으로 110타점을 올렸다. 한 선수가 한 시즌에 홈런을 10개도 치지 못하고 100타점 이상을 쌓은 이 진기록은 메이저리그에서도 35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런 기이한 현상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1985년 카디널스는 야구 역사상 가장 빠른 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해 팀 도루 314개를 해낸 카디널스는 30도루 이상 기록한 타자를 무려 5명 배출했다. 주로 4번 타자로 나섰던 헐 앞에는 빈스 콜맨(110 도루), 윌리 맥기(56 도루)와 아지 스미스(31 도루)가 포진했다. 이 셋의 득점은 헐의 110 타점 중 83점을 차지했다. 같은 시즌 뉴욕 양키스의 돈 매팅리 역시 발이 빠르고 출루율이 높은 리키 헨더슨의 뒤에서 치지 않았다면 아메리칸리그 최우수선수(MVP)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타점은 결국 특정 선수가 타석에 들어섰을 때, 어떤 주자가 몇 명 있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기록이다. 그 선수의 현재 또는 미래 실력을 가늠하는 잣대로 적합하지 않다. (유사한 논리로 한 투수에게 성과를 몰아주는 세이브 또한 문제가 있다.)
오늘날 한 투수를 평가하는 데는 WHIP(이닝당출루허용률)와 FIP(수비무관추정평균자책점)를 포괄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타자는 BABIP(인플레이타구안타비율), 출루율, OPS(출루율+장타율), wOBA(진루평균가중치)와 wRC+(점수창출가중치)를 두루 살펴 선수의 특성과 경쟁력을 파악한다. 이런 정밀한 분석은 더 이상 논란의 대상이 아니다. 천동설을 고집하는 자들이 뭐라고 하든 지구는 돌고 있다.
그러나 진단 효력도 없고 의미도 크지 않은 투수의 승패 기록과 타자의 타점 기록은 아직까지 버젓이 주요 평가 기준으로 활용되고 있다. 구시대의 산물인 이런 기록들은 언론과 팬들의 담론은 물론, 시즌 마감 후 수여하는 각종 상과 선수들의 연봉 책정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잘못된 기준으로 가치를 산정하는 관성은 야구를 이해하거나 해석하는 데 도움이 안 되고 산업과 문화를 오염시키고 있다.
통계는 집단적 현상이나 수집된 자료의 내용에 관한 수량적인 기록이다. 하지만 잘못된 관점으로 특정 부분을 부각해 유의미한 지표로 둔갑시키면 부정확한 진단이 나올 수밖에 없다. 오독과 오해는 오판으로 이어진다. 잘못된 관점이 만들어 낸 '그릇된 상식'이 위험한 이유다.
그릇된 상식의 폐해는 비단 야구만의 문제가 아니다. 경제, 정치, 정책과 같은 많은 사회 분야에서도 유사한 폐단이 발생하고 있다. 피상적인 관찰로 사안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해 근본적인 대책보다는 임시 처방을 남발하곤 한다. 많은 이들이 바라는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저해하는 요소는 어쩌면 그들이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상식' 자체의 오류 때문일 수도 있다.
세상을 정확하게 봐야 제대로 읽을 수 있다. 세상을 제대로 읽어야 새로운 발견도 있고 지속적인 발전도 가능하지 않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