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는 순간 홈런을 직감했다. 2초가 채 안되는 짧은 시간이지만 그동안 겪은 인고의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칠만하다. 이 상황에서 벅찬 감정을 자제했다. 배트 플립은 없었다.
황재균(30·샌프란시스코)이 데뷔전에서 홈런을 때려냈다. 29일 홈구장 AT&T파크에서 열린 콜로라도전에서 5번 타자 겸 3루수로 선발 출장했다. 데뷔전에서 클린업 트리오에 포진됐다.
첫 타석이던 2회말 상대 선발 투수 카일 프리랜드를 상대한 황재균은 3루 땅볼로 물러났다. 전력 질주로 1루를 향했지만 콜로라도 3루수 놀란 아레나도의 송구가 빨랐다. 하지만 4회 두 번째 타석에서 만회했다. 타점을 기록했다. 1사 1·3루에서 4구째를 받아쳐 투수 강습 타구를 쳤다. 공이 투수 글러브에 맞고 흐른 사이 3루 주자가 홈을 밟았다. 황재균은 1루에서 아웃됐다.
코리안메이저리거 최초로 데뷔전에서 타점을 올렸다. 그리고 그 기운이 이어졌다. 두 팀이 3-3으로 맞선 6회말 2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타석에 들어섰다. 초구 바깥쪽 커브, 2구 바깥쪽 직구를 지켜본 황재균은 3구째 144km 높은 직구를 통타해 그대로 좌측 담장을 넘어가는 홈런으로 연결시켰다. 데뷔전 홈런이자 팀의 리드를 이끄는 타점이었다. 비거리 127m.
이 상황에서 황재균은 아랫입술을 물고 타구를 지켜봤다. 그리고 배트를 놓지 않았다. 메이저리그에서는 배트 플립을 좋은 시선으로 보지 않는다. 상대 투수와 팀을 자극하는 행위로 간주된다.
황재균도 잘 알고 있다. 지난 1월 24일 미국행에 앞서 "배트 플립을 하지 않겠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스프링캠프에 합류했을 때 브루스 보치 감독은 새 동료들 앞에서 과거 KBO리그에서 했던 그의 배트 플립 영상을 보여줬다. 일종의 환영식이었다. 동료들은 웃었고, 황재균은 민망함을 감추지 못했다고.
꿈에 그리던 빅리그 데뷔전, 홈런까지 쳤다. 하지만 과한 세레모니는 없었다. 황재균은 잠시 배트를 놓지 않고 타구를 지켜봤고 공이 담장 밖으로 넘어간 뒤 배트를 놓았다. 그라운드는 평균 속도로 돌았고 홈에서는 두 주먹을 위아래로 친 뒤 더그아웃을 향했다.
황재균은 데뷔전에서 4타수 1안타(1홈런) 2타점 1삼진을 기록했다. 화려한 데뷔전을 치렀다. 경기 전 "즐기겠다"고 말한 그는 담담하게 '최고의 날'을 만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