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 16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KBO 리그 플레이오프 1차전 LG와 두산의 경기에서 7회초 무사 1루 정수빈의 번트 때 스트라이크 판정이 나자 김진욱(왼쪽 두 번째) 감독이 주심에게 항의하고 있다. 이날 경기는 두산이 LG에 4-2로 승리했다.
"해당 구단 관계자도 오히려 피해자일 수 있는 상황이었다. 법적인 해석을 거쳐 비공개 엄중 경고 조치했다."
야구계가 2일 난데없는 전직 심판 금품 수수 사건으로 떠들썩했다. 논란이 벌어졌고, 비난이 쏟아졌다.
사건의 개요는 이렇다. 전직 심판 A씨가 포스트시즌 경기를 앞둔 새벽, 두산 고위 관계자에게 전화를 걸어 돈 300만원을 빌려 달라고 요청했다. 두산 관계자는 그 부탁에 따라 제3자의 계좌에 돈을 입금했다. KBO는 나중에 자진 신고를 통해 그 사실을 파악했지만, 해당 사안을 공개하지 않고 엄중 경고 조치로 일단락했다.
이 일을 둘러싼 논란의 쟁점은 두 가지다. 두산이 심판에게 건넨 돈의 목적은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KBO는 왜 두산의 잘못을 공개하지 않고 덮어 두었는지다.
◇ 두산은 대가를 바라고 돈을 건넸나
A씨는 2013년 10월 15일 새벽 두산 고위 관계자에게 전화를 걸어 "술을 마시다 시비가 붙어 합의금 300만원이 필요하니 '시비 피해자'인 제3자의 통장에 300만원을 입금해 달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A씨가 다급한 상황에 처했다고 판단해 부탁을 들어줬다. 하필이면 그 시기가 LG와의 플레이오프 1차전 직전이었다. 그날 A씨는 주심으로 나섰고, 두산은 LG를 이겼다.
그러나 두산은 더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 A씨의 요청을 들어주지 않았다. 김승영 두산 대표이사는 "한국시리즈를 앞둔 2013년 10월 21일에도 A씨로부터 한 번 더 도와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며 "며칠 만에 다시 같은 부탁을 하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합의금이 급하다는 이야기에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해 응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KBO 관계자도 이 부분을 놓고 "대가성 판정을 바랐다면 한국시리즈를 앞두고도 두산 관계자가 돈을 보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를 인식한 뒤라 금전 거래를 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두산은 KBO로부터 '심판과의 금전 거래에 대한 사실 확인이 필요하다'는 공문을 받은 뒤 KBO에 "전직 심판에게 개인적으로 돈을 빌려준 관계자가 있다"는 내용을 곧바로 자진 신고했다. 김 대표이사는 "사려 깊지 못했던 판단에 문제가 있었음을 자인한다"며 "그러나 어떤 대가를 바라고 한 행동은 전혀 아니며 전적으로 개인적 차원의 행위였다"고 거듭 강조했다.
◇ KBO는 이 사실을 은폐하려 했을까
야구규약 제155조 '금전 거래 등 금지' 제1항에는 "리그 관계자들끼리 돈을 빌려주거나 보증을 서는 행위를 금지한다"고 나와 있다. 두산과 A씨는 이 규약을 명백하게 위반했다. KBO는 곧바로 전직 검사와 경찰 출신들로 구성된 조사위원회를 열었다. 송금 직후부터 A씨가 심판으로 출장한 경기들을 대상으로 정밀 모니터링도 거쳤다. 그 결과 A씨의 승부 개입에 대한 혐의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KBO는 또 "조사 도중 A씨가 개인적인 친분을 이용해 복수의 야구계 지인들에게 금전 거래를 한 소문과 정황이 파악됐다"고 했다. A씨를 상대로 추가 조사를 벌이려고 했지만, 연락이 두절돼 불가능한 상황에 놓이기도 했다. 결국 조사를 일단락한 뒤 다시 상벌위원회를 열어 두산의 징계 여부를 논의했다. 그 과정에서 '비공개'로 경고하는 게 낫다는 결론이 나왔다.
KBO는 "대가성이 없는 데다, 해당 구단 관계자 역시 A씨와 관련된 피해자의 일부일 수 있어 공개적인 징계를 내리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판단했다"며 "개인의 입장을 고려한 뒤 법적인 해석을 거쳐 비공개 엄중 경고 조치했다"고 설명했다.
김 대표이사는 "KBO 조사에 성실히 임했고, 사실을 한 치의 가감 없이 그대로 밝혔다"며 "이번 사안에 대해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 두산 팬을 비롯한 모든 분과 최선을 다해 경기에 임하는 선수단에도 죄송하다"고 거듭 사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