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테랑과 젊은 포수의 가장 큰 차이점은 투수 리드 능력이다. 특히 볼 배합에서 유독 두드러진다.
일반적으로 젊은 포수는 주전 포수가 전력에서 이탈했을 때 출전 기회를 얻는다. 타격, 블로킹, 도루 저지 등 자신의 잠재력을 펼치기도 한다. 하지만 처음부터 노련한 투수 리드를 하는 선수는 드물다. 그래서 다수가 롤모델로 삼은 선배들의 볼 배합을 따라 하거나 배터리코치의 사인 또는 선배 투수의 선택에 의존한다. 하지만 그런 방법으로는 자신만의 볼 배합을 만들기 어렵다.
◇ 투수들이 말하는 베테랑 포수의 볼 배합
LG 선발투수 류제국은 시즌 5승을 거둔 4월 26일 잠실 SK전을 마친 뒤 팀 선배이자 이날 경기 선발포수로 나선 정상호를 치켜세웠다. 그는 "정상호 선배는 가끔 나조차 의아한 구종을 주문한다"고 했다. 전력 분석팀에서 내놓은 공략법을 서로 숙지하고 있지만 결정구를 던져야 할 순간에 정상호가 변칙 사인을 낸다는 것이다. 류제국은 "하지만 믿고 던진다. 결과가 좋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베테랑 포수는 마운드 위 투수와 상대 타자의 장단점뿐 아니라 컨디션까지 세심하게 파악한다. 축적된 정보가 많다. 여기에 수많은 실전 경험을 바탕으로 뛰어난 임기응변 능력을 보인다. 정석을 바탕으로 변칙을 곁들인다. 공식처럼 활용할 순 없지만 중요한 순간에 빠르고 과감하게 적절한 선택을 한다.
반면 경험이 적은 포수들의 볼 배합은 다소 전형적이다. 두산 선발투수 장원준은 지난 5일 kt전에서 8이닝 무실점을 기록하며 승리투수가 됐다. 경기 뒤 양의지의 부상 공백을 메우고 있는 6년 차 포수 박세혁의 리드를 칭찬했다. 하지만 베테랑 포수들과의 차이를 묻는 질문에 "젊은 포수들은 그저 볼카운트에 따라 다음 공의 사인을 내기도 한다. 다소 전형적이다"고 답했다.
투 스트라이크 이후 굳이 공을 스트라이크존 밖으로 빼거나 변화구 사인을 내는 게 대표적이다. 장원준이 박세혁의 리드에 아쉬움을 표현한 건 아니다. 다만 양의지와 호흡을 맞출 때는 허를 찌르는 볼 배합에 수차례 감탄했다. 지난해 한국시리즈 2차전에서 승리투수가 된 뒤 "양의지는 능구렁이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경험 많은 포수는 투수가 투구에만 집중할 수 있게 한다.
◇ 포수는 안정감이 최고의 덕목
물론 '창의적인 볼 배합'이 베테랑과 젊은 포수를 가르는 유일한 기준은 될 수 없다는 시각도 있다. '포수 사관학교'로 불리는 경찰야구단 유승안 감독의 생각이다.
유 감독은 "포수의 가장 큰 덕목은 안정적인 경기 운용이다"고 말한다. 베테랑과 젊은 포수의 차이도 실점 과정에서 판가름 난다고 본다. 유 감독은 "베테랑 포수는 대량 실점을 막기 위한 리드를 한다. 똑같이 5점을 내줘도 한 번에 내주지 않으려 한다. 실점을 최소화해 팀을 승리로 이끈다"며 "젊은 포수는 그 능력이 부족한 게 사실이다"고 했다.
대량 실점을 막기 위해 확률 싸움에 능해야 한다. 유 감독은 "나는 역(逆) 배합은 큰 의미가 없다고 본다. 타자의 생각을 읽어 내 수 싸움에서 이겼다는 쾌감에 취하는 것뿐이다"며 "기분으로 야구를 하는 건 아니다"고 설명했다. 이어 "기본적으로는 상대 타자의 약점을 파고들어야 한다. 대체로 바깥쪽 공이 약하다고 해서 역 배합을 한다고 초구부터 몸 쪽 공을 요구했다가 장타를 맞으면 어떻게 하는가"라며 "야구는 공 한 개에 분위기가 좌우되는 경기다. 포수는 안정을 추구해야 한다"는 의견을 전했다.
KBO 리그 역대 정상급 포수들에 대해서도 "기본에 충실한 포수들이 가끔 역 배합을 활용하기 때문에 더욱 효과가 있다"고 했다. 양의지도 경찰야구단에서 복무한 뒤 주전 포수로 성장했다. 능구렁이 같은 볼 배합도 결국 기본 출발점은 안정에 있다는 의미다.
▲사진=연합뉴스 ◇ '경험'으로 성장하는 젊은 포수
어느덧 14년 차 베테랑 포수가 된 롯데 강민호는 "볼 배합에 정답은 없다"고 단언한다. 데뷔 2년 차부터 100경기 이상 출전하며 롯데 안방의 미래로 기대받은 강민호다. 그런 그가 오랜 시간 고민한 끝에 내린 결론이다.
출전 경기가 많아질수록 '초심자의 행운'은 사라졌다. 강민호는 "데뷔 3년 차 때부터 고민이 커졌다. 멋모르고 하다가 조금씩 알기 시작하면서 오히려 혼란이 왔다"며 "사인을 내면 맞을 것 같아 주저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돌아봤다.
지도자와 선배들에게 '모든 포수가 겪는 과정이다'며 위로받았지만 자신감은 점차 떨어졌다. 그러나 결국 극복해 냈다. 그는 "투수도 많이 맞아 봐야 크는 것처럼 포수도 앉아서 많이 맞아 봐야 한다"며 "한때는 존경하던 박경완 선배님의 볼 배합을 따라 하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나만의 배합을 찾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어느새 나만의 배합이나 루틴이 생기더라"고 돌아봤다.
지난해부터 1군에서 출전 기회를 늘려 가는 젊은 포수들이 많아졌다. 각자 좋은 포수가 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한다. 일례로 LG 유강남은 메모를 생활화하고 기억에 도움이 되는 음료를 먹으면서 공부한다고 했다. 다른 포수들도 마찬가지다. 투수의 호투를 이끄는 최적의 볼 배합을 찾으려 매일 고민한다.
정답은 없다. 반대로 모두가 정답일 수도 있다. 출전 시간과 이닝에 상관없이 주어진 기회를 최대한 활용해 자신의 것을 찾는 노력 자체가 중요하다. 젊은 포수들에게는 그 시간이 모두 약이자 경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