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박종훈(SK)은 계산이 서지 않는 투수였다. 데뷔 후 한 시즌 최다인 8승을 기록했지만 세부 성적이 만족스럽지 못했다.
문제는 컨트롤. 리그에서 가장 많은 볼넷을 허용했다. 심지어 사구(死球)도 1위였다. 투구폼의 이점을 활용하지 못했다. 정통 잠수함으로 릴리스포인트가 지면에서 불과 28cm 떨어진 높이에서 형성돼 타자가 상대하기 까다로울 수 있다. 하지만 강점을 활용하기도 전에 자멸하는 경기가 많았다.
그러나 2017시즌 전환점을 돈 박종훈은 놀라울 정도로 다른 모습이다. 전반기에만 이미 8승을 따냈다. 데뷔 첫 10승 고지가 눈앞이다. 평균자책점도 3.84로 낮다. 9이닝당 볼넷 허용은 5.85개에서 4.35개로 1개 이상 낮췄다. 여전히 볼넷이 많지만 갑작스럽게 흔들리는 횟수가 적어졌다. 4월 16일 대전 한화전에선 무려 606일 만에 선발 무사사구 경기로 시즌 첫 승을 따내기도 했다. 6월에는 5경기에 등판해 리그에서 가장 낮은 평균자책점 1.65(2위 켈리 평균자책점 1.80)를 기록했다. 그는 스스로 올 시즌 전반기를 "75점"이라고 평가했다.
-전반기를 자평을 한다면. "이전보다는 나아졌다고 생각한다. 성적도 향상됐다. 아쉬운 점은 여전히 컨트롤이다. 컨트롤이 좀 더 안정됐으면 한다. 그러면 충분히 더 많은 이닝을 소화할 수 있다. 하지만 볼넷 여파로 긴 이닝을 책임지지 못한 게 아쉽더라."
-그래도 커리어 하이인 8승을 전반기에 달성했다. "생각 이상으로 운이 많이 따랐다."
-올스타 휴식기가 시작되는데. "작년에는 이 기간 동안 특별한 계획이 없었다. 부족한 부분을 생각하는 것보다 쉬면 된다는 생각이 강했다. 하지만 올해는 데이브 존 투수코치와 라일 예이츠 퀄리티 컨트롤 코치, 최상덕 투수코치님께서 각기 다른 숙제를 내주셨다. 자세하게 이야기하기는 어렵지만 가장 기본적인 마인드, 마운드 위에서의 포커페이스 그리고 심판 콜을 최대한 신경 쓰지 않는 자세 등이다."
-전반기 가장 아쉬운 경기를 꼽자면. "NC전(6월 21일 1-2 패)이다. 볼넷이 5개로 많았다. 돌이켜 보면 좀 더 편안하게 할 수 있었는데 신경을 많이 썼다. 팀이 이길 수 있었는데…. 잘해야 한다는 생각을 너무 많이 했다."
-전반기 마지막 등판이던 롯데전에서도 초반 볼넷으로 고전했지만 5⅓이닝(3실점)을 버텼다. "원래의 나였으면 1~2회 볼넷을 내주고 자멸했을 거다. 하지만 3회 마운드에 올라갈 때 일부러 웃었다. 3회부터 '재밌게 하자'는 마인드 컨트롤을 했다. 이렇게 해서 못 던지나, 저렇게 해서 못 던지나 큰 차이가 없는 거 아닌가. 최근 투구 내용이 좋지 않을 때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마음을 잡았다. 내가 언제부터 박종훈이었나."
-정통 언더핸드인데 허리는 안 아픈가. "트레이닝 파트에서 몸 관리를 정말 잘 해준다. 아픈 곳이 전혀 없다.(웃음) 폼 때문에 다칠 수 있다는 이야기를 주변에서 많이 해주시는데 이젠 아플 수 있다는 생각도 하지 않는다."
-작년에는 후반기(2승6패 평균자책점 7.35)에 워낙 부진했다. "커브에 대한 부담이 많았다. 7월쯤에는 컨트롤이 되지 않아서 그 이후부터 잘 던지지 않았다. 지금은 그런 문제가 없다."
-커브의 컨트롤이 안 된 이유는. "너무 좋았을 때만 생각하고 커브를 던졌다. 그러니까 오히려 몸에 맞는 공이 나오더라."
-올 시즌에는 어떤 부분이 달라진 건가. "예이츠 코치님이 항상 '네가 던지는 공은 타자가 쉽게 못 친다'고 말씀해 주신다. 데이브 존 코치님도 '타자와 싸우면 이길 수 있다'고 자신감을 심어주신다. 최상덕 코치님도 마찬가지다. '볼을 던져도 원래 그렇게 구사하려고 했던 것처럼 행동하라'고 하신다. 그래서 자신감이 생겼다. 투구 폼이 느려서 도루도 곧잘 내주지만 득점은 막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
-외국인 타자에 강점을 갖고 있었지만 올해는 안타도 많이 허용했다. "기록상은 안타지만 뭔가 깨끗한 안타가 아닌 느낌이다.(웃음) 여전히 부담은 없다. 외국인 타자나 국내 타자나 상대하는 건 비슷하다."
-주자가 유독 3루에 있을 때는 실점이 적다. "나도 그 부분이 짜증난다.(웃음) 주자가 1루나 2루에 있을 때는 왜 이렇게 못 던지나 모르겠다. 주자가 3루에 있으면 편하다. 1루에 있으면 등 뒤에 있는 주자가 신경 쓰여서 마음이 급해질 때가 있다. 반면 3루는 주자가 눈에 보이지 않나. 좀 더 여유 있는 투구폼으로 던질 수 있다."
-전반기를 점수로 평가한다면. "75점이다. 지난해보다 성적이 좋아져서 70점 그리고 볼넷이 줄어서 추가 5점. 하지만 아직도 볼넷이 많고 사구가 적지 않다. 여기에 심판 판정에 신경도 많이 쓴다. 채워야 할 점수가 많다."
-후반기 두 자릿수 승리도 눈앞인데. "승리보다는 볼넷을 절반 정도로 줄이는 게 중요하다. 주자가 1루에 있을 때 2루 도루를 줘도 상관없지만 볼넷은 주면 안 된다."
-시즌 10승이 갖는 의미도 있지 않나. "(김)광현이형이 나한테 '풀타임 3년을 해서 10승을 못하면 바보'라고 얘기한 적이 있다. 그 바보가 되기 싫어서 해야 한다.(웃음)"
-외국인 투수인 메릴 켈리를 통해 많은 걸 배우는 것 같다. "국내 투수들은 여러 사람의 손을 많이 탄다. 하지만 외국인 투수는 트레이너도 잘 찾지 않더라. 이전에는 경기 전 마사지를 받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생각이 좀 바뀌었다."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켈리는 경기 후 어깨 아이싱도 거의 하지 않는다. '아이싱에 대한 과학적 근거가 없다'고 하더라. 피로가 덜 풀리고 위험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안 해보니까 큰 차이가 없더라. 켈리뿐 아니라 다른 선배들한테도 많은 도움을 받는다. (윤)희상이 형도 조언을 해준다. 지금까지 난 포수 사인에 따라서만 열심히 던지는 투수였다. 이제는 나만의 투구 패턴을 만들어 가고 싶다."
-많이 성장한 모습이 보인다. "작년에는 솔직히 이기적이었다. 나만 이기면 된다는 생각이 강했다. 팀이 패하더라도 내가 잘 던졌으면 만족했다. 이젠 팀이 이겼으면 좋겠다. 내 위치에서 내가 할 일이 보이더라. 주눅이 들 필요도 없다. 자신감 있게 던지는 것,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