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배는 1967년 초대 대회부터 2010년까지 매년 4월에 개최됐다. 전국 대회 가운데 가장 먼저 열렸다. 프로나 대학 입성을 앞둔 '예비 스타'들이 팬들 앞에 첫선을 보이는 기회였다.
대통령배가 만든 첫 스타는 1967년 1회 대회 최우수선수(MVP)상을 수상한 왼손 투수 임신근이었다. 경북고 2학년이던 임신근은 선린상고와 결승전에서 완봉승을 올렸다. 이듬해 2회 대회에서도 경북고를 다시 우승으로 이끌면서 MVP를 2연패했다. 그해 경북고는 '야구 천재' 임신근의 활약 속에 전국 대회 7관왕에 올랐다. 당시 선린상고 4번 타자였던 김우열은 실업 야구 통산 최다 홈런(124개)을 때려 냈다. 만 34세였던 1982년 OB 원년 멤버로 입단해 초창기 프로야구의 간판 거포로 이름을 날렸다.
경북고는 1971년 '철완' 남우식을 앞세워 다시 전성기를 맞았다. 남우식은 1970년과 1971년 대통령배 MVP를 연속 수상했다. 스피드건이 없던 시절이지만, 당시에는 보기 어려웠던 시속 150㎞ 강속구를 던졌다는 증언이 전해지고 있다. 남우식 외에도 천보성, 배대웅, 정현발이 1971년 경북고 우승 멤버. 1972년에는 이선희와 황규봉이 다시 경북고의 우승에 앞장섰다. 유일한 대통령배 3연패 기록이다.
10회 대회 결승전에서는 대구상고 선발 김시진이 8회까지 군산상고 타선을 무실점으로 막았다. 그러나 9회 김종윤에게 3루타를 맞고 포수 이만수가 다음 공을 놓쳐 결승점을 내줬다. 아픈 기억을 공유한 김시진과 이만수는 프로야구 삼성에서 최강 배터리로 호흡을 맞췄다. 나란히 프로야구 감독까지 역임한 스타플레이어가 됐다.
1977년 대통령배 MVP는 공주고 포수 김경문이었다. 1980년엔 광주일고 선동열이 MVP에 올랐다. 두 선수는 차례로 고려대에 진학한 뒤 프로 유니폼을 입었다. 김경문은 두산과 NC 지휘봉을 잡고 당대의 명장으로 우뚝 섰다. 선동열은 한국 프로야구 역대 최고의 투수로 남았다. 선동열과 함께 광주일고 우승을 이끌었던 허세환은 2007년 모교 감독이 돼 다시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2000년대 대통령배 최고 스타는 부산고 추신수다. 1999년과 2000년 연속 MVP와 우수투수상을 휩쓴 뒤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추신수는 2000년 대통령배 결승전에서 경기고 오승환과 맞대결했다. 당시에는 추신수가 마운드, 오승환이 타석에 서 있었다. 추신수는 오승환을 범타로 막았다. 둘은 2016년 6월 19일(한국시간) 16년 만에 다시 만났다. 무대는 메이저리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