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송일국(46)이 굉장한 도전을 했다. 소극장 무대에서 연극 '대학살의 신'을 하고 있다. 철인3종 경기, 유모차를 끌고 뛰는 10km 마라톤, 세쌍둥이 안고 성황봉송 등을 했던터라 웬만한 도전은 놀랍지도 않다. 연극 '나는 너다',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 등 무대 공연의 경험도 있다. 그럼에도 이번 연극을 '도전'이라고 표현하는 이유가 있다. 노련한 배우들도 소극장 공연을 피하거나 부담을 느끼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실수를 해도 더 티가 많이 나고, 작은 숨소리까지 다 들리는 관객과의 가까운 거리가 부담스럽다. 안 하던 실수도 더 많이 나오는 이유다. 게다가 같이 하는 멤버들은 남경주,최정원,이지하 등 무대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 이런 까닭에 취중토크 날짜를 잡고 그의 연극을 보기 전까지 걱정이 많았다. 함께하는 배우들과 실력 차가 나서 인터뷰를 하기 민망하면 어떻게 하나에 대한 걱정이었다. 우려는 기우에 불과했다. 공연이 시작하고 얼마 안 돼 극에 몰입할 수 있었고 편안한 마음으로 웃으며 관람했다.
- 취중토크 공식 질문입니다. 주량은 어떻게 되나요. "술은 원 없이 먹어본 적이 없어요. 하하하. 전 그냥 기도를 열고 술을 마셔요. '나는 너다' 공연을 할 땐 1000cc 맥주를 원샷했어요. 20대 때는 질보다 양이라서 맥주를 많이 마셨어요. 자주 가던 곳이 있었는데요. 그때는 돈도 없고 그래서 맥주 1000cc를 시키면 기본 안주가 무료인 곳에 가서 1만cc씩 마시고 그랬어요."
- 매주 월요일 빼고 연극 '대학살의 신'을 하고 있죠. 체력은 어떤가요. "다른 세 분(남경주,최정원,이지하)은 모르겠는데 저는 하루에 3회씩 공연해도 괜찮을 것 같아요. 목이 좀 무리가 와서 그렇지 목만 버티면 체력은 끄떡없죠. 하하하. 전 체력은 자신있어요. 철인 3종 경기도 했고, 또 아들만 셋을 키우잖아요. (웃음) 공연에서 극 중 아내와 소리치면서 싸우는 신이 있는데 그때 카타르시스를 느껴요. 그 순간만 매일 매일 기다려요. 스트레스가 확 풀리거든요. 그래서 제가 우스갯소리로 공연하러 갈 때 '스트레스 풀러 가야지'라고 해요."
- 이번 공연 캐릭터를 위해서 일부러 체중을 늘렸다고 들었어요. "일부러라기 보다는 저는 그냥 운동 안하고 가만히 있으면 숨만 쉬어도 살이 찌는 체질이에요. 연출님이 캐릭터가 약간 몸집이 있고 그러는 게 좋겠다고, 체중이 늘면 좋겠다고 해서 마음껏 먹고 있죠. 제가 연기한 캐릭터를 했던 역대 배우들이 다 살이 좀 있어요.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영화 '대학살의 신'에선 존 C. 라일리가 저랑 같은 역할이었어요. 저처럼 펑퍼짐하고 머리카락도 곱슬곱슬하게 볶은 이미지로 캐릭터를 소화했죠. 농담으로 공연하면서 역대 미쉘 중엔 제가 제일 잘생겼을거라고 하고 있어요. 진짜 한 번 검색해봐요. (웃음)"
- '유모차 미는 걸 좋아한다'는 등 실제 모습과 오버랩되는 대사들이 웃음을 유발해요. "그게 원래 있는 대사예요. 저를 염두에 두고 바꾼 게 아니에요. 원래는 '유모차 미는 걸 좋아한다'고 하고 '스웩이 있잖아'라고 까지 하면 웃음이 터져야 하는데 제가 '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 보여준 모습 때문인지 관객들이 '유모차'까지만 대사를 해도 이미 웃음이 터져요. 그래서 뒷 대사가 전달이 안되는 경우가 있어요."
- 그동안 연기했던 캐릭터, 실제 모습과는 180도 다른 것 같아요. 마마보이에 아둔한 남편이죠. "무거운 역할만 했지만 사실 제 안엔 밝고 가볍고, 빈틈이 있는 부분도 있어요. 제가 만약 철드는 과정 없이 그대로 자랐다면 미쉘 같은 사람이 됐을거예요. 아무래도 대중적으로 알려진 작품이 사극('주몽')이고, 집안 배경에서 생긴 이미지 때문에 제 안의 또 다른 면을 보여줄 작품 연이 잘 닿지 않았어요. 그래서 이번에 '대학살의 신'을 하면서 배우 송일국을 감싸고 있는 걸 한꺼풀 벗기면 더 연기가 좋을 것 같다고 연출님이 말씀하셨어요. 그 말이 정답이었던 것 같아요. 그동안 하지 않았던 캐릭터 연기를 하니 재밌어요."
- 웃음을 의도한 부분에서 관객들이 웃을 때 기분이 어떤지. "엄청난 쾌감이 있죠. 최정원 선배는 평소 내색을 안 해서 몰랐는데 첫 공연을 하기 전까지 캐릭터에 대한 답이 안 나와서 많이 답답했다더라고요. 워낙 베테랑이라 그런 게 전혀 없을 줄 알았는데 의외였죠. 그러니 저는 오죽했겠어요. 전 같이 하는 세 분에 비해 실력적으로 처지는 것도 있고 작품 이해도 잘 안되서 더 답답했죠. 나중에 이지하 선배가 술 한 잔 하면서 말하길 첫 리딩 때 제가 연기하는 걸 보고 너무 기가차서 말도 안 나왔다더라고요. '도대체 이 인간이랑 어떻게 공연하라는 거야'라고 생각했대요. 그런데 공연 날짜가 다가오면서 좀 봐줄만 해졌다고 하더라고요. 전 첫 리딩때는 몰랐는데 연습하면서 답답함과 걱정이 커졌죠. 그런데 첫 공연을 하자마자 답답함이 싹 다 사라졌어요. 뜨거운 관객 반응 덕이었죠. 첫 대사부터 아주 빵빵 터졌어요. 최정원 선배도 기분이 업 되서 장난 아니었어요."
- 무대에 잔뼈가 굵은 배우들과 호흡이라 배우는 게 많을 것 같아요. "제가 사실 대사도 그렇고, 뭘 배울 때도 그렇고 무식하게 외우는 스타일이거든요. 연기할 땐 제 대사만 죽어라 외웠어요. 또 제가 연기한 걸 매일 비디오로 찍어서 집에가서 연기한 걸 돌려봤어요. 정말 이렇게 열심히 준비한 적이 없는 것 같아요. 그런데 남경주 선배님은 저 보다 열심히 안 하는 것 같고, 설렁설렁하는 것 같은데 저 보다 2주 전에 대사를 다 외운 거예요. 선배님은 전체 대사를 외워서 상대방의 대사에서 자신의 대사를 유추해내니깐 훨씬 빨리 외울 수 밖에 없었던 거였어요. 특히나 이 연극은 합이 더 중요한데 제가 그걸 놓치고 있었던거죠. 제 대사만 외우면 제 연기에 틀이 생겨버리더라고요. 상대가 상황에 따라 대사 강도를 약하게 하면 저도 약하게 받아야 하는데 제 대사만 외우면 상대 강도에 상관없이 전 똑같은 강도로 대사를 하니깐 좋은 합이 완성될 수 없는 거죠. 진짜 번개 맞은 기분이었어요. 선배님께 작품 전체를 보는 눈을 배우고 있는 것 같아요."
- 소극장 무대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고 들었어요. 이번 연극으로 극복했나요. "완전히요. 지금은 소극장 공연을 즐기고 있어요. 소극장은 메인 무대와 관객들의 거리가 가깝잖아요. 예전 공연하다가 어느 순간 관객과 눈이 마주쳤는데 순간 대사가 생각이 안 나는거예요. 그 뒤로는 관객의 눈을 못 마주치겠더라고요. 그런데 이번 소극장 공연을 하면서 완벽하게 극복했어요. 그리고 제가 지금까지 한 공연에선 마이크를 찼거든요. 이번엔 마이크를 안 차고 하는 첫 공연이에요. 여러모로 제겐 도전이었죠. 예전에 TV 드라마 연기자 출신이 공연할 때 대사 전달이 안되는 걸 봤어요. '나는 저러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했죠. 연기를 잘하고 말고를 떠나서 일단 대사 전달은 되어야하지 않겠나 라는 생각에 연습할 때 남들 두배의 성량으로 했어요. 다른 세 선배님은 워낙 경험이 많고 베테랑이니깐 극장에 가서 공연하다가 성량 조절을 자유자재로 할 수 있는데 전 초자라 그게 힘들거든요. 성량을 내리는 건 쉬워도 올리는 게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성량을 올려서 연습했죠."
-가족들도 공연을 보러 왔나요. "이제껏 했던 공연 중에 가족 반응은 제일 좋아요. 아내는 첫 공연을 보고 85점을 줬어요. 여동생은 50점을 예상하고 보러 왔는데 80점이라고 하더라고요. 어머니(김을동)는 당연히 보고 잔소리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곧잘 한다'고 하셨어요. 사실 어머니는 평생 저를 배우로 인정하지 않을 것 같아요. 밖에 알려지진 않았지만 어머니는 배우를 가르치는 선생님이기도 하거든요. 드라마 '용의 눈물'이 방영될 때 유동근 선배님이 새벽2시에 저희 집에 와서 원포인트 연기 레슨을 받기도 했어요. 전광렬 선배, 박상원 선배 등 많은 선배님들이 집에 오셔서 어머님께 연기 수업을 받았어요. 어머님이 고등학교 때도 연극반이셨고, 성우를 해서 딕션이 좋아요. 거기에다가 웅변까지 해서 상을 받을 정도로 성량이 좋거든요. 그런 분에게 제 연기가 만족스러울 수가 없죠. 연기적인 부분에선 어머니는 제가 평생 넘지 못 할 산이에요. 그래도 그런 어머니가 계셔서 제가 늘 배우로서 겸손할 수 있죠. 그런 어머니가 이번엔 잔소리를 안 한 것 만으로도 만족해요."
-어머니에게 연기 지적을 많이 받나봐요. "어머니가 연기에 대한 열정이 지금도 엄청 뜨겁거든요. 뼈 속 깊이 배우인 분이에요. 일하고 아무리 피곤하고 시간이 늦어도 드라마를 챙겨보세요. '피곤한데 일찍 주무세요'라고 했더니 '연기도 트렌드야. 요즘 나오는 작품도 계속 봐야 돼'라고 하더라고요. 한 대 맞은 기분이었어요. 어머니는 다시 연기를 하고 싶어하세요. 누구 보다 무대를 그리워하고 작품을 만나고 싶어하죠. 연기에 대한 열정이 많은 분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