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 맥주 시장을 강타한 해운대·강서맥주 등 이른바 '지역맥주'가 때아닌 생산지 논란에 휩싸였다. 이름만 가져다 썼을 뿐 해당 지역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곳에서 생산되고 있어서다. 지역 소비자들의 향토애를 노린 '꼼수 마케팅'이라는 지적이다. 업계에서는 소비자 신뢰와 시장 확대를 위해 장기적으로 해당 지역 생산을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쏟아지는 지역맥주
9일 주류 업계에 따르면 올여름 국내 맥주 시장의 최대 히트 상품은 지명 이름을 단 수제 맥주다.
지난달 27일에 열린 청와대 기업인 초청 만찬 간담회에서 세븐브로이의 강서·달서맥주가 만찬주로 선정되면서 소비자의 관심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최근에는 강남·서빙고·제주맥주까지 등장했다. 10일에는 전라맥주가 시장에 출시된다.
이들 제품은 주로 홈플러스·이마트·씨유(CU) 등 국내 대형 유통사들을 통해 판매된다.
이처럼 각 업체가 앞다퉈 지역 수제 맥주를 출시하는 건 지역민들의 향토애를 자극, 해당 지역 판매를 끌어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달 홈플러스 지역명 맥주 매출을 살펴보면 부산 해운대구 매장에서 판매된 해운대맥주 판매량은 전국 매장 평균의 7.7배에 이른다. 서울 강서구 매장에서도 강서맥주의 판매는 전국 평균의 3.2배였다. CU에서는 대구 달서구의 이름을 딴 달서맥주의 대구 지역 편의점 매출이 서울보다 85.3%나 더 높게 나타났다.
한 업계 관계자는 "소비자들이 펍이나 맥주 공방에서나 맛볼 수 있었던 수제 맥주를 편의점과 마트에서도 구매할 수 있게 돼 수제 맥주 인기가 높아졌다"며 "특히 지명을 상품명으로 달아 소비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며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무늬만 지역맥주 논란
문제는 이들 지역맥주 상당수가 생산지와 무관한 지명을 사용하는 데 있다. 이름과 겉 포장에서만 해당 지역을 연상케 했을 뿐 생산은 전혀 다른 곳에서 한 '무늬만 지역맥주'라는 지적이다.
실제 해운대맥주는 충북 음성 공장에서, 강서·달서맥주는 강원도 횡성에서 생산되고 있다. 10일 출시를 앞둔 전라맥주도 생산지는 강원도 횡성이다.
심지어 지난달 29일부터 이마트가 판매하는 강남맥주는 캐나다에서 공수하고 있다. 이와 관련 강서·달서맥주 등을 유통하는 CU와 홈플러스 측은 "강서맥주는 제조 업체인 세븐브로이의 본사가 서울 강서구에 있어서, 달서맥주는 달서구 두류공원의 노을빛이 맥주 빛깔과 비슷해서 해당 지역명을 쓰게 됐다"고 말했다.
이는 해외의 유명 지역맥주인 독일 에딩거를 비롯해 일본 삿포로, 중국 칭다오, 미국 뉴욕 브루클린 맥주 등이 모두 실제 그 지역에서 생산·유통되는 것과 비교된다.
물론 국내 지역맥주 가운데 해당 지역에서 생산되는 제품이 있긴 하다. 지난 1일 공식 론칭한 제주맥주는 제주시 한림읍에 위치한 양조장에서 생산된다. 제주 원료로 생산해 제주 지역의 한식당, 향토 음식점 등을 중심으로 우선 공급한 후 유통망을 늘릴 예정이다.
업계에서는 한국 지역맥주도 소비자 신뢰를 얻고 해외 관광객 등으로 시장을 확대하려면 제주맥주의 사례와 같이 해당 지역을 기반한 생산 시설 구축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 달서맥주를 생산하는 세븐브로이는 최근 대구 달서구에 공장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달 31일 김강삼 세븐브로이 대표가 달서구청을 방문해 구청장과 면담하는 등 논의를 진행 중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지역맥주는 소비자들의 관심을 불러온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인 부분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며 “지역의 특색과 재료가 담긴 차별화된 지역맥주가 생산되는 방향으로 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