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 유일한 공포영화에 여배우 원톱 주연물이다. 대박 흥행과 거리가 멀어 충무로 내에서는 비주류로 꼽히지만 그래서 경쟁력이 있다. 개봉 후 소소한 입소문을 이끌며 관객몰이에 나선 영화 '장산범(허정 감독)'이다.
'장화홍련(김지운 감독)' 이후 14년 만에 스릴러 장르로 돌아온 염정아(46)가 이끌어 더욱 주목받고 있다. 스릴 넘치는 공포 전반에 모성애가 깔려있다. 차갑고 도도한 인상이 강점이자 실제 엄마인 염정아에게 제격인 작품이 아닐 수 없다. 인정받은 연기력에 스산한 비주얼까지 염정아는 하고 싶은 모든 것을 '장산범'에 쏟아냈다.
연기를 하지 않을 땐 '동탄맘'이라 불리는데 더 익숙한 주부다. 개인시간보다 남편, 아이들을 위해 쏟는 시간이 더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기에 대한 열정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다. 고(故) 김영애와의 이별은 이러한 마음에 더욱 불을 지폈다. 김영애 같은 배우로 오랜시간 사랑받는 것, 염정아의 진심어린 소망이다.
※인터뷰①에서 이어집니다.
- '장화홍련' 이후 14년 만에 선택한 공포 스릴러다. 그 때도 엄마는 엄마였다. "성격이 완전 달랐다. 계모였다. 모성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역할이었다. 아이들이 나로인해 공포를 느껴야 했다. 이번에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 아이들을 품어가는 엄마였다."
- 14년째 명작으로 꼽히는 작품에 출연했다는 것, 선택했다는 것이 남다르게 느껴질 것 같다. "진심으로 자랑스럽다. 지금도 이야기 해주고 좋아해 주시는 것을 보면 그 작품을 한 것이 얼마나 다행이었나 싶다. 그리고 내 눈이 얼마나 좋았나 그런 생각을 한다. 하하."
- '장화홍련' 외 본인이 생각하는 대표작은 무엇인가. "'범죄의 재구성'을 좋아한다. 그런 캐릭터를 언제 또 해 보겠나. 당시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영화에는 한 번도 없었던 캐릭터라 굉장히 신나게 연기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전우치'는 회차 많은 우정출연인데 그 작품에 대한 이야기도 여전히 많이 듣는다.(웃음) 운이 좋았다."
- 가장 활발하게 활동했던 시기이기도 하다. "그 무렵 정말 열심히 일했다. 다양한 캐릭터를 만나기도 했고. 2004년~2005년 그 즈음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2006년에 결혼했나?(웃음) 활동을 많이 이어가지 못했다. 그래도 그 분(남편)을 그 때 만났으니까 운명이라 생각한다."
- 색깔있고 강한 역할을 많이 맡았는데. "의도했던 것은 아니다. 그 쪽으로 제의가 많이 들어왔다. 그런 캐릭터가 나에게 입혀졌을 때 잘 어울리고 잘 산다고 하더라. 외모에서 느껴지는 차가움 때문 아닐까 싶다."
- 데뷔 초반부터 눈에 띄는 행보였다. "글쎄. 20대 때는 내가 뭘 잘하는지도 몰랐고, 뭘 해야 할지도 몰랐다. '장화홍련'을 만나면서 '아, 연기는 이렇게 하는구나' 알았던 것 같다. 처음 연기와 배우라는 직업에 눈을 뜨게 해준 작품이다. 그래서 더 의미가 크다." - 미스코리아 출신 배우라는 꼬리표를 떼고 싶다는 이유도 있었나. "'왜 미스코리아라고만 하지? 왜 자꾸 그 타이틀을 붙여주지?'라는 의구심이 들기는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누구를 탓한 것은 아니다. 그냥 내가 연기를 잘하면 되는 일이었다. 데뷔 초에는 물론 그런 생각조차 하지 못했지만.(웃음). '장화홍련'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 미스코리아에 출전하기 전부터 배우가 꿈이었나. "중학교 때부터 배우가 되고 싶었다. 박중훈 선배님을 너무 좋아했다. 선배님 때문에 중대(중앙대학교)도 가고 싶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작품을 같이 한 적은 없다. 내가 과거 '무릎팍도사'에 나가 이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선배님이 내 연락처를 어떻게 아시고 방송 다음 날 문자를 주셨더라. '그런 줄 몰랐는데 고마워요. 후배님 앞으로도 잘 부탁해요'라는 내용이었는데 굉장히 감동적이었다."
- 이제는 반대로 후배들에게 그런 이야기를 듣는 위치가 되지 않았나. "있으면 좋은데 지금까지 그렇다고 이야기 한 후배는 없었다.(웃음) 약간 차가운 인상 때문에 먼저 말을 잘 못 꺼내는 것은 맞는 것 같다. 그래도 좋다는 말을 하는데 내가 화낼리는 없지 않나."
- 작품에 대한 고민은 없나. "들어오는 작품 수 자체가 예전보다 많이 줄었다. 하고 싶은 작품도 자주 못 만나다 보니 1년에 한 편 하면 많이 하게 되는 것 같다. 지금 내 나이대가 애매하기도 하고. 어느 새 내가 그 나이가 됐더라."
- 어떻게 최선의 선택을 하는 편인가. "보다 보면 마음이 가고 확 빠져드는 작품이 생긴다. 판단은 금방 한다. 그리고 소속사 등 주위에 도와주시는 분들이 많이 있으니까 조언을 구하기도 한다."
- 여러의미로 '장산범'에 대한 책임감을 느낄 것 같다. "책미감 보다느 바람이다. 이 작품이 흥행해서 여성 캐릭터들이 있는 영화가 많이 제작됐으면 좋겠다. 최근 멜로를 많이 못 봤다. 멜로 영화를 보고 싶다는 생각을 꾸준히 하고 있다."
- 기억에 남는 작품이 있다면. "'라라랜드'를 너무 재미있게 봤다. 연달아 세 번을 봤다. 그래도 나이 때문에 엠마 스톤이 했던 역할은 내가 못 할 것 같아 '맘마미아'로 돌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웃음) 음악과 함께 하는 영화가 재미있을 것 같다."
- '더 어릴 때 많이 할걸'이라는 후회는 하지 않았나. "후회는 아니고 그냥 '할 수 있을 때 이것저것 많이 했으면 좋지 않았을까' 싶기는 하다. 그 땐 시간이 이렇게 빨리 지나갈 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