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어카 불법 음반 판매가 성행했던 20년 전만 해도 이른바 '길보드' 차트는 히트곡의 바로미터였다. 요즘 그 역할을 노래방이 대신하고 있다. 노래방에서 많이 불릴수록 음원 차트 진입이 쉽고 롱런 인기까지 얻을 수 있다. 노래방에서 부르는 노래로 입소문이 나면 자연스레 반복해 들으며 연습하고, 그 결과 스트리밍 횟수가 증가해 차트에 반영된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는 윤종신의 '좋니'다. 대형 팬덤을 이끄는 아이돌을 제치고 주요 음원사이트 실시간 차트 7곳에서 1위를 차지했다(23일 오전 6시 기준). 지난 6월 22일 미스틱엔터테인먼트 음원채널 '리슨' 열 번째 곡으로 발표된 '좋니'는 발매 당시만 해도 순위권 밖이었다. 가온차트 25주 차(6월 18~24일) 주간 순위에서 118위로 처음 랭크된 이래로 8주간 꾸준히 상승 그래프를 탔다. 노래방 차트에선 더 가파른 속도로 순위가 올랐다. 27주 차(7월 2~8일) 69위로 처음 진입해 28·15·6·4·2위에 오르며 애창곡 반열에 들었다.
황치열의 '매일 듣는 노래' 또한 노래방 손님들이 알아본 노래. 지난 6월 13일 발매 후 조용히 입소문을 내 오다 26주 차(6월 25일~7월 1일) 노래방 차트에서 100위 이상 순위가 급상승해 41위에 들었다. 2주 후인 28주 차에서 1위를 찍었다. 보통 노래방은 한참 전 발매곡들이 인기몰이를 한다. 황치열의 경우 놀라운 속도로 애창곡 목록에 꼽혔다. 덕분에 주요 음원 차트 실시간 차트에서도 롱런 흥행 중이다. 멜론 최상위권에 랭크하고 여름 발라드 시장을 선점했다.
지난해 '역주행 아이콘'이었던 한동근도 노래방 차트 인기를 제대로 실감하고 있다. 32주 차(8월 6~12일) 노래방 차트에서 20위권에 무려 3곡이 포진했다. 8위 '그대라는 사치'(2016년) ·9위 '미치고 싶다'(2017년) ·14위 '이 소설의 끝을 다시 써보려 해'(2014년)까지 발매 시기는 제각각이지만 노래방에선 꾸준히 울려 퍼지고 있다. 멜론 실시간 차트에서도 한동근의 이름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엠씨더맥스가 숨은 음원 강자로 손꼽히는 이유도 노래방에 있다. 같은 기간 노래방 차트에 '어디에도'·'행복하지 말아요'·'원 러브'·'잠시만 안녕'·'입술의 말'까지 지분율 5%를 자랑한다. 이 밖에도 임창정·버즈·박효신 등이 노래방 차트 붙박이로 인기몰이 중이다.
지난해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노래방·유흥주점에서 지급하는 음악 사용료는 매년 300억원에 이른다. 불법 복제로 몸살을 앓았던 길보드와는 달리 저작권료를 제대로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업계에선 노래방 차트를 주목할 수밖에 없다. 업계 한 관계자는 "일부러 가창 도전 욕구를 자극하는 음역대를 염두에 두고 노래를 만들고 처절한 가사로 공감대를 형성하고자 하는 노력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