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 드래곤' 이청용(29·크리스탈 팰리스)의 목소리는 조용했다. 눈 깜짝할 새 멀어져 버린 태극마크에 대한 그리움이나 지금 자신의 처지보다 한국 축구의 운명이 걸린 일전을 앞두고 있는 동료들에 대한 걱정이 더 짙게 배어 있는 목소리였다.
이청용은 27일(한국시간) 영국 런던 셀허스트파크에서 끝난 2017~2018시즌 잉글랜드프리미어리그(EPL) 3라운드 스완지 시티와 홈경기에서 후반 시작 직후 교체돼 그라운드를 밟았다. 팀은 스완지 시티에 0-2로 패했다.
올 시즌 첫 정규 리그 출전이자 지난 카라바오컵(리그컵) 대회 이후 두 번째 교체 출전이다. 후반 추가시간까지 총 48분을 뛴 이청용은 공격포인트를 기록하진 못했지만 2경기 연속 좋은 움직임을 보였다. 이날 경기 이후 믹스트존에서 만난 이청용은 자신의 플레이에 대해 "아직까지 충분히 만족하지 못한다. 경기 중에 좋은 기회도 있었고, 실수도 있었는데 계속해서 보완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경기를 많이 못 뛰었다. 프리 시즌부터 45분 이상 뛴 적이 많이 없었는데 아무래도 경기를 나서다 보면 경기 감각도 좋아지지 않을까 싶다"고 덧붙인 그는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데 이번 A매치 휴식기를 반전의 기회로 삼아 다음 번리전에는 좀 더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준비를 잘하겠다"고 각오를 전했다.
이청용은 A매치 기간 때마다 항상 대표팀에 합류해 경기를 준비하던 선수였다. 기성용(28·스완지 시티)과 함께 '쌍용'으로 불리며 한국 축구의 대들보였고 대표팀 주장을 맡을 만큼 인망도 두터운 인물이었다. 그러나 이청용의 실력과 그가 품은 가능성에 비해 뻗어 나갈 기회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볼턴 원더러스 시절 심각한 부상으로 선수 생활의 위기를 맞아 오랜 시간 치료와 재활에 몰두하는 사이 소속팀이 강등되는 불운도 겪었고, 심기일전해 이적한 팀에서는 주전 경쟁에서 밀려나 벤치만 달구는 신세가 됐다.
2016~2017시즌은 특히 더 가혹했다. 자신을 외면하던 앨런 파듀(56) 감독이 경질되고 샘 앨러다이스(63) 감독이 부임하면서 기회를 얻나 싶었지만 반전은 없었다. EPL 정규 리그 15경기에 출전했지만 그중 선발 출전은 겨우 4번에 불과했다. 이청용은 경기력을 유지하기 위해 리저브(21세 이하)팀 경기에 나서는 등 그의 말대로 '힘든 시기'를 겪었다.
소속팀에서 경기에 나서지 못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자연스레 태극마크와도 멀어졌다. 대표팀 단골손님이던 그는 지난해 11월 이후 A매치 휴식기마다 대표팀의 경기를 TV로 지켜봐야 했다. 지난 5월 울리 슈틸리케(63) 감독의 마지막 경기였던 이라크 평가전-최종예선 8차전 카타르 원정경기 명단에 오랜만에 이름을 올렸지만 기대만큼 활약하진 못했다. 당시 이라크와 평가전에 선발로 나선 이청용은 전반 45분을 소화한 뒤 그라운드를 떠났고 카타르전에는 출전조차 하지 못했다.
그리고 신태용(47) 감독이 부임한 뒤 처음 발표된 이번 명단에도 그의 이름은 없었다. "'재활 후 복귀해 팀 훈련을 100% 참여하는가, 프리 시즌에 얼마나 뛰는가'를 체크하겠다"던 신 감독의 '평가 기준'에서 합격점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다시 그라운드 밖에서 동료들을 응원하게 됐지만 이청용은 지금 선수들이 느끼고 있을 부담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는 "월드컵 진출 여부가 걸린 만큼 선수들에겐 워낙 부담이 많은 경기일 것"이라며 "그렇다고 너무 불안감을 갖고 경기를 준비하면 경기력도 안 좋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어 "(선수들이 부담스러울 수 있으니) 나도 최대한 말을 아끼고 싶다. 간절히 응원하는 수밖에 없다"며 "선수들을 믿는다"고 응원의 말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