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견된 수순이지만 그 이상으로 반응이 거세다. 흔하디 흔한 남성중심 영화에서 과연 뭐가 더 변할 수 있을까 싶었더니 여성 캐릭터에 대한 배려와 예의가 '아예' 사라졌다. 전작 '신세계'를 통해 여성 관객들의 지지를 받았던 박훈정 감독은 '브이아이피'로 인해 질타와 비난을 한 몸에 받게 됐다.
인터뷰 내내 "심란하다"는 말을 여러 번 반복한 박훈정 감독은 인정할 것은 솔직하게 인정하고 넘어가는 모습을 보였다. 스스로 "젠더 감수성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며 "'좀 더 깊이 고민해야겠구나' 생각했다"고 나름 반성의 뜻을 표한 것. 하지만 영화는 감독의 뜻대로 만들어졌고 그대로 공개됐다. 그리고 관객들은 외면했다. 흥행은 단연 실패다.
올해 영화계의 가장 큰 가르침은 '관객들과 소통하지 못하는 영화에 흥행은 없다'는 것.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입소문에 의한 빠른 정보력과 자발적 보이콧으로 이어지는 행동력은 확실히 이전과는 많이 달라진 분위기다. 흥행에 목마른 감독과 배우들이 뭉쳐 탄생시킨 '브이아이피'가 그 중심에 서게 된 것은 여러 의미와 아쉬움을 남긴다. ※인터뷰②에서 이어집니다.
- 엔딩에 대한 고민도 많았을 것 같다. 뭔가 아련한 느낌이다. "원래는 그 뒤에 짤린 부분이 있다. 진짜 엔딩은 꽃길을 걷는 소녀가 다시 등장하는 것이었다. 김광일 패거리의 차가 지나가기 전 리대범(박희순)과 소녀가 먼저 스치듯 만나는 장면이다. 소녀가 걸어가면서 카메라가 프레임 아웃되는. 소녀와 코스모스 길로 끝내려고 했다. 소녀가 다시 등장해야 맞다고 생각했다."
- 김광일의 엔딩은 "광일이야 그렇게 죽어 마땅한 인물이고. 진작 없애 버렸어야 하는 인물인데 처리를 못해 그 사단을 다 겪은 것이니까. 고민없이 보냈다.(웃음)"
- 어쩌다 보니 흥행이 아쉽고 필요한 감독과 배우들이 뭉쳤다. "배우들에게도 이야기 했는데 이 영화는 목표가 본전치기다. 본전치기만 해도 성공이다. 다들 그렇게 받아 들이고 있다." - '대호' 실패의 아쉬움은 없나. "돌이켜 보면 내가 그것을 할 만한 감냥의 사람이 아니었다. 철학적인 메시지가 많이 들어있는 작품이라. '조금 더 나이를 먹고 할 것 그랬나' 싶기도 했다. 시나리오가 나오고 영화가 나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애초 내가 연출할 생각으로 쓴 작품이 아니기 때문에 막상 연출을 하려고 했을 땐 깊이나 철학적 사유가 부족했던 것 같다. 직접 다 보여줘야 하고, 관객들이 함께 느끼게 해줬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 반면 '신세계'는 여전히 회자되고 있는 대표작이다. "그 때 당시 딱 사랑받을 수 있었던 작품이었던 것 같다. 나 역시 겁이 없었다고 해야 하나? '안 되면 말지 뭐'라는 마음으로 덤볐다. 솔직히 그렇게까지 잘 될 줄은 몰랐다. 촬영 전에도 주변에서는 다 '안 된다'고 했다."
- 톱배우들이 충출동 했는데도? "오히려 배우들이 캐스팅 됐을 때 '아저씨들과 뭐하냐'는 반응이 많았다. '올드하다'는 의견도 상당했고.(웃음) 확실히 운이 좋았던 것 같다. 이전까지 한국에서 느와르라는 장르가 별로 없었고, 있어도 잘 안 됐기 때문에 더 돋보였던 것 같기도 하다. 또 남자들끼리 우정, 브로맨스, 의리를 막 따지던 사회 분위기도 있었다."
- '신세계2'를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는 풍문이 많다. "블로그에 글을 올렸던 것은 프리퀄은 못 한다는 것이었다. 프리퀄은 현실적으로 제작이 어렵다. 다만 시퀄은 가능하다. 기회가 되면 할 수 있는데 '기회가 돼야' 할 수 있다.(웃음) 투자배급사가 NEW와 이야기는 나누고 있다. 아직 명확하게 수면 위로 올라온 것은 없다. 해결해야 할 문제들도 많다."
- '브이아이피'의 궁극적인 메시지는 무엇인가. "보이는 그대로다. 끈적끈적한 영화 말고, 퍼석거리고 드라이한, 서늘한 느와르 범죄영화를 만들고 싶었고 보여주고 싶었다. 그렇게 봐 주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