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엽(41·삼성)보다 한 살 더 많은 미국 메이저리그의 데이비드 오티즈(42)는 지난해 예고 은퇴를 했다. 그런데 시즌이 한창이던 작년 6월 오티즈는 "은퇴를 선언한 것을 후회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승엽도 조금은 같은 생각이다.
오티즈가 은퇴 선언에 대해 후회한 건 은퇴 기념행사가 너무 많아서였다. 몇 년 전부터 '은퇴 투어' 문화가 자리 잡은 미국에선 통산 2408경기 동안 타율 0.286·541홈런·1768타점을 올린 오티즈를 위해 많은 이벤트를 진행했다. 당시 오티즈는 "너무 바쁘다.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며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경을 써야 한다"고 하소연했다.
한국야구위원회(KBO) 리그 첫 번째 '은퇴 투어'의 주인공은 이승엽이다. KBO와 각 구단은 올 시즌 후 유니폼을 벗는 '국민타자' 이승엽을 위해 역대 최초로 은퇴 투어를 진행하고 있다. 이승엽의 '은퇴 투어'는 지난달 11일 대전(한화)을 시작으로 같은 달 18일 수원(kt전), 23일 고척(넥센전) 그리고 지난 1일 문학(SK전)에 이어 3일 잠실(두산)까지 총 5차례 열렸다. 오티즈의 이야기를 전해 들은 이승엽은 "조용히 은퇴했으면 번거롭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상대팀에 대한 배려 차원이다. '은퇴 투어'를 위해 각 구단이 다양한 선물과 이벤트를 준비하느라 무척 애를 쓰고 있다는 점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승엽이 화려한 은퇴 행사를 정중히 고사한 큰 이유이기도 하다.
이승엽은 팀 동료에게도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다. 그는 "은퇴 투어를 하면 그날은 선수단이 10분에서 20분 정도 일찍 움직여야 한다. 선수들에게는 그 시간이 정말 커서 미안하다"고 말했다. 경기 전에 '은퇴 투어' 이벤트가 열리므로, 원정팀(삼성)이 평소보다 일찍 훈련을 마쳐야 한다.
이승엽은 그래도 "'은퇴 투어'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어린이팬 36명과 사인회는 빼놓지 않고 소화한다.
'마지막 방문'은 늘 옛 기억을 떠올리게 만든다.
이승엽은 "대구를 빼고 가장 많이 뛴 곳이라 의미가 있다"며 잠실구장의 추억에 관해 말문을 열었다. 그가 1군 무대 데뷔전을 치른 곳이 바로 잠실이다. 1995년 4월 15일 잠실 LG전 9회 류중일을 대신해 대타로 출장했다. 그는 LG 김용수에게 중전 안타를 때려 내며 시작부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당시를 회상한 그는 "개막전 하루에만 몸무게가 4㎏이 빠졌다. 처음이었다"며 "정말 긴장을 많이 해서 더그아웃에 한 번도 앉아 있질 못했다. '이런 게 프로야구구나 싶었다. 촌놈이 출세했다'고 생각했다"고 털어놓았다. 이어 "1995년 (7월 23일) 잠실 첫 홈런을 박철순 선배를 상대로 뽑아냈다"며 "잠실은 관중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장내 아나운서가) 내 이름을 불러 주면 짜릿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