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를 이기는 데 중요한 것은 몇 명이 뛰느냐가 아닙니다. 투혼을 발휘하는 선수가 몇 명이나 있느냐죠."
지난달 31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만난 이란 축구대표팀 주장 아쉬칸 데자가(31)는 유창한 독일어로 한국전 우세 요인을 밝혔다.
이란 테헤란에서 태어난 데자가는 어린 시절 독일로 이민을 가 베를린에서 자란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그는 2002년 U-17세 이하(U-17) 대표팀 승선을 시작으로 독일 연령대별 대표팀을 거치는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2009년 스웨덴 U-21 유럽축구선수권대회에서는 독일 축구의 황금세대이자 현재 세계 정상급 선수로 꼽히는 마누엘 노이어(31)와 제롬 보아텡(29·이상 바이에른 뮌헨), 메수트 외질(31·아스널) 등과 함께 독일 대표로 출전해 우승을 이끌기도 했다.
데자가가 이끄는 이란은 이날 열린 한국과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예선 원정경기에서 0-0 무승부를 기록했다. 후반 7분 사에드 에자톨라이(21·로스토프)가 퇴장당해 10명으로 싸웠지만 이란은 11명이 뛴 한국을 압도했다.
데자가는 수적 열세를 이겨 낸 비결을 두고 '팀가이스트(Teamgeist·독일어로 팀 정신)'의 승리라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이 초반에 무척 공격적으로 나오는 바람에 우리는 당초 계획보다 더 공격적으로 경기를 운영해야 하는 어려움을 겪었다"면서도 "양 팀의 실력이 비슷하면 승부는 팀가이스트에서 갈리는데 우리는 10명이 뛰면서도 한국보다 더 강한 정신력을 발휘했다"고 말했다.
2002 한일월드컵 4강 신화 멤버인 이천수 JTBC 해설위원의 관전평과 동일한 날카로운 분석이었다. 이 위원은 일간스포츠와 통화에서 "이란 선수들의 눈을 보면 반드시 막아 내겠다는 간절함이 있었는데 우리 선수들에게는 골을 넣겠다는 강한 의지가 보였는가"라고 반문하며 "국가대표라면 기술적인 수준은 당연히 정상급 수준이다. 하지만 태극마크에 대한 책임감은 정상급으로 보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데자가는 정신력만큼이나 조직력도 승부를 가르는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란 대표팀 선수들은 함께 자랐다고 해도 될 만큼 끈끈하다. 경기 중 눈빛만 봐도 서로의 마음을 확인할 수 있을 정도"라고 표현했다. 실제로 이란은 카를로스 케이로스(64·포르투갈) 감독이 부임한 2011년부터 7년간 꾸준히 주축 선수들의 조직력 완성에 힘을 기울여 왔다. 이란이 최종예선 A조에서 9경기 무패(6승3무·승점 21)와 무실점이라는 압도적인 성적으로 일찌감치 러시아월드컵 본선행을 확정할 수 있었던 이유다.
데자가는 "한국은 잉글랜드 토트넘에서 뛰는 손흥민처럼 유럽 무대에서 활약하는 좋은 선수들이 많다. 하지만 이란이나 일본 등 아시아에서 강팀으로 분류되는 팀에도 유럽 출신 선수들은 많기에 메리트라고 볼 수 없다. 이들이 팀에 잘 녹아들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한국과 우즈베키스탄(우즈벡)을 모두 상대해 본 선수로서 어느 팀의 승리를 점치느냐'는 질문에 그는 "경기를 해 보니 한국은 수비에서 공격으로 전개되는 과정이 매끄럽지 못했다. 하지만 우즈벡에 밀릴 팀은 절대 아니다"며 "한국이 강한 팀가이스트를 발휘한다면 월드컵 본선행을 확정 지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