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시장 재기를 노리던 혼다코리아의 앞날이 또다시 불투명해졌다. 올 들어 불거진 주력 모델들의 '부식' 파문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아서다. 오히려 사태 발생 후 2주가 지나서야 보상안을 내놓아 '늦장·부실 대응' 논란마저 일고 있다. 업계는 2009년 이후 최고의 판매 실적을 보이던 혼다코리아의 상승세가 다시 꺾이진 않을지 우려하고 있다.
고객 마음 녹슬게 한 혼다
4일 업계에 따르면 혼다코리아는 올 들어 CR-V, 어코드 등 주력 모델에서 잇따라 심각한 부식 현상이 발생, 소비자들의 빈축을 사고 있다.
이번 논란은 지난 4월 완전변경(풀체인지)을 거쳐 출시한 5세대 CR-V 내부에서 잇따라 녹이 슨 부분이 발견되면서 촉발됐다.
지난달 초부터 이와 관련한 소비자들의 불만이 국토교통부 자동차 리콜센터를 비롯해 YMCA자동차안전센터, 온라인 동호회 등에 빗발치고 있다.
대부분 출고한 지 불과 몇 달, 심지어 며칠 지나지 않은 CR-V 내부 곳곳에서 녹이 발견됐다는 내용이다.
부식 현상은 주로 운전석 스티어링휠(운전대)·대시보드 아랫부분 금속부품(브래킷)과 내부 철제 용접 부위 등에서 나타나고 있다.
지난달 CR-V를 구매한 한 차주는 "차량 출고 10일 만에 차량 내부에서 녹이 슨 부분을 발견했다"며 "차량 내부 공기에 나쁜 영향을 끼치진 않을지, 자칫 에어컨 등으로 녹이 옮겨 가진 않을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설상가상으로 최근에는 녹과 부식이 CR-V 차량 외에도 세단 어코드에서도 발견되며 '녹 게이트'로 확산되고 있다.
어코드의 녹 발생 위치 역시 엔진룸, 핸들 하부 내측, 운전석 및 조수석 시트 하부 등 CR-V의 부위와 비슷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YMCA 자동차결함 신고센터에는 해당 차량의 녹 문제 신고가 300건 넘게 접수된 상태다.
정부도 혼다코리아 차량에 대해 긴급 조사에 나섰다. 국토교통부는 조만간 혼다 CR-V 차량 부식 현상에 대해 전수조사를 마친 뒤 필요할 경우 리콜 및 징벌적 조치를 내린다는 방침이다.
혼다 늦장 대응…뿔난 소비자들
더 큰 문제는 혼다코리아가 안이한 대응으로 사태를 더욱 키우고 있다는 데 있다.
소비자들은 해당 차량의 판매 정지와 보상·환불을 요구하고 있지만 혼다코리아 측은 이를 거부하고 있다.
더구나 사태 발생 2주가 지난 8월 22일에서야 공식 사과 없이 "녹 발생 차량에 대해 무상 수리를 진행하겠다"고 밝혀 소비자들의 화만 키웠다.
급기야 소비자들은 소비자단체,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 대책을 마련해 달라고 호소하는 등 단체 행동에 나선 상태다.
한 어코드 차주는 "혼다코리아는 공식적인 사과 한마디 없이 무상 수리를 해 준다고 하는데, 신뢰할 수 없다"며 "부식 현상에 대한 명확한 원인을 규명하지 않고, 무상 수리만으로 문제를 덮으려는 꼼수"라고 지적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지난달 31일 혼다코리아에 문제가 된 차량의 교환 및 환불을 촉구하고 나섰다.
또 혼다코리아와 같은 자동차 업체의 소비자 기만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자동차 교환·환불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실련 관계자는 "자동차에 있어 '녹'은 사람에게 '암'과 같다"며 "녹투성이인 혼다의 불량 자동차에 대한 교환·환불을 실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이번 사태에서 보듯 자동차 소비자들의 권익 보호를 위해 일명 '레몬법'이라고 불리는 자동차 교환·환불법 제정이 시급하다"며 "자동차 소비자들을 실질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실효성 있는 제도 도입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논란 확산에 하반기 실적 '빨간불'
사태가 일파만파 확산되면서 상승세를 타던 혼다코리아의 판매 실적에도 급제동이 걸릴 전망이다.
혼다코리아는 올 들어 폭스바겐 배출가스 조작 사건의 반사이익을 누리며 내수 시장 내 입지를 빠르게 넓혀 왔다.
지난 5월과 6월에는 2개월 연속으로 국내 수입차 시장 3위에 이름을 올렸다.
올해(1~7월) 내수 총판매량은 6386대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81.2% 증가한 실적이다. 작년 내수 총판매량인 6636대와 맞먹는 수준이다.
특히 올해 누적 판매량 가운데 녹 문제가 발생한 CR-V는 1065대가 판매됐다. 어코드는 2850대가 팔렸다. 두 차종의 브랜드 내 점유율이 60%가 넘는다는 얘기다.
한 업계 관계자는 "주력 모델이 잇따라 부식 논란에 휩싸이면서 혼다의 하반기 실적에도 빨간불이 들어왔다"며 "글로벌 금융 위기인 '리먼브라더스 사태'의 여파로 실적이 반 토막이 난 2009년 이후 약 9년 만에 '제2의 전성기'을 맞는 듯했지만 스스로 그 기회를 날려 버리고 있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혼다코리아 관계자는 "일부 차량에서 녹이 발생한 것을 확인했지만 차량 안전성에는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며 "무상 수리를 진행하는 만큼 교환이나 환불은 어렵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고객들에게 개별적으로 연락을 해 사과하고 있는 만큼, 공식 사과 계획도 없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하반기 실적과 관련해서는 "현재 구체적인 답변을 말하기가 쉽지 않다"며 "사태를 조기에 매듭 지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