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기훈 효과'는 컸다. 한국 축구의 9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에 앞장선 베테랑 염기훈(34)이 수원 삼성의 2연패 탈출도 이끌었다.
수원은 10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전남 드래곤즈와 KEB하나은행 K리그 클래식 28라운드 2017 홈경기에서 3-0 완승을 거뒀다. 염기훈은 후반 12분에 투입돼 33분간 그라운드를 누비며 팀 승리를 확정했다. 승점 3점을 보탠 4위 수원(승점 49)은 2위 제주 유나이티드와 격차를 승점 2점 차로 좁히며 선두권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염기훈은 이날 선발로 나설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벤치에서 경기를 시작했다. 이를 두고 서정원(47) 수원 감독은 "휴식을 주기 위해 염기훈을 뺐다. (대표팀에 다녀왔어도) 큰 무리가 없을 것 같았지만 선수 본인이 한 차례 쉬어 가기를 원했다"고 설명했다.
수원은 염기훈 없이도 경기를 잘 풀었다. 전반 13분 왼쪽에서 넘어온 크로스를 김민우(27)가 어깨 트래핑 뒤 슬쩍 밀어주자 페널티 지역으로 쇄도하던 산토스(32)가 곧바로 오른발 슈팅으로 연결하며 선제골을 뽑아냈다. 3분 뒤 추가골도 터졌다. 전남 수비 셋을 한 번에 뚫는 산토스의 스루패스를 신인 윤용호(21)가 침착하게 골키퍼 키를 넘기는 슛으로 마무리했다.
기세가 오른 수원 공격은 더 거세게 몰아쳤다. 올해 내내 잠잠하던 스트라이커 박기동(29)마저 시즌 첫 골을 쏜 것이다. 전반 25분 김민우가 페널티 지역에서 시도한 칩샷이 크로스바를 맞고 떨어지자 박기동이 골문으로 뛰어들며 배로 밀어 넣었다. 박기동의 집념이 돋보이는 장면이었다. 수원은 이후에도 공격을 주도하며 전남 수비를 압박했다.
그러는 동안 전남은 공격수 페체신(31)이 전반 27분과 37분 기록한 두 차례 슈팅이 전부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전남은 후반 4분 고태원(24)이 퇴장까지 당했다.
하지만 너무 이른 시기에 승기를 잡아서일까. 수원은 3-0 리드와 수적 우위를 점하고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수원은 후반 12분 전남 골잡이 자일(29)에게 단독 돌파를 허용하며 일대일 찬스를 내줬다. 신화용(34) 골키퍼가 뛰쳐나오며 선방을 하지 않았다면 영락없이 실점으로 연결될 수 있는 장면이었다.
서 감독은 지체하지 않고 박기동을 빼고 염기훈을 교체 투입했다. '염기훈 효과'는 즉시 나타났다. 그는 '왼발의 지배자'라는 별명답게 상대 진영 구석구석을 찌르는 패스와 날카로운 슈팅으로 중원을 완벽 장악했다. 처진 공격수로 나선 염기훈은 후반 13분 골지역에서 강력한 슈팅을 날리며 단번에 분위기를 바꿨다. 후반 18분 코너킥과 후반 19분 프리킥 상황에서 전담 키커로 나서며 후배들에게 작전을 지시하는 리더십을 발휘하며 안정감을 안겼다.
또 후반 33분에는 김민우에게 환상적인 크로스까지 내줘 관중들의 탄성까지 자아냈다. 마치 지난 6일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에서 벌어진 우즈베키스탄과 2018 러시아월드컵 최종예선 10차전 원정경기를 보는 것 같았다. 한국은 수원처럼 공격이 정체돼 있었는데 당시에도 염기훈이 후반 교체 투입돼 공격의 물꼬를 트는 해결사 역할을 했다.
이날 염기훈은 기술적인 부분만큼이나 투혼도 돋보였다. 후반 34분 왼쪽에서 볼을 받은 그는 악착같이 단독 드리블을 한 뒤 슈팅까지 이어 갔다. 소강상태로 접어든 후반 47분에는 골지역에서 몸을 던지는 헤딩슛을 시도해 홈팬들의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K리그 개인 통산 59골 97도움을 기록 중인 염기훈은 오는 16일 대구 원정에서 '60-60(60도움-60골)' 클럽 가입에 도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