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C그룹이 진퇴양난에 빠졌다. 고용노동부가 파리바게뜨의 제빵기사들을 본사인 SPC그룹이 불법파견했다며 초강경 제재를 내렸다. SPC그룹은 5000명이 넘는 제빵기사를 고용하거나 500억원이 넘는 과징금을 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SPC그룹은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입장이다. 더구나 제빵기사들을 정직원으로 전환해도 불법파견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법적 대응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노동부 "제빵기사 5378명 고용하라" 초강력 제재
고용노동부는 파리바게뜨를 운영하는 SPC그룹이 가맹점 근무 제빵기사들을 불법파견으로 사용했다고 보고 SPC그룹에 제빵기사 5378명을 직접 고용하라고 지난 21일 지시했다. 또 이날부터 25일 이내에 정직원 전환을 하지 않으면 530억원에 달하는 과태료를 내도록 했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7월 11일부터 파리바게뜨 본사와 협력 업체 11개소, 직영·위탁·가맹점 56개소 등 전국 68개소를 대상으로 근로감독을 실시했다. 그 결과 파리바게뜨의 본사인 SPC그룹이 하청 업체로부터 파견 나온 제빵기사들을 관리·감독했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에 따라 고용노동부는 제빵기사들이 연장·휴일에 근무하면서 받지 못한 체불 임금 총 110억1700만원도 SPC그룹이 내야 한다고 했다. 파리바게뜨에 제빵기사를 제공한 11개 협력 업체들은 전산 자료 변경 등 소위 '꺾기'로 수당을 지급하지 않았는데 그 책임을 본사에 돌린 것이다.
그동안 파리바게뜨는 도급·하청 업체로부터 가맹점에서 근무하는 제빵기사들을 공급받아 왔다. 파리바게뜨 가맹점주가 협력 업체와 도급 계약을 맺으면 협력 업체는 자신들과 근로 계약이 된 제빵기사를 보내는 식이다.
도급(하청)은 일감을 주는 도급인(원청)이 일감을 받는 수급인(하청)의 일 결과에 대해 보수를 지급하는 형태다. 근로자는 협력 업체의 지시만 받을 수 있다.
문제는 파리바게뜨 본사가 제빵기사들에게 전반적인 업무 지휘 및 명령을 했다는 사실이다. 현행 파견법에서는 도급 협력 업체 소속 직원에게 가맹점주나 가맹 본사가 업무 관련 지시를 할 수 없도록 돼 있다.
고용노동부는 "실제로 파리바게뜨는 가맹사업법상 교육·훈련 외에도 채용·평가·임금·승진 등에 대한 일괄적인 기준을 마련하고 시행했다"며 "소속 품질관리사를 통해 출퇴근 시간 관리는 물론이고 업무에 대한 전반적인 지시·감독을 하며 파견법상 사용사업주로 역할을 했다"고 했다.
고용노동부는 협력 업체가 중간에서 제빵기사들의 임금을 부당하게 챙겼다고도 했다. 고용노동부는 "인력을 제공하는 협력 업체들은 파리바게뜨 퇴직 임직원들이 설립한 것으로 단순 제빵기사 공급만 하면서 가맹점주들로부터 도급비를 받았다"며 "이는 제빵기사들에게 지급돼야 할 임금 일부가 협력 업체로 흘러 들어간 것"이라고 지적했다.
SPC 고용해도 안 해도 비용 부담…소송 가능성 제기돼
SPC그룹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처지에 놓였다. 정부에서 내린 고용 명령을 따르자니 비용 부담이 커지고, 따르지 않으면 530억원의 과징금을 물어야 한다.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SPC그룹이 불법 고용을 했다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이에 업계에서는 SPC그룹이 법적 소송을 내고 배수진을 칠 것으로 보고 있다.
SPC그룹 관계자는 "이번 결과에 대해 내부적으로 검토하고 있으며 법적 소송 여부는 아직 정해진 것이 없다"고 말했다.
SPC그룹 측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애초에 노동부의 진정 요구에 따라 '꺾기' 등에 의한 미지급 임금 42억원을 냈고 가맹점주와 협동조합 설립으로 인력 수급 구조 재정비 등 대안을 냈지만 어느 것도 받아들여지지 않고 모두 본사 책임으로 떠넘기고 있다는 것이다.
또 SPC그룹은 정직원 전환을 한다고 해도 불법 파견 가능성이 사라지지 않는다고 했다.
SPC그룹 관계자는 "현행법에서 제빵은 파견이 금지돼 있기 때문에 본사와 가맹점주가 도급 계약을 맺게 되면 이번과 비슷한 불법 파견이 일어날 수도 있다"며 "정직원으로 전환하는 것이 도급 계약의 문제를 해결하진 않는다"고 주장했다.
또 정직원 전환에 대한 비용 부담도 문제다.
SPC그룹 관계자는 "제빵기사들을 직접 고용하게 되면 연간 1000억원 정도가 들 것"이라며 "도급으로 고용했을 때 들었던 비용보다 늘어나며 이는 고스란히 가맹점주들의 비용 부담으로 이어진다. 점주들도 이번 결정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고 말했다.
도급 계약의 경우 제빵기사 임금의 70%는 점주가, 30%는 본사가 부담하고 있다. 제빵기사의 정직원 전환 이후에도 이 비율은 그대로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파리바게뜨 제빵기사 문제를 처음으로 알린 이정미 정의당 의원은 이번 문제를 국정감사로까지 끌고 갈 예정이다. 이번 사태는 삼성전자서비스 수리 직원, 현대기아차의 사내 하도급 직원 등 비슷한 고용 계약을 맺은 업체에도 파장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이 의원은 "허영인 SPC그룹 회장과 권인태 파리크라상 대표, 협력사 관계자를 국정감사에 불러 직접 심문할 것"이라며 "지금이라도 SPC그룹은 불법적 인력 운영과 노동관계법 위반에 대해 사과하고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