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러시아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지었음에도 논란과 불신의 시기기 찾아왔다. 최종예선에서 부진을 거듭하며 대표팀은 비난의 중심에 섰다. 신태용(47) 감독이 소방수로 등장했지만 논란의 불을 끄지 못했다. 오히려 더욱 거센 바람이 불어 닥쳤다. 거스 히딩크(71) 감독발 태풍이 그것이다. 팬심은 분열됐고, 대표팀은 자리를 잡지 못한 채 우왕좌왕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신태용팀은 러시아월드컵을 향한 본격적인 출발을 알렸다. 다음 달 7일 모스크바에서 러시아와 평가전을 치른다. 그러로부터 3일 뒤 모로코와 일전을 펼칠 예정이다. 명단 23명도 발표했다.
이번 2연전은 위기이자 기회다. 좋은 경기력이 나오지 않는다면, 또 월드컵 본선 경쟁력을 보여 주지 못한다면 대표팀은 더욱 깊은 나락으로 빠질 것이 자명하다. 반대의 모습을 보인다면 신뢰를 잃어버린 팬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돌릴 수 있는 기회를 잡는 것이다. 희망을 제시해야 다음을 기대하게 만들 수 있다.
신 감독을 포함해 대표팀 전체가 힘을 합쳐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 리더가 필요하다. 원팀으로 팀을 이끌 수 있는 경쟁력과 위기를 극복해 봤던 풍부한 경험 그리고 한국 축구의 상징으로서 자격까지 갖춘 이가 등장할 때다. 적임자가 있다. 기성용(28·스완지 시티)과 이청용(29·크리스털 팰리스)의 '쌍용'이다.
◇ 비슷한 길을 걷다
기성용과 이청용은 '절친'답게 비슷한 길을 걸어왔다.
둘은 2006년 K리그 FC 서울에 나란히 입단했다. 어린 '쌍용'은 2군 무대에서 잠재력을 키웠다. 이런 그들에게 나타난 은인, 세뇰 귀네슈(65·현 베식타스 감독) 서울 감독이었다. '쌍용'의 잠재력을 확신한 귀네슈 감독은 그들을 1군 무대에 꾸준히 나설 수 있는 기회를 줬다. 귀네슈 감독 선택은 옳았다. '쌍용'이 K리그 정상급 선수로 거듭나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2008년 '쌍용'은 대표팀에도 나란히 선발됐다.
그해 5월 31일 요르단과 2010 남아공 월드컵 3차예선에서 이청용이 먼저 A매치 데뷔전을 치렀다. 이청용은 데뷔전이라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강렬한 움직임을 보여 찬사를 받았다. 이어 같은 해 9월 5일 기성용이 A매치 데뷔전에 나섰다. 이번에도 상대는 요르단이었다. 기성용 역시 인상적인 데뷔전을 치렀다. 그리고 '쌍용'의 첫 호흡은 합격점을 받았다. 이 경기에서 이청용은 A매치 데뷔골을 신고하며 기성용과 궁합을 입증했다.
이후 대표팀 오른쪽 날개와 중앙 미드필더는 '쌍용'의 자리였다. 그 누구에게도 허락되지 않았다. 이들은 남아공 월드컵, 2011 카타르 아시안컵, 2014 브라질월드컵 등에서 활약하며 한국 축구의 중심으로 자리를 확고히 잡았다.
축구의 대륙 유럽으로 진출한 시기도 같았다. 2009년 서울을 떠나 유럽으로 향했다. 기성용은 스코틀랜드 셀틱, 이청용은 잉글랜드 볼턴이 목적지였다.
◇ 희비가 엇갈리다
유럽 땅을 밟자 희비는 엇갈렸다.
기성용은 큰 위기 없이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이청용은 시련의 연속이었다. 초반은 좋았다. 이청용은 볼턴에서 확실한 공격 옵션으로 활약했다. 하지만 2011년 7월 세 번째 시즌을 준비하던 프리시즌 도중 심각한 부상을 당했다. 당시 뉴포트 카운티의 톰 밀러(27)는 이청용에게 살인태클을 자행했고, 이로 인해 이청용은 오른쪽 다리 골절상을 입었다. 그는 9개월 동안 그라운드에 나서지 못했다.
이후 이청용의 유럽 인생은 꼬이고 또 꼬였다. 2012년 볼턴이 챔피언십(2부리그)로 강등됐다. 이청용은 2부리그를 전전해야 했다. 2015년 2월 그는 크리스털 팰리스로 이적하며 1부리그에 복귀했다. 기대감이 컸다. 하지만 그를 기다린 건 큰 좌절감이었다. 소속팀에서 철저히 외면을 받았다. 주전 경쟁에서 완전히 밀린 것이다.
대표팀에서도 절친의 운명은 갈렸다.
기성용은 꾸준히 대표팀에 이름을 올린 반면 이청용은 들락날락했다. 이청용은 간혹 뽑혔지만 그때마다 논란이 일어났다.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던 이청용의 대표팀 선발 분위기는 이제 없다. 소속팀 경기에 뛰지 못하는 선수를 대표팀에 불러들였기 때문이다.
대표팀 활약상도 달랐다. 기성용은 중원에서 중심을 잡았지만 이청용은 이렇다 할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다.
기성용은 A매치 93경기에 출전했다. 이청용은 76경기다. '쌍용'이 비슷한 시기에 대표팀을 시작했지만 A매치 경기 수 차이가 난다. 이는 이청용이 그만큼 대표팀에서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했다는 의미다.
◇ 함께 다시 날아야 한다
이제 '쌍용'도 대표팀에서 고참급이 됐다.
박지성(36)과 이영표(40)가 그랬듯이 한국 축구의 상징으로서 지금의 위기를 돌파하는 데 온 힘을 쏟아야 한다. 반드시 해내야 한다. '쌍용'이 해내지 못한다면 한국 축구의 미래는 암울할 수밖에 없다.
다행히 최근 두 선수의 분위기는 좋다.
기성용은 무릎 부상에서 완전히 회복했다. 최종예선 9차전 이란, 10차전 우즈베키스탄과 경기에 동행은 했지만 부상 여파로 경기에 뛰지는 못했다. 기성용이 없는 대표팀은 무기력했다. 이청용은 선발되지 못했다.
이번 2연전에는 두 선수 모두 좋은 상태로 합류한다.
기성용은 부상에서 회복했다. 소속팀 훈련에 참가했고, 2군 경기에서 나섰다. 경기에 뛸 수 있는 상황이다. 이청용은 지난해 12월 이후 약 9개월 만에 선발 출전을 했다. 지난 10일 열린 번리와 프리미어리그 4라운드였다. 경기력은 아쉬웠다. 이청용은 백패스 실수를 저지르며 팀의 0-1 패배에 앞장선 셈이 됐다. 그러나 이청용은 올 시즌 첫 선발출전이 희망을 안겨 주고 있다. 선발이라는 의미는 완벽한 몸상태와 감독의 신뢰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제 '쌍용'이 대표팀에서 다시 환상의 호흡을 보여 줄 때다.
부상에서 복귀한 기성용이 중심을 잡고, 출전 기회를 잡은 이청용은 골로 말해야 한다. 스트라이커 부재 현상을 겪고 있는 대표팀이다. 최전방에 확실히 믿을만한 자원이 없다. 이청용의 골이 간절한 상황이다. 지난해 9월 1일 최종예선 1차전 중국전에서 넣은 골이 이청용의 마지막 골이다. 1년이 더 지났다. 이제는 터져야 한다.
'쌍용'이 함께 다시 날아오른다면 추락하는 대표팀이 비상할 수 있는 날개를 얻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