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 업계가 오는 12일부터 시작되는 국회 국정감사를 앞두고 전전긍긍하고 있다. 유통 기업에 대한 개혁의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높아지면서 재벌 총수와 일가는 물론 주요 기업 최고경영자(CEO)의 증인·참고인 채택 요청이 봇물을 이루고 있어서다. 업계에서는 올해 국감이 이른바 '기업 청문회'가 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눈치다.
유통 기업인 줄소환 예고
8일 국회와 재계에 따르면 국회는 오는 12일부터 31일까지 20일 간 국감 일정에 돌입한다. 올해 국감 역시 정무위원회를 비롯해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 환경노동위 등에서 채택한 증인 리스트에 주요 유통 기업의 최고 경영진들의 이름이 대거 올랐다. 일부 의원들은 자신이 증인으로 신청한 기업 총수를 미리 언급하며, 전투 의지를 높이고 있다.
정무위원회는 피자헛 갑질 논란과 생리대 유해성 문제와 관련해 이스티븐 크리스토퍼 피자헛 대표이사와 최규복 유한킴벌리 대표를 증인으로 채택했다.
여기에 문재인 대통령이 '갓뚜기(God+오뚜기)'로 치켜세우며 모범기업으로 꼽은 오뚜기의 함영준 회장도 자유한국당의 요구로 증인에 포함됐다. 함 회장은 라면값 담합과 일감몰아주기 의혹과 관련된 질의를 받게 될 전망이다. 한 정무위 야당 관계자는 "청와대의 모범기업 기준이 오뚜기처럼 계열사에 일감몰아주는 기업인지 따져보겠다"고 별렀다.
기획재정위원회도 다수의 재벌 총수를 국회로 소환할 계획이다.
기재위는 박근혜 정부에서 실시한 면세점 추가 선정과 관련된 입장을 듣기 위해 재벌 총수를 비롯해 기업 오너를 소환키로 했다.
지난 7월 공개된 감사원 감사결과 2015년 면세점 선정과정에서 점수조작이 이뤄진 것으로 확인된 만큼 주요 면세점 CEO들을 불러 면세점 특허심사 당시 상황과 특혜 의혹 등을 따져 묻는다는 계획이다.
이 경우 아직 증인 명단에 포함되진 않았지만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을 비롯해 최태원 SK 회장, 정지선 현대백화점 회장, 이명희 신세계백화점 회장 등이 소환 대상으로 예상된다.
보건복지위원회는 생리대 유해성 논란 등과 관련해 김혜숙 유한킴벌리 상무, 최병민 깨끗한나라 대표 등 12명을 이미 증인으로 채택했다.
또 이른바 ‘햄버거병’과 집단 장염 발생 등 논란의 당사자로 지목된 맥도날드 조주연 대표도 증인 명단에 올랐다.
여기에 아직도 각 상임위원회 별로 국감 증인 채택을 위한 협의를 진행 중인 점을 감안하면 향후 증인으로 채택되는 기업인의 수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김성영 이마트24 대표, 강희태 롯데백화점 대표이사, 정일채 AK플라자 대표이사, 허영인 SPC그룹 회장, 권인태 파리크라상 대표이사 등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다.
묻지마·벌주기식 증인 채택?…'국감 갑질' 지적도
올해 국감 역시 유통 기업 대표들이 무더기로 소환되면서 '증인신청 실명제' 도입이 무색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는 올해 국감부터 증인 채택 시 신청자의 이름을 함께 밝히는 '증인신청 실명제'를 실시했다.
어느 의원이, 무슨 이유로, 누구를 증인으로 신청했는지 투명하게 공개해 무분별한 증인 채택을 막겠다는 취지에서다.
하지만 큰 효과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지금까지 상임위원회별로 채택된 기업인 증인 수는 정무위 29명을 비롯해 80명 가까이 된다.
그러나 상임위가 추가로 채택할 가능성이 크고, 아직 채택하지 않은 상임위도 적지 않아 그 숫자는 역대 최대를 기록한 지난해(150명) 수준도 넘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일부에서는 해마다 이어지는 기업인들의 줄소환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앞선 국감에서 여야간 신경전으로 인한 파행 등으로 유통 기업 대표가 국감장에 출석해 시간만 허비한 사례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해 국내 홈쇼핑 CEO들은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국감장에 줄소환돼 하루 종일 대기했지만, 정작 질의응답 시간은 짧거나 아예 질의조차 이뤄지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묻지마 증인채택' '벌주기식' 등 '국감 갑질'이라는 지적을 받은 바 있다.
한 유통 업계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가 재벌 개혁과 관련해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면서 이번 국감에도 유통 기업 총수 및 대표가 다수 참석할 전망"이라며 "묻지마 식으로 일단 소환해놓고 호통을 치던 구태는 사라져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