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했던 영화 '남한산성(황동혁 감독)'마저 무너졌다. 20일까지 누적관객수는 약 370만 명. 우려대로 손익분기점 500만 돌파에는 실패할 것으로 보인다.
'남한산성'이 그려낸 스토리와 꼭 닮은 흥행 레이스다. 패배의 역사, 굴욕의 역사를 담았지만 나라와 백성을 지키기 위해 치열하게 싸웠던 선조들의 노고까지 무시할 수는 없다. 영화 '남한산성' 역시 마찬가지다. 흥행에 실패했다고 해서 영화 자체를 폄하하기에는 '좋은 영화, 잘 만든 영화'라는 호평이 더 많다. 원작·연출·스케일·연기력까지 뭐 하나 빈틈이 없다. 다만 지금의 관객들과 더 많이 소통하지 못했을 뿐이다. 관객들이 원하는 영화는 따로 있었다.
'도가니' '수상한 그녀'의 연타석 흥행 홈런으로 스타감독 반열에 오른 황동혁 감독 역시 "'남한산성'은 오히려 흥행을 생각하지 않은 작품이다"고 잘라 말했다. 상업적 요소를 최대한 배제하고 역사가 남긴 메시지를 전달하려 노력했다. 작품의 완성도를 0순위로 생각한 황동혁 감독에게 '남한산성'은 스스로를 하얗게 불태우게 만든 작품이자, 자신의 필모그래피 중 가장 후회가 남지 않은 작품이다. 개인의 목적은 이미 달성했다.
'남한산성'에 감동한 일부 관객들은 "흥행 실패라는 결과로 인해 '남한산성'과 같은 작품이 더 이상 만들어지지 않을까봐, 못할까봐 아쉽고 불안하다"는 반응을 나타내고 있다. 몇 백만이라는 기록은 잊혀지겠지만 작품성이라는 의미있는 내용으로 기억될 '남한산성'. 황동혁 감독은 이번에도 관객들을 실망시키지 않았다.
※인터뷰①에서 이어집니다.
- 관객에게 질문을 던지기 위해서는 영화부터 중심을 잡아야 했을텐데. "맞다. 연기는 이병헌·김윤석 두 배우가 하는 것이지만 중심은 감독이 잡아야 했다. 쟁쟁하고 독보적이 세계를 구축한 이병헌·김윤석 두 배우를 모셔놓고 한 쪽으로 기우는 이야기를 할 수는 없었다. 애초 그렇게 흘러가서도 안 되는 스토리고. 그것을 처음부터 약속 드리고 시작했다. 균형을 맞추기 위해 배우들의 의견이 있으면 반영하면서 최후의 순간까지 시나리오 작업을 했다."
- '나라면 누구 편을 들 것 같다' 감독도 생각해 봤을 문제다. "답을 찾을 수 없어서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처한 상황에서 옳고 그른 것을 과연 따질 수 있을까 싶더라. 조선의 군사력이 뒷받침 됐다면 김상헌의 허망한 눈빛은 몰 수 없었을 것이다. 이성으로는 명길의 이야기에 완전 동의했지만, 마음 한 구석으로는 '상헌의 말이 맞는 상황이 펼쳐졌으면' 싶었다. 두 생각이 공존했다."
- 어마어마한 배우들과 호흡 맞췄다. 예민해지는 순간은 없었나. "마지막 배틀 신이 가장 예민했다. 예민해진 이유 중 하나는 윤석 선배님이 언급하셨던 대본 문제였다. 촬영 중에도 대본을 계속 고쳤는데 마지막으로 고친 대본이 윤석 선배에게 전달이 안 됐던 것이다. 선배는 옛 대본을 외워 왔는데 몇 단어만 바뀌어도 말이 어려우니까 리듬이 깨진다. 모두가 패닉이 된 순간이었다."
- 어떻게 해결했나. "최선의 방법은 윤석 선배님이 다시 통째로 대사를 외우는 것이었다. 리듬을 찾아 외우셨지만 이미 완벽하게 외웠던 대사와는 차이가 있다보니 약간씩 어긋나는 부분들이 생겼다. 병헌 선배가 애초 생각하지 않았던 타이밍에 대사가 나오기도 하는 등 즉흥적인 어긋남이 발생하더라. 감독으로서는 좋으면서 예민하고, 예민하면서 좋았다. 짜놓지 않은 합들이 튀어 나오다 보니까 보는 재미가 있더라."
- 대사 뿐만 아니라 디테일한 표정 하나까지 다 살려냈더라. 검단산을 바라보는 김상헌의 눈빛이나, 인조가 삼보구고두례를 할 때 최명길의 표정은 아무 대사가 없어도 압도적이었다. "놓칠 수 있었지만 놓치고 싶지 않았다. 상헌이 절망하는 순간은 신기루 같다. 환상이 보이지만 금세 사라진다. 상헌의 모든 것을 집약한 표정이라 생각했다. 명길은 본인 주장으로 인해 왕이 흙바닥에 무릎을 꿇고 절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마 속으로는 많이 울었을 것이다. 기록에는 없지만 그 울먹이는 모습을 한번쯤은 담아내고 싶었다."
- 소녀 나루 캐릭터가 분위기를 반전 시키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나루는 소설 속에서도 그렇지만 상헌의 원죄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전란의 와중에도 때묻지 않은 순수함을 보인다. 나루를 연기한 조아인 양은 오디션을 통해 뽑았다. 연기 경력이 전무해서 더 좋았다. 연기도 연기 같지 않은 연기를 해 티 없이 맑은 느낌이 고스란히 전해지더라. 나루가 화면에 등장할 때마다 힘든 현실을 잠시 잊길 바랐고, 그 이상으로 행복해질 수 있는 존재를 만들고 싶었다. 상헌의 원죄가 애정으로 변해가고 나중에는 이 땅을 이어가는 상징 같은 얼굴로 변해가는 모든 것을 나루를 통해 보여주고 싶었다."
- 용골대 등 청나라 측 캐릭터도 빛났다. "청나라 쪽은 정말 배우들이 다 만들어낸 캐릭터라 생각한다. 칸을 연기한 김법래 배우는 원래 동굴 목소리가 강점이라 특유의 위엄을 잘 살려줬고, 용골대 허성태 배우는 허성태를 아는 사람들도 허성태인줄 못 알아보더라.(웃음) 조우진 배우는 동시통역사라 빠르고 스피디한 매력이 있다. 세 사람이 같은 만주어를 하는데도 캐릭터 별로 전해지는 느낌이 다르다." - 용골대와 최명길의 독대 신에서 통역을 자막처리로 하지 않은 것도 신선했다. "'시간상 자막처리 하는 것이 낫지 않냐'는 의견도 많았다. 하지만 나는 정명수(조우진)가 통역하는 목소리에도 색깔이 들어 있다고 생각했다. 각기 다른 세 사람이 한 공간에 있을 때 풍성해지는 것들이 있다. 그래서 일부로라도 최대한 정명수의 목소리를 넣으려고 노력했다."
- 군데군데 예상보다 수위 높은 신이 많았다. "목을 자르고 전시하는 장면이나 까마귀 신 같은 경우는 소설을 읽을 때도 많이 등장했다. 소설에는 없지만 조선군 중 하나가 조선사람 머리를 잘라와 청군이라 속이고 다시 참수 당하는 에피소드는 전쟁만이 줄 수 있는 참혹함이라 생각했다. 서로의 머리를 잘라 상으로 얻으려 하는 것 아닌가. 잔인할 수 있지만 직접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전쟁이 보여주는 상징이니까. 그래서 인조가 성을 나갈 때도 굳이 그 사람의 머리가 걸려 있는 길을 지나가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