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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길진의 갓모닝] 638. 10월의 참극
1979년 10월 16일 성수대교의 개통식이 있었다. 서울 성동구 성수동과 압구정동을 잇는 교량으로 당시 신공법인 게르버트러스트 방식으로 지어진 다리였다. 이날 개통식 테이프를 끊은 사람은 다름 아닌 박정희 전 대통령이었다. 그는 1160m 성수대교를 도보로 걸으면서 향후 9개의 한강다리를 더 건설할 것이라는 포부를 밝혔지만 10일 뒤인 10월 26일 김재규의 총에 시해되고 만다.
10월 16일과 10월 26일 사이, 역사는 요동쳤다. 10월 17일 김형욱 실종이 첫 보도됐고 18일 부산에 계엄령, 20일에는 마산에 계엄령이 내렸다. 약 열흘 동안 박 전 대통령의 행보는 거침없었기에 아무도 그가 시해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비극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박 전 대통령이 개통식 테이프를 끊었던 성수대교는 그로부터 15년 뒤인 1994년 10월 21일 붕괴되고 말았다. 사상자는 무려 50여 명이었다. 성수대교는 박 전 대통령의 운명과 비슷했다. 10월 개통된 달에 붕괴됐으며 이 다리를 탄생시킨 박 전 대통령 역시 10월에 시해됐다. 10월의 참극이었다.
나는 대학로에 사무실이 있는 관계로 자주 성수대교를 이용한다. 1994년 붕괴 뒤 1997년에 다시 완공하고 2004년에 8차선으로 확장한 성수대교는 과거의 모습은 온데 간데 사라지고 없다. 그럼에도 성수대교를 건널 때마다 과거 경부고속도로 건설현장에서 일했던 시절이 떠오른다.
현장에서 항상 듣는 말은 ‘빨리빨리’였다. 박 전 대통령 시절에는 뭐든 빨리 빨리 끝내야 했다. 경부고속도로의 졸속공사는 대표적이었다. 오죽하면 케이크 위에 크림을 얹듯이 아스팔트를 깔았다는 소문까지 돌았을까.
한강의 다리들도 마찬가지였다. 성수대교도 그 중 하나였다. 1977년부터 1979년까지 2년 6개월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기술력도 없는 상태에서 신공법으로 지은 다리가 과연 완벽했을까. 무조건 싸게, 무조건 빨리 지으라는 상부의 압박도 졸속 공사에 한몫했으리란 생각이다. 현재 경부고속도로의 보수공사에 들어가는 비용은 가히 천문학적이라고 한다.
무릇 정부의 시책들은 신중하게 결정돼야 맞다. 최근 가장 안타까운 정책 결정은 사드배치이다. 왜 사드를 그토록 빨리 배치했어야 했을까. 사드는 그 어떤 정책보다도 꼼꼼하고 치밀하게 계산돼야 했다.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사드로 인해 발생하는 엄청난 손해를 생각하지 못한 채 서둘러 내린 결정이 얼마나 많은 국민들을 힘들게 하고 있는지 위정자들은 알고 있어야 한다.
한국은 ‘빨리빨리’로 인해 많은 이득도 봤지만 손해도 컸다. 개발도상국 시절에는 ‘빨리빨리’가 성장의 원동력이 됐을 수 있었겠지만 이제는 이로 인해 발생하는 국가적인 손해도 감안해야 할 때다.
성수대교를 지나갈 때마다 ‘빨리빨리’의 환영이 떠오른다. 환한 얼굴로 개통식 테이프를 끊는 박 전 대통령의 모습, 위풍당당하게 다리를 걸어가며 관계자들에게 지시하던 그가 10일 뒤 죽음을 맞이할 것이란 사실을 그 누가 알았겠는가. 게다가 박 전 대통령이 자랑스러워했던 성수대교가 15년 뒤 붕괴될 것이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이 모두 ‘빨리빨리’의 환영이 만들어낸 안타까운 비극이다. 이제 대한민국은 졸속에서 벗어나 정속을 되찾아야 한다. (hooam.com/ 인터넷신문 whoim.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