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루시드폴의 새 앨범이 기다려지는 이유 중 하나는 판매 전략에 있다. 2015년 새벽 홈쇼핑으로 10분만에 매진하는 신화를 기록한데 이어, 올해엔 서점에 음반을 진열했다. 루시드폴은 "CD 그 자체로는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다"며 '콘텐츠 포장법'으로 가치를 높이는 방법을 취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전국 10~59세 남녀 1200명을 상대로 조사한 '2016 음악산업백서'에 따르면 한국인 중 10명 중 2.5명만이 CD·DVD 등을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음악 감상시 이용하는 기계 1위는 스마트폰(91%)으로, CD가 사양매체가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팬덤이 두터운 아이돌은 밀리언셀러(100만장) 판매고를 올리고 있다. 음악을 듣기 위함이 아닌, 보고 진열하는 굿즈로 소비되고 있다는 증거인 셈이다. 버전 별로 출시돼 소비자들의 욕구를 다양하게 만족시키고 있으나, 이 조차 언제까지 유효할지는 미지수다. 11년만에 컴백하는 나훈아가 트로트 시장에 USB형 앨범을 출시한 것만 봐도 전세계 뮤지션이라면 나이를 불문하고 CD 형태에 고민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2013년 6집 앨범을 USB 형태로 발매한 바 있는 루시드폴은 "그 무렵부터 음반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CD가 매력적인 매체였다면 계속해서 판매를 했겠지만, 그렇지 않다고 판단했고 CD가 충분한 만족감을 주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놨다.
올해 국내 가요계에선 USB가 뜨거운 감자였다. 비틀즈·마이클잭슨·김장훈 등 많은 뮤지션들이 USB 형태 앨범을 냈지만 지난 6월 지드래곤이 솔로앨범 '권지용'을 통해 노래가 아닌 링크가 삽입된 USB를 발매하면서 본격적인 화두로 떠올랐다. 가온차트는 '권지용'을 음반으로 인정했으나, 앨범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음이 유형물에 고정된 것을 앨범으로 한정한다"면서 "링크로 연결해 듣는 방식은 디지털 다운로드와 같다"고 설명했다. 지드래곤은 누군가에 의해 어떤 형태로 인정받는 것을 염두하고 앨범을 낸 것은 아니라며 "제일 중요한 건 음악, 내 목소리가 녹음된 바로 노래"라고 강조했다.
루시드폴은 "지드래곤도 나와 같은 고민 끝에 방법을 찾은 것 같다. 과거엔 어떤 물체를 직접적으로 이용할 수 있게 했다면 요즘은 어떤 값을 지불하고 그에 해당하는 컨텐츠를 독점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얻는 방식으로 변하고 있다"는 사견을 밝혔다.
하지만 CD라는 매체가 전세계 주요 음반 발매 역할을 하고 있으니 쉽게 바뀌진 않을 터. 이에 루시드폴은 '농민가수' 정체성을 녹여, CD의 가치를 재발견하도록 했다. "내가 2015년 7집을 직접 농사 지은 귤과 직접 쓴 책과 음악을 묶어 새벽 홈쇼핑에 내놓았다. '귤 매장에서 살 수 있는 CD'라는 콘셉트로 였다"며 10분만에 매진됐던 당시를 떠올렸다.
이번에도 루시드폴은 귤과 같이 판매하려 했지만 수확량이 충분치 않아 불발됐다. 지난 30일 자정 발매된 8집 '모든 삶은, 작고 크다'은 서점에서 에세이와 함께 판매되고 있다. 그는 "책이랑 묶어 파트1을 내고, 귤 수확 후에 파트2를 발매할 생각이었는데 5월에 귤꽃이 너무 안 피더라. 대신 나의 제주 생활기를 담은 글과 연결해 노래를 쉽게 이해하고 접할 수 있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모든 삶은, 작고 크다'는 음원과 음반의 트랙 순서가 전혀 다르게 구성됐다. 음원사이트를 통해 노래만 들을 땐 멜로디의 흐름에 맞춰 트랙을 배치했고 에세이와 같이 구입하는 CD버전에선 이야기 흐름에 맞춘 순서로 곡을 접할 수 있다. 루시드폴은 "음반 이상의 무언가였으면 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