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호 PD가 '무한도전'에 대해 이같이 정의했다. 아내가 자신보다 프로그램에 집중해 소원함을 느낄 정도로 남다른 애착을 자랑하는 프로그램. 30대를 '무한도전'과 함께했던 그는 40대 중반에 접어든 지금도 그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12년째 국민 예능의 자리를 지켜오고 있는 '무한도전'에 대한 책임감과 무게감, 그리고 앞으로의 도전에 대한 식지 않은 열의를 드러냈다.
28일 오전 10시 서울 성동구 행당동에 위치한 성동구청에서 '무한도전의 무한한 도전'이라는 주제로 명사특강이 진행됐다. 명사로 MBC 김태호 PD가 참석했다. 김 PD는 2002년 MBC 공채 프로듀서로 방송계에 입문했다. 국민 예능 프로그램인 '무한도전'을 12년째 맡고 있다.
총파업 여파로 방송 및 녹화가 중단됐던 '무한도전'은 25일 12주 만에 방송을 재개했다. 김 PD는 "준비해야 하는 부분이 많다 보니 처음 시작부터 완벽하게 준비하긴 어렵다. 조금씩 다가가다 보면 연말까지 정상화가 될 것 같다"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그날 방송될 때 테이프를 3번 교체했다. 똑같은 장면을 찾아서 테이프를 넘기고 마지막 5분 남겨 놓고 넘기고. 아슬아슬한 상황을 항상 연출하고 있다. 그나마 요즘은 상암에서 찍어 상암에서 틀기에 상황이 낫다. 과거엔 일산에서 찍어 여의도에서 방송했다. 그땐 테이프를 배달해야 했기에 더욱 쉽지 않았다"고 떠올렸다.
김 PD는 "'무한도전'을 30대에 시작했는데 이제 40대 중반으로 접어들고 있다. 30대를 '무한도전'과 함께했다. 지금도 프로그램이 먼저인 것 같다. 그래서 아내의 소원함이 묻어있는 프로그램이고, 애증이 있는 프로그램이기도 하다"고 고백했다.
'무한도전'의 위기에 대해 "플랫폼이 다양화되고 좋은 프로그램이 많아졌다.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는 어려운 시장이 됐다. 세대별로 콘텐츠 시청에 사용하는 기기가 달라 전통적 의미의 TV가 없는 1인 가구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고 전했다.
방송 시간이 늘어야 광고 수익이 늘어나는 상황. "멤버 6명이 만들어내는 웃음의 총량이 있다. 100분 못 채우면 또 만나서 찍어야 한다. 시청자에 어떤 웃음을 드릴 수 있을지에 대한 기대감을 드려야 하는데 그 기대감이 사라진 지 꽤 됐다. 뭔가가 계속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데 100분을 채우려면 다 해야 한다. 그래서 캐릭터가 바닥난 것처럼 보여 근본적인 고민에 대해 회사와 계속 얘기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프로그램 초창기, 김 PD는 "처음에 한 PD 선배가 '50대 이상의 어머니를 확보할 멤버를 섭외해라'라면서 안성기 씨를 멤버로 해보라고 추천했다. 아니면 마초스럽게 가라면서 이계인 씨를 추천했다. 그런데 1년 뒤 동시간대 1위로 올라가니 회의실 문을 박차고 들어와 '내가 하란 대로 하니까 되잖아' 이러더라"라고 폭로해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김 PD는 '무한도전' 최대 위기 순간을 '라인업'과의 경쟁을 꼽았다. "큰 예능 트렌드가 있었다. 무도가 성공하니 남자 MC 6, 7명이 모여서 미션하는 프로그램이 우후죽순 생겼다. 제일 힘들었을 때 중 하나가 동 시간대 SBS에서 '라인업'을 할 때였다. 매주 전력을 다할 순 없다. 프로그램 성격상 다른 특집을 하려면 두 팀이 돌아가면서 해야 하는데 한 팀이 운영하는 시스템이었던 터라 전략이 겹치는 경쟁이 심했다. 태안 기름유출 사고 당시 일손을 돕기 위해 자원봉사 특집을 마련했는데 그쪽과 아이템이 겹쳤던 적이 있다. 모든 국민의 관심사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지만, 그런 경쟁이 쉽지 않았다. 그런 파도를 넘어 우리만 살았다는 안도감을 찾았지만, 그러던 것도 잠시 오디션 열풍이 불었다"고 전해 눈길을 끌었다.
12년 전 김 PD가 '무한도전'을 맡게 된 일화에 대해 "아무 생각 없이 유재석 씨와 함께할 수 있다는 생각에 손을 들고 '무한도전'을 하겠다고 했다. SBS 'X맨'을 보면서 어쩌면 저렇게 흥겹게 할까 싶었다. 그래서 함께하고 싶었다. PD가 적성에 안 맞나 고민할 때였다. 마지막 남은 기간 유재석과 함께해보자고 해서 지원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때 조금만 더 깊게 생각했으면 여기 안 들어오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했을 것 같다. 유재석 씨 번호를 첫 미팅 때 받았다. 앞으로 겨울학기 동안 '무한도전'을 맡아야 하는데 어쩌나 싶었다. 막막했다"고 솔직한 심정을 털어놨다.
김 PD는 "권석 PD가 4주간 박명수 씨를 시험했다. 그런데 4주 후 맞지 않는 것 같다고 판단했다. '물과 기름 같다', '쌀과 보리 같다'고 하차를 통보했다. 쿨하게 가더니 KBS에 가서 동 시간대 프로그램인 '스펀지'에 갔더라. '무한도전'에서 하차 통보를 당해서 기분이 안 좋은데 '스펀지'에서 써주면 '무한도전'을 이기는 데 일조하겠다고 해서 바로 들어갔다. 하지만 거기서도 크게 활약을 못 해서 1달 정도 하고 하차했다.(웃음) 방황하던 박명수를 'X맨'에서 캐릭터를 만들어줘 사랑받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명수와의 첫 만남 당시를 떠올렸다. 김 PD는 "코미디 프로그램 대기실에서 무릎 꿇고 혼나던 장면이 기억난다. 33살에 누구 앞에서 무릎 꿇고 그런 건 상당히 힘든 일 아닌가. 애초에 '같이 해야지', '협동해야지' 그런 DNA가 없다.(웃음) 당일날 와서 주어진 역할을 하는데 자기 우선주의다. 갑자기 애드리브를 하곤 한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흐름 깨 혼이 나곤 했던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 PD는 박명수와 반대의 인물이 정형돈이라고 전했다. 평범함을 승화시켜 캐릭터로 만든 정형돈, '노브레인 서바이벌'로 일약 스타덤에 올라 합류한 정준하, 타 프로그램에서 예능감을 입증시킨 하하, 반대가 심했지만 자기를 바라보는 시선을 신기하게 느꼈던 노홍철이 조화를 이뤄 인기 포텐을 터뜨리게 됐다.
김 PD는 "처음에 멤버들 자체가 안정되지 못했다. 안정되지 못한 이들로 시작했는데 시청률이 올랐다. 그러다 '내 만두를 누가 먹었냐'고 화를 내는 정준하 씨의 모습을 보면서 이 모습을 담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방송 전, 후의 모습을 담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리얼'이란 말이 붙었다. 그 부분에 대해 시청자들이 흥미롭게 봤고 인기를 끌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멤버들이 착한 사람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끊임없이 대화했다. 프로그램 정신에 대한, 뿌리에 대한 대화를 많이 하면서 방향을 잡아갔다"면서 "작품이 되기 위한 진정성, 멤버들에겐 주인공으로서의 책임감을 가지고 참여하도록 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