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 후폭풍을 이겨내기 위한 최선의 선택은 해외영화제인 것일까. 김민희에 이어 엄태웅도 성추문 파문 후 해외영화제를 통해 근황을 공개하면서 이들의 닮은꼴 행보가 눈길을 끌고 있다.
지난해 성추문 혐의로 피소된 엄태웅은 약 1년 3개월간의 자숙 끝에 에스토니아에서 열린 제21회 탈린블랙나이츠영화제(이하 탈린영화제)에 참석하면서 치명적 스캔들 후 처음으로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탈린영화제는 북유럽과 발트해 연안 지역의 영화제 중 규모가 가장 큰 영화 축제다. 2014년 세계 주요 국제 영화제인 베를린영화제, 칸영화제와 같이 국제영화제작자연맹에 의해 비전문 국제 경쟁부문 영화제로 승인받았다.
탈린영화제 측은 엄태웅이 주연으로 출연한 영화 '포크레인(이주형 감독)'을 경쟁부문에 초청, 엄태웅은 주연배우 자격으로 영화제에 참석해 시사회와 기자회견 등 각종 공식일정을 소화했다.
올해 7월 개봉한 '포크레인'은 5.18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시위 진압에 동원됐던 공수부대원 김강일(엄태웅)이 퇴역 후 포크레인 운전사로 살아가던 중, 우연한 사건을 계기로 20여 년 전 묻어두었던 불편한 진실을 좇아가는 진실 추적 드라마다.
같은 5.18 민주화운동을 소재로 다룬 '택시운전사'와 비교되면서 '포크레인'은 엄태웅 뿐만 아니라 스토리 자체만으로도 관객들의 호평을 받지 못했다. 누적관객수 170명이 이를 반증한다. 김기덕 감독이 제작을 맡은 작품으로, 엄태웅은 김기덕 감독의 이름값에 배우의 책임이 큰 상업영화가 아닌 초저예산 '포크레인'을 복귀 아닌 복귀작으로 택하면서 컴백 시동을 걸었다. 물론 본인은 "복귀는 시기상조다. 아직 활동을 할 시기는 아닌 것 같다"며 국내 행사에는 일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소속사와도 결별하며 가족들과만 시간을 보낸 그는 국내보다는 심적으로 편안할 수 밖에 없는 해외영화제를 통해 배우로서 영화팬들과 만났다. 이전보다 확실히 마른듯한 체형에 한층 수척해진 얼굴은 엄태웅의 마음고생도 만만치 않았음을 엿보이게 한다.
기자회견 및 무대인사 등 탈린영화제 행사들은 해외에서 치러진 영화제인만큼 엄태웅의 사생활보다 영화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뤘다. 엄태웅은 처음으로 '포크레인'과 관련된 배우로서의 에피소드 및 비하인드스토리를 털어놨다.
엄태웅은 "광주사태(민주화운동)라는 것을 정확하게 알 수는 없었다. 굉장히 은폐돼 있었는데 그 사실을 알게 된 후에도 그냥 광주 시민에 대해 생각했지 광주 시위 진압에 들어갔던 군인들이 어떤 상처를 입게 됐을 수 있다는 것은 생각하지 못했다"며 "시나리오를 보면서 공감했고 그런 것들을 표현함에 있어 마음 아팠다"고 털어놨다.
이어 "낡은 포크레인과 함께 연기헀는데 잘 버텨주다가 마지막에 전 대통령 집 앞에서 큰 포크레인과 전투장면을 벌인 후부터 작동이 막 안되고 너무 힘들어 했다"며 "그걸 보면서 '이 포크레인 역시도 한 배우와 같은 역할을 해줬구나'라고 생각했다"며 "(영화의 소재와 스토리는) 우리 대한민국의 과거였으니까 계산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공감하면서 점점 감정을 증폭시킬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엄태웅의 이 같은 행보는 앞서 홍상수 감독과 불륜 사실을 인정한 후 해외 영화제 도장깨기를 하고 있는 김민희와 다를 바 없다.
김민희는 베를린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것을 시작으로 칸 영화제, 뉴욕영화제 등 각종 해외 영화제에 보란듯이 참석하고 있다. 최근에는 히혼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또 하나 추가하면서 해외 영화제의 뮤즈로 거듭났다.
이와 관련 한 영화계 관계자는 "해외 영화제를 통해 복귀를 하거나 근황을 알리는 것도 어쨌든 배우의 능력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참석에 대한 부담감이 국내보다 덜한 것도 당연하다"며 "'이것을 발판으로 복귀하겠다'고 대중의 간을 본다기 보다 주연 배우로서 영화를 좋게 봐준 이들에게 인사하고 함께 이야기 나누는데 의의를 두는 것이 더 맞을 것 같다. 물론 그로 인한 반응이 나쁘지 않다면 향후 계획까지 세워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고 전했다.
엄태웅이 탈린영화제에 참석했다고 해서 국내 복귀까지 결정된 것은 아니다. 측근에 따르면 '컴백은 여전히 시간이 필요한 일'이라 생각하고 있다는 전언. 상업 드라마·상업 영화를 통해서는 당분간 보기 힘들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