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22일 오후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횡령·배임·탈세` 등 경영비리 혐의 관련 1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1000억원대의 횡령·배임 등 경영 비리 의혹으로 재판에 넘겨진 롯데그룹의 신동빈 회장이 실형을 면했다. 아버지인 신격호 총괄회장도 징역 4년을 선고받았지만 건강 상의 이유로 법정구속을 면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4부(김상동 부장판사)는 22일 신 회장의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횡령과 배임 등의 혐의 중 일부만 유죄로 판단하고 징역 1년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법조계 전문가들은 5년 이상을 예상했으나 빗나갔다.
신 회장은 롯데피에스넷과 관련한 471억원대 특경법상 배임 혐의는 '경영상 판단'이라는 이유로 무죄 판단을 받았다.
롯데시네마 매점 운영과 관련한 배임 혐의도 손해액을 산출하기 어렵다며 특경법상 배임이 아닌 형법상 업무상 배임죄가 인정됐다.
신 총괄회장은 배임 혐의 일부와 횡령 혐의가 유죄로 인정돼 징역 4년과 벌금 35억원이 선고됐다. 거액 탈세는 인정되지 않았다. 다만 건강 상의 이유 등으로 법정 구속하지 않았다. 신동주 전 롯데홀딩스 부회장에게 '공짜 급여'를 준 부분도 무죄로 판단했다.
이에 특경법상 횡령 혐의의 공범으로 기소된 신동주 전 부회장은 무죄를, 탈세·배임의 공범으로 기소된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은 징역 2년을, 신 총괄회장과 사실혼 관계인 서미경씨는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각각 선고받았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왼쪽부터), 신격호 총괄회장, 신동주 SDJ코퍼레이션 회장, 서미경 씨,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이 22일 오후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횡령·배임·탈세` 등 경영비리 혐의 관련 1심 선고 공판을 마친 뒤 법원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재판부는 "이 사건은 총수 일가가 계열사로 하여금 부당 급여를 지급하게 하는 등 기업 사유화의 단면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또 신 총괄회장에 대해서는 "그룹 임직원은 물론 경제계의 거목으로서 경영계의 거울이 돼야 할 위치에 있는 인물"이라며 "법질서를 지켜 정상적인 방법으로 경영할 책임이 있는데도 계열사 자산을 사유재산처럼 처분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신 회장에게는 "비록 아버지의 뜻을 거절할 수 없었다 해도 범행이 실현되는 과정에서 그 역할을 무시하기 어렵다"고 했다.
롯데그룹은 1심 선고 직후 "재판부의 판단을 존중한다"며 "임직원들은 더욱 합심해 경제발전에 기여하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신 회장은 법원을 빠져나가며 "국민께 죄송하다"고 말했다.
검찰은 "롯데 비리 사건에서 유죄가 상당 부분 선고됐지만, 일부 범죄사실은 무죄가 선고돼 이를 집중 분석해 항소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앞서 검찰은 결심공판에서 신격호·신동빈에 각각 징역 10년, 신영자·서미경에 각각 7년, 신동주에 5년을 구형했다.
신 총괄회장과 신 회장은 한국 롯데그룹 계열사에서 일한 적 없는 신 전 부회장과 서씨 모녀에게 508억원을 급여 명목으로 지급해 횡령한 혐의로 기소됐다.
또 롯데시네마가 직영으로 운영하던 영화관 매점을 서씨 모녀나 신 이사장이 운영하는 회사에 임대 형식으로 넘겨 778억원(신 회장은 774억원)의 손해를 끼친 혐의도 적용됐다.
신 회장은 롯데피에스넷이 ATM기를 구매하는 과정에 중간 업체로 롯데기공(롯데알미늄)을 끼워 넣거나 자본잠식 상태에 빠진 롯데피에스넷의 유상증자에 계열사들을 참여시키는 등 471억원의 배임을 저지른 혐의도 있다.
신 총괄회장은 신 이사장이나 서씨 모녀의 생활 지원을 위해 자신이 차명 보유한 롯데홀딩스 지분을 가장 매매하는 식으로 넘겨 증여세 706억원을 포탈하고, 비상장 주식을 계열사에 고가로 팔아 94억원의 손해를 끼친 혐의도 받았다.
검찰은 경영 비리로 인한 범죄 액수를 신 총괄회장은 2086억원, 신 회장은 1245억원으로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