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성이란 방송 목적을 수행하기 위한 프로그램 운용 계획 및 정책을 뜻한다. 시청자와 약속이다. 각 방송사의 목표와 가치를 실현하는 기본적인 울타리기도 하다. 방송 순서에 있어 엄정한 규칙성과 예측성을 부여해 시청자들이 시청 습관을 형성하게 하는 게 편성의 원칙 중 하나다.
그러나 최근 tvN은 '화유기'의 방송사고로 시청자와 약속을 깨뜨렸다. 비단 '화유기'뿐이 아니다. 언제 사고가 나도 이상하지 않은 편성을 이어 왔다.
무분별한 편성 확장에 드라마 90분이 넘는 분량을 확보하며 물량공세를 펼쳤다. 지난 5월 '불금-불토' 전략이었던 금토극을 토일극으로 변경했고, 7월부터는 수목극 자리를 편성했다.
편성 시간도 'tvN 마음대로'였다. '시카고 타자기'의 경우 시청률 부진을 겪다 방영 중에 오후 8시에서 오후 8시 30분으로 이동했다. 표면적인 이유는 '서머타임' 때문이었다. '시카고 타자기'의 후속작은 오후 9시에 방송됐다.
이뿐 아니다. 지난 9월엔 월화-수목극 시간대를 기존 오후 10시 50분에서 오후 9시 30분으로 앞당겼다. '드라마 강화'라는 이유를 들었지만, 속내는 지상파보다 빠른 시간대를 점령하며 시청자층을 확보하겠다는 전략이었다. 드라마 편성이 들쭉날쭉하자 원자리 주인이던 예능들은 집을 잃고 경쟁력마저 잃었다.
게다가 tvN은 90분까지 편성을 늘리는 일이 다반사였다. 기존 지상파가 60분·65분·70분 등 방영시간을 고수하는 것과 다른 양상이다. 분량을 늘리면서 광고 역시 늘릴 수 있다는 이점을 최대한 활용하는 편성 전략이다. 광고를 위해 방송 분량의 무분별한 확장이 이어졌다. 이는 혹독한 한국 드라마 제작 시스템에서 제작진을 혹사시키는 악순환으로 이어졌다.
'역대급 방송사고'를 터뜨린 '화유기'는 지난 25일 2화를 재편성한 데 이어 30일 3화, 4화는 내년 1월 6일로 연기했다. '화유기'의 편성 연기는 결국 2018년 편성 계획까지 망가뜨린 결과를 낳았다.
이뿐만 아니라 지난 23일 새벽 스태프가 촬영현장에서 추락하는 사고도 일어났다. 이는 곧 '생방송' 같은 '한국 드라마 제작 시스템'의 문제로 확장됐다. 빡빡한 촬영 스케줄은 스태프의 희생을 따르게 할 수밖에 없다. 결국 새벽 시간에 일어난 추락사고는 무리한 작업으로 인한 어처구니 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한 방송계 관계자는 "tvN은 '시청률 우위 전략'으로 막대한 편성과 물량 공세를 이어 갔다. 몇몇 작품들이 승승장구하다 보니 안일한 자신감이 생겼고 편성 시스템 문제도 간과하고 넘어갔다"며 "최근 콘텐트 확보에 앞장서며 지상파를 넘어섰다고 자만한 것 같다. 편성 시스템에 있어서는 지상파를 따라가려면 멀었다. 그 단적인 예가 '화유기'"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4년 전 '응답하라 1994' 18회 방송 말미의 중간 광고에 자사 예고편이 12분 방송된 적이 있다. 그때의 실수를 거울 삼지 못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