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좋은 단어를 써도 부족하다. 그래서 '어떠한 찬사도 아깝지 않은 작품'이라는 평이 가장 많이 쏟아지고 있는 영화 '1987(장준환 감독)'이다. 2017년 개봉한 마지막 한국 영화로, '6월 항쟁'이 치러진지 꼭 30년 만에 개봉하는 영화로 그 의미를 더한 '1987'은 관객들의 극찬에 힘입어 쾌속 흥행 질주를 펼치고 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연말에 보기에는 다소 묵직하고 무거운 소재 아니냐는 우려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영화의 힘은 관객들을 움직이게 만들었고, 그 속에 담긴 진정성은 자발적 홍보로 이어졌다.
'만들고 싶지만, 만들어질 수 있을까'라는 걱정은 오로지 장준환 감독의 몫이었다. 살얼음판 같았던 시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1987' 시나리오를 꼭 쥐고 있었던 장준환 감독의 걸정을 덜어내준 이들은 다름아닌 이름값 굵직한 배우들이었다. 첫 타자 강동원을 필두로 김윤석·하정우 등 충무로를 대표하는 배우들이 빠르게 합류를 결정하면서 제작에 급물살을 탄 '1987'은 크랭크업한 그 해 개봉하는 '초스피드' 수순을 밟았다. 저예산 제작까지 염두해 뒀던 장준환 감독에게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천운이었다.
예상보다 커진 스케일에 자동적으로 느껴졌던 부담감도 잠시, 장준환 감독은 "돌이켜 생각해 보면 즐거운 비명이었다"며 일련의 과정을 표현했다. 영화적인 재미를 더하되, 철저한 고증을 통해 30년 전 그날의 모습, 그날의 분위기를 전달하고 싶었다는 장준환 감독의 목적은 120% 달성됐다. 남은 것은 역시 관객과의 소통. 장준환 감독은 "이젠 관객들에게 그 날의 메시지가, 이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고스란히 전달 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인터뷰①에서 이어집니다.
- 주연은 물론, 작은 역할까지 어마어마한 배우들이 연기했다. "동박박사 3인이라고 말한다.(웃음) 블랙리스트를 감수하면서 최초로 의기투합 해준 사람은 바로 강동원 배우였다. 김윤석 선배는 '동원이가 한다고? 그럼 같이 해보자'고 했고, (하)정우 씨도 '시나리오 너무 재미있어요. 재미있어서 하는 거예요'라며 그 서슬퍼런 시기 의기투합했다. 배우들의 합류도 내가 눈물을 많이 쏟은 포인트다. 감사해서."
- 하정우는 장난스럽게 '얼렁뚱땅'이라고 표현했다. "윤석 선배가 어느날 갑자기 '지금 정우 만나고 있는데 나올 수 있겠냐'며 연락이 왔다. 부랴부랴 준비해 나갔다. 그 날이 정우 씨를 처음 보는 날이었다. 갔더니 둘다 거나하게 취해 계시더라.(웃음) 정우 씨는 첫 만남에 '감독님, 저 이 작품 할게요!'라고 말했다. '이건 뭐지? 어떻게 이럴 수 있지?' 신기했다."
- 그 날도 감독님은 울었다고. "하…. 하배우가 그 이야기를 하는 바람에. 하하. 동원 씨 이야기까지 나오면서 '분위기 좋은데 당장 만나자'가 됐다. 강배우가 외국에 있었던 관계로 당일에는 못 만나고 돌아오자마자 넷이 다시 뭉쳤다. 그때 영화 이야기를 하며 눈물 찔끔 흘렸다.(웃음) 모든 근심·고민이 사라질 정도로 시작부터 파이팅이 좋았다."
- 관객들은 오프닝부터 울었다. 고 박종철 열사 아버지를 연기한 김종수 배우의 연기가 대단했다. "강물에 뛰어드는 신은 얼음이 녹는다고 해서 공식 크랭크인을 하기도 전에 미리 찍었다. 촬영 전날 예상치 못한 눈까지 와서 멘붕에 빠지기도 했다. 원래 설정은 유골을 집어 다시 날리는 것이었는데, 상황이 여의치 않다 보니 물에 떠나 보내는 것으로 바꾸게 됐다."
- 실화 속 실제 장면들을 차용한 신도 많다. "'역사를 박제화 하지 말자'는 마음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너무 발랄하게 갈 수는 없는 작품이라 그 선을 지키다 보니 여러 에피소드들이 만들어졌다."
- 여름에는 비슷한 소재라면 소재라 할 수 있는 '택시운전사'가 있었다. 대박 흥행에 성공했고. "사실 타 작품들을 생각할 겨를은 없었다. '택시운전사'가 세상에 나왔을 때 한창 '1987' 촬영 중이었다. 다만 우리 영화는 80년대 이야기를 하고 있고, 그건 광주와 떼려야 뗄 수 없다. 그래서 반가웠고, 그러한 '택시운전사'가 많은 관객들에게 사랑 받으며 좋은 결과를 낸 것도 반가웠다."
- 역사를 소재로 다루는 작품인 만큼 조심할 부분도 많았을 것 같은데. "어떤 팩트에 최대한 가깝게 다가가는 것이 임무이자 원칙이었다. 그 다음이 영화적 재미다. '어떻게 하면 많은 관객들과 소통할 수 있게 캐릭터들을 조각해 내는가'를 고민했고 밸런스를 잘 맞추고 싶었다. 팩트가 아닌 것은 없다. 캐릭터들을 조금 과장되게 만든 것 말고 팩트에 크게 어긋난 것은 없다. 하정우 씨가 연기한 캐릭터의 실제 모델이 된 최검사님만 '난 저런 술주정뱅이도 아니었고, 껄렁 하지도 않았는데'라는 나름의 귀여운 투정만 보였을 뿐이다."
- '1987'이 만들어지던 시기, 광화문 광장에서는 촛불시위가 있었다. "'어떻게 이럴 수 있나' 싶었다. 놀라웠고 신기했다. 자꾸 신기하다고 말하는데, 그렇게 밖에 표현할 수 없는 것이 그건 인력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일 아닌가. 87년의 뜨거웠던 힘을 2017년에 다시 보니까 '내가 하고 있는 이야기랑 똑 같은 일이 여기서 또 벌어지고 있잖아?'라는 생각이 들었다. '역사는 계속 어떤 힘을 보여주는구나' 싶기도 했다. 다만 어떤 분들은 '시류에 합류 한다. 촛불을 자꾸 연관 짓는다'는 말씀도 하시는데 감독 입장에서 그러한 반응은 정말 억울하다. 우리는 그 전부터 이 영화를 기획하고 만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