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항서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 23세 이하(U-23) 축구대표팀이 지난 27일 중국 창저우 올림픽 스포츠센터에서 끝난 2018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챔피언십 결승에서 연장 끝에 1-2로 석패, 준우승으로 대회를 마무리했다. 우승 문턱에서 아쉽게 좌절됐지만 동남아 축구의 새 역사를 쓴 박 감독과 그의 팀을 향해 베트남 국민들은 뜨거운 환호를 보냈다. 이제껏 아시아 축구의 변방에 머물렀던 베트남이 이번 대회에서 이라크, 카타르 등을 꺾으며 동남아시아 최초로 결승에 진출하는 기적을 완성한 덕분이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112위에 불과한 베트남을 이끌고 이제껏 아무도 해내지 못한 위대한 업적을 일궈 낸 박 감독은 호찌민 다음 가는 베트남의 '국민 영웅'이 됐다.
근성 하나로 물고 늘어졌던 '악바리' 선수 시절
'축구선수 박항서'의 이름은 낯설다. 현역 시절 박 감독은 주목받는 선수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미드필더였던 박 감독은 1981년 실업팀인 제일은행 축구단에 입단하며 축구를 시작했고 육군 축구단을 거쳐 1984년 럭키 금성으로 이적해 프로 무대에 데뷔했다. 1985년에는 럭키 금성의 리그 우승을 이끌며 베스트11에 선정됐고 그 다음 해엔 주장으로 선임되는 등 일찌감치 리더십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스타플레이어'는 아니었고 플레이 스타일도 화려한 편이 아니었다. 대신 그는 '악바리'라는 별명처럼 그라운드 위에서 죽어라 뛰었고, 1988년 현역 은퇴 뒤 지도자 생활을 이어 가면서 '악바리 정신'을 계속 이어 나갔다.
히딩크 옆 그 대머리 코치님, 이제 베트남의 '국민 영웅'으로
1996년 LG 치타스 코치를 시작으로 꾸준히 K리그 사령탑을 맡아 온 박 감독의 지도자 생활 중 가장 빛나는 커리어는 역시 2002 한일월드컵이었다. 당시 박 감독은 거스 히딩크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대표팀 수석 코치로서 월드컵 4강 진출을 도왔다. 아시안게임 대표팀 사령탑을 맡은 적도 있으나 3개월 만에 경질됐고, 이후 2005년 경남 FC, 2007년 전남 드래곤즈, 2012년 상주 상무 등 '언더도그' 팀을 이끌며 중위권 이상의 성적을 냈으나 눈에 띄는 결과는 없었다. 2017년에는 내셔널리그로 내려가 창원시청의 사령탑을 맡았고, 시즌을 마무리할 시점에 베트남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새로운 지도자 경력을 시작했다.
베트남에서 보여 준 박 감독의 '리더십'은 대단했다. 2008년 이후 처음으로 태국을 격파하고 이번 AFC U-23 챔피언십에선 결승까지 오르며 베트남 축구를 뿌리부터 흔들어 놨다. 박 감독과 선수단의 귀국을 축하하는 카퍼레이드와 함께 붉은 물결로 뒤덮인 베트남 시내를 행진하는 모습은 말 그대로 '영웅'의 귀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