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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길진의 갓모닝] 666. 일본 마쓰모토 후암선원 개원
1998년 제18회 일본 나가노겨울올림픽으로 유명한 나가노현에는 마쓰모토시가 있다. 마쓰모토는 한자로 송본, 소나무의 근본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인구 약 24만5000명의 작은 도시로, 강원도 정선과 흡사한 분위기다.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겨울에는 설산의 아름다운 풍광이 병풍처럼 펼쳐지는 마쓰모토는 도쿄 같은 대도시와는 거리가 있어 과거 소화 시절에는 반정부 인사, 요시찰 대상자, 공산주의 사상가들이 많이 살았던 유서 깊은 반골 동네다. 일본 최초로 여성의 참정권을 보장받게 된 지역인 만큼 여권이 강한 도시로도 유명하다.
2012년 마쓰모토, 호다카, 아즈미 지역을 배경으로 한 ‘오히사마(해님)’라는 NHK 드라마가 큰 인기를 끌기도 했다. 일본 드라마 ‘꽃보다 남자’의 여주인공 이노우에 마오가 주인공으로 등장한 이 드라마에는 아름다운 메밀밭, 푸른 초원, 높게 뻗어 있는 소나무숲이 꾸준히 등장해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천연의 자연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마쓰모토는 700m 고지에 위치하고 있어 여름에도 모기가 없을 정도로 선선하다. 고구마, 포도, 수박 등의 농산물은 물론이고 홍옥처럼 생긴 신주사과의 대표적인 산지기도 하다. 고산지대여서 한국의 배추를 재배해 김치를 담글 수 있는 이점도 갖고 있다. 일본에서 여자의 평균수명은 오키나와가 높고, 남자의 평균수명은 마쓰모토 지역이 월등히 높은데 그 이유가 좋은 물 때문이라고 한다.
마쓰모토와 가까운 아즈미시에는 호다카신사가 있다. 이곳에서는 중국 양쯔강에서 살다가 바다를 건너와 일본에 정착한 아즈미족의 전통을 기린다. 흥미롭게도 호다카신사에서는 매년 백촌강전투를 기념하는 마쓰리가 열리고 있다.
백촌강전투는 663년 8월 전라북도 군산시 금강 하구 유역에서 벌어진 백제 부흥군과 나당 연합군의 대규모 전투다. 이 전투에는 일본의 대규모 지원병도 참전했다. 백촌강전투에서 백제, 일본 연합군은 패배했지만 이 마쓰리는 백제, 일본 연합군의 승리로 역사를 승화시키고 있다.
백제가 멸망하자 14만5000여 명에 이르는 백제 유민들은 일본 각 지역으로 흩어졌고, 그중 많은 수가 당시 오지에 가까웠던 마쓰모토 인근에 정착하게 된다. 무덤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우리나라 고려장 같은 풍습도 남아 있고, 고구려 적석총 및 백제 시대와 유사한 무덤도 많다. 그들은 아즈미족의 후손이라고 주장하지만 호다카신사의 마쓰리만 봐도 백제와 인연이 매우 깊다는 사실을 쉽게 추측할 수 있다.
지난 12일 서울을 출발한 후암선원 회원 90여 명은 일본 마쓰모토 후암선원 개원식에 참석했다. 약 30년 전 인근에 위치한 금강사라는 절을 지켜 냈던 인연으로 마침내 마쓰모토시 시마우치에 후암선원을 열고 작은 지장보살님도 모시게 돼 감회가 새롭다. 이곳의 터를 보니 과거 마쓰모토성의 성주가 매 사냥을 했을 때 전진기지로 삼았던 가옥 같았다. 그래서일까. 지붕 위로 멋지게 생긴 매들이 비행하는 것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만약 자신의 전생을 비디오처럼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400여 년 전, 내 전생은 마쓰모토와 인연이 많았다. 그때 인연을 맺었던 분들이 지금의 마쓰모토 후암선원을 지켜 주고 있으니 마음이 든든하다. 소나무의 근본인 한국의 금강송들이 멋지게 자라고 있는 마쓰모토를 향한 마음을 시에 담아 보았다.
‘봄이 오면 가리/ 마쓰모토에 가리/ 눈꽃 같은 메밀꽃 피기 전에/ 마쓰모토에 가리/ 하늘과 땅이 하나 되는 곳/ 백제의 얼이 살아 숨 쉬고 금강송 어우러지는/ 마쓰모토에 가리/ 꽃이 피기 전 먼저 도착해/ 그 꽃을 기다리리/ 봄이 오면 가리/ 마쓰모토에 가리/ 사랑 같은 메밀꽃 피기 전에/ 마쓰모토에 가리/ 자연과 사람이 하나 되는 곳/ 그대 영혼과 내 영혼이 서로 만나/ 하나로 어우러지는/ 마쓰모토에 가리/ 꽃이 피기 전 먼저 도착해/ 그 꽃을 기다리리.’
(hooam.com/ 인터넷신문 whoim.kr)
차길진 넥센 히어로즈 프로야구단 구단주 대행은 사단법인 후암미래연구소 대표,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운영자문위원 등을 역임하고 있다. 2014년 화관문화훈장을 수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