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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길진의 갓모닝] 674. 인생칠십고래희
노인이 되면 새로운 직업이 생긴다. 바로 ‘환자’다. 일과가 병원을 순회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척추, 다리 등이 아파서 정형외과에 가면 심장이 안 좋아서 심장내과도 들려야 하고, 감기가 걸려 내과도 가야 한다. 하루 종일 병원으로 출근해 진료 순서만 기다리다가 저녁이 되면 집으로 돌아와 수면을 취한다. 입원만 안 했지 병원으로 시작해 병원으로 끝나는 일과다.
나도 지난주에 병원에 입원했다. 옛날 공군사관학교가 있던 보라매병원에서 성대에 관련된 수술을 받았다. 작년부터 잘 나오지 않던 목소리가 점점 더 나빠졌고, 여기에 기침까지 더해져 식사마저 힘들어지고 말았다. 결국 성대에 염증이 생겼던 부분을 제거하고 다시 제 모습을 찾게 해 줘 음성을 잘 나올 수 있도록 도와주는 수술을 받기로 했다.
보라매병원에 입원해 창밖을 보다 문득 짧았던 사관학교 생도 시절이 떠올랐다. 입학시험 때 너무 말라 체중 미달로 탈락할까 봐 고민했던 청년 시절의 내가 이젠 칠십 살이 넘어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아 수술을 받는 환자가 돼 침대에 누워 있다니, 세월이 참 빠르다고 생각했다.
살다 보면 꼭 해야 되는 수술이 있고, 미뤄도 되는 수술이 있다. 어찌 보면 이번 수술은 후자다. 미루고 잘 관리해 주면 성대가 좋아질 수도 있다. 기침이 나서 식사를 못 하는 불편함도 감수하며 지낼 수 있다. 그러나 진짜 무술년이 시작되는 설 전에 수술을 받기로 결심했다.
무술년의 ‘무’는 한자로 서로 창을 겨누고 있는 모습이다. 즉, 무술년에는 나라 안팎으로 창과 칼을 겨누는 운수를 겪을 수밖에 없다. 만약 내 몸에 칼을 대는 수술을 함으로써 나라에 닥칠 수 있는 나쁜 운수를 대신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는 생각에 수술 침대에 눕게 됐다.
60년 전인 1958년 무술년, 아버지께서 세상을 떠나셨다. 그리고 2018년 무술년이 시작되기 전, 내 몸에 칼을 대게 됐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수술을 만류했지만 나로서는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다. 수술 전에 까다로운 검사를 거치고, 수술 뒤 나흘 이상 말을 할 수 없는 상태가 됐지만, 이번 수술은 분명 내 인생에 큰 터닝 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직감했기 때문이다.
조용히 입원했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많은 분들이 끊임없이 문병을 오셨다. 성대 수술을 받는 거라 말을 할 수 없는데도 자꾸 찾아오셔서 몸은 괜찮은지, 목소리는 어떤지 물어온다. 처음에는 눈으로만 말하다가 답답함이 있어 필담을 나눴다. 하지만 필담도 오래하다 보면 팔도 아프고 힘들다. 사실 면회를 사절했지만 걱정돼 찾아 주셨는데 돌아가라고 말할 수도 없고 참 난처했다.
'인생칠십고래희'라는 말이 있다. 예로부터 사람이 칠십 년을 살기는 드문 일이라는 뜻이다. 이 말은 당나라의 시인 두보가 쓴 곡강시의 한 구절이다. ‘조정에서 돌아와 하루하루 춘의를 잡혀/ 매일 강두에서 취하여 돌아오네/ 술빚이야 가는 곳마다 흔히 있지만/ 인생 칠십은 고래로 드물도다.’ 실제 두보는 59세에 세상을 떠났으니 곡강시의 구절처럼 칠십 살까지 살지 못했다.
나이가 들면 되도록 수술은 피하라고 권한다. 몸에 칼을 대고 나면 젊은 시절만큼 회복 속도가 빠르지 않고, 과정도 위험하며, 결과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고령의 환자는 유산 문제까지 해결하고 오라는 의사의 권유까지 받는다고 한다. 그 위험한 과정을 모두 겪은 뒤 이제 회복을 앞두고 있다. 마치 죽었다 살아난 기분이랄까. 2018년 무술년에는 다시 건강해진 몸과 목소리로 많은 분들과 새로운 인연을 맺고 싶다.
(hooam.com/ 인터넷신문 whoim.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