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아시아축구연맹(AFC) 판도는 중국 슈퍼리그와 일본 J리그가 양분하고 있다. 명확한 콘셉트를 갖고 목표를 설정한 덕분이라는 평가다. 한때 '아시아의 호랑이'로 불리던 K리그는 중일 리그에 가려 잔뜩 웅크린 모양새다.
중국의 '축구굴기(축구를 일으켜 세운다)'는 이제 축구팬들 사이에선 익숙한 말이다. '축구광'으로 유명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축구굴기'를 강조하면서 중국 재벌들은 앞다퉈 축구팀에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부었다. 중국 프로축구가 폭발적인 성장을 이룬 비결이다. 광저우 에버그란데와 상하이 상강·상하이 선화·베이징 궈안·허베이 화샤·장쑤 쑤닝·텐진 취안젠과 같은 팀들이 '돈의 위력'을 앞세워 아시아 정상급 클럽으로 성장했다.
올 시즌 슈퍼리그는 잉글랜드·레알 마드리드를 이끌었던 파비오 카펠로(장쑤 쑤닝)을 비롯해 맨체스터 시티 사령탑 출신 마누엘 페예그리니(허베이) 바이어 레버쿠젠 시절 손흥민을 지도했던 로저 슈미트(베이징 궈안) 등 세계적인 사령탑이 우승을 놓고 경합 중이다. 선수 면면은 더 화려하다. 브라질 국가대표 출신 4인 알렉산더 파투(텐진 취안젠) 헐크·오스카르(이상 상하이 상강) 하미레스(장쑤)가 대표적이다. 여기에 벨기에 국가대표 악셀 비첼· 2016~2017시즌 독일 분데스리가 득점 2위 안소니 모데스테(이상 텐진 취안젠)·바르셀로나 레전드 하비에르 마스체라노(텐진 테다) 등도 올 시즌 슈퍼리그 무대를 누비는 특급 외국인 선수다. 이들은 수백억원에 이르는 천문학적 액수의 이적료와 연봉을 기록하며 현 소속팀에 입단했다. 2~3년 전까지만 해도 슈퍼리그는 한국 스타 선수와 사령탑이 점령하기도 했다. 최용수·홍명보·이장수 감독과 축구대표팀 출신 홍정호·장현수·윤빛가람 등이다.
'축구굴기'는 중장기적 관점에선 중국 대표팀의 역량까지 강화했다. 과거 한중전을 앞두고는 어김없이 '공한증(중국 축구가 한국에 느끼는 두려움)'이란 말이 나왔다. 그럴 만도 했던 것이 중국 남자 축구는 2009년까지 한국을 상대로 11무16패의 절대 열세였다. 그러나 2010년 동아시안컵에서 중국은 한국을 3-0으로 완파하며 달라진 모습을 보이더니, 지난해 3월 러시아월드컵 최종예선에선 한국을 다시 한 번 제압하며 징크스를 깼다. 세계 정상급 선수들의 자국 리그 유입은 중국 선수들의 기량 향상으로 이어졌다는 평가다. 중국 축구는 '지금부터가 시작'이라며 아시아 정상을 향해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일본 프로축구도 '월드 J리그'라는 확실한 콘셉트를 내세우고 있다. 일본프로축구연맹은 최근 일간스포츠와 인터뷰에서 "J리그를 아시아판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로 만들겠다"면서 "우라와 레즈가 2017 AFC 챔피언스리그를 우승했지만, 만족하지 않고, 아시아 무대를 호령할 아시아의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를 만드는 것이 궁극적 목표"라고 밝혔다.
J리그는 발빠른 마케팅으로 메가톤급 중계권 판매에 성공했다. 지난 시즌부터 영국의 스포츠미디어 전문기업 퍼폼(Perform) 그룹과 10년간 중계권 계약을 맺었다. J리그는 중계권료로 총 2000억 엔(약 2조2000억원)을 받는 대박을 터뜨린 것이다. 혜택은 고스란히 J리그 구단들에게 돌아간다. 특히 리그 우승팀은 돈벼락을 맞는다. 2017년 J리그 우승팀 가와사키 프론탈레는 3년 걸쳐 우승 상금 1410만 달러(약 153억원)를 받는다. 지난해 K리그 우승 상금 5억원의 약 30배다. 또 K리그에서 가장 돈을 많이 쓰는 전북 현대의 2017년 선수단 전체 연봉(약 157억원)과 맞먹는다. 가와사키는 올 시즌 직후 910만 달러(약 97억원)를 받은 뒤 내년과 2020년 각각 360만 달러(약 38억원)와 140만 달러(약 15억원)를 추가로 받는다. 이전 우승상금 270만 달러(약 29억원)와는 비교할 수 없는 금액이다. 여기에 매년 J리그 전 구단에게 돌아가는 J리그 지원금 320만 달러(약 34억원)를 더하면 가와사키는 무려 우승으로 1730만 달러(약 184억원)를 챙긴다. 전력 보강을 충분히 하고도 남을 만큼의 돈방석에 앉는 셈이다.
연합뉴스
덕분에 J리그도 2014 브라질월드컵에서 독일의 우승을 이끈 루카스 포돌스키(빗셀 고베)나 브라질 대표팀 출신 조(나고야 그램퍼스)와 같은 슈퍼스타들이 이적하고 있다. 앞서 중국으로 떠나던 국내 정상급 선수들의 일본행도 줄을 잇고 있다. 지난 시즌 K리그1 득점 2위 양동현(세레소 오사카)가 대표적이다. 특히 정성룡·권순태·김승규 등 국가대표급 수장들이 일본 클럽 유니폼으로 갈아입었다. 신문선 명지대 교수는 "각 팀에 더 많은 돈이 배분되면서 J리그는 한국의 우수한 골키퍼들과 선수들을 데려가고 있다"면서 "이런 상황은 결국 K리그 경기 질은 떨어지고, 스폰서 떠나는 악순환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반면 K리그는 특징도 목표도 없는 리그로 전락했다. K리그는 30년이 훌쩍 넘는 역사에 비해 리그만의 고유한 이미지를 정착하는데 실패했다. 동남아시장으로 눈을 돌렸지만, 개척에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시청률에선 프로야구는 물론 프로농구와 프로배구와 경쟁해도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평가다. 해외로 떠나는 선수들을 대체하지 못해 전전긍긍이다.
AFC 챔피언스리그 성적이 K리그의 현주소를 말해준다. K리그는 지난해 챔피언스리그에서 제주 유나이티드 한 팀만 16강만 올랐다. 나머지 3팀(수원 삼성·FC 서울·울산 현대)은 조별리그에서 탈락하는 수모를 겪었다. 그나마 16강에 오른 제주도 우라와 레즈(일본)에 대패하며 탈락했다. '절대 1강' 전북 현대가 출전하지 못한 것이 큰 아쉬움이라는 분석이다. 하지만 K리그 팀 부진의 결정적 이유는 중국 구단에 열세를 보인 것이다. 제주·수원·서울은 중국 팀과 6번 싸워 고작 1승(2무3패)만 올렸다. 'K리그 경쟁력이 예전 같지 않다'는 평가 나온 이유다. 중국은 리그 상위권 팀이 고른 실력을 갖춘 것으로 들어났다. 상하이 상강은 준결승에 올랐고, 장쑤 쑤닝도 16강에 진출했다. 일본의 우라와 레즈는 우승했다. 올 시즌도 양상은 크게 다르지 않다.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가 진행 중인 13일 현재 전북을 제외한 K리그 3팀(수원·제주·울산)의 대 중국팀 상적은 1승2무2패로 열세다. 일본 팀을 상대로도 1승2패에 그치고 있다. 신문선 교수는 "중일 축구가 양과 질적으로 무섭게 성장하고 있다. 생존을 위한 스폰서 유치를 통한 투자에 나서지 않으면 K리그 경쟁력은 지금보다 더 큰 위기를 맞을 것"이라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