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업트럭을 바라보는 국내 소비자들의 편견이다. 미국에 판매된 신차 7대 가운데 1대가 픽업트럭일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찬밥 신세인 이유다.
그럼에도 쌍용자동차는 고집스럽게 픽업트럭 신차를 내놓고 있다. 무쏘 스포츠(2002년), 액티언 스포츠(2006년), 코란도 스포츠(2012년)에 이어 올해는 '렉스턴 스포츠'를 내놨다.
쌍용차는 렉스턴 스포츠를 내놓으며 픽업트럭 대신 '오픈형 스포츠유틸리티차(SUV)'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픽업트럭이라는 좁은 틈새시장에서 벗어나 넓은 SUV 시장을 제대로 공략해 보겠다는 의지다.
지난 15일 쌍용차의 4세대 픽업트럭 렉스턴 스포츠를 몰고 서울 강남을 출발해 인천 석모도까지 약 80km를 달려 봤다. 최상위 트림인 3058만원짜리 노블레스에 사륜구동 시스템, 3D 어라운드뷰 모니터 등의 옵션이 추가된 모델이다.
G4 렉스턴 고급감에 실용성 더해
시승에 앞서 외관을 살펴봤다. 'G4 렉스턴'을 꼭 닮은 것이 인상적이다. 고급스럽고 세련됐다. 최신형 세단에나 적용되는 주간주행등(DRL)과 턴시그널이 포함된 일체형 헤드램프를 적용해 촌티도 벗었다.
덩치도 커졌다. 길이 5095㎜, 너비 1950㎜, 높이 1840㎜로 기존 코란도 스포츠보다 105㎜ 길어지고 40㎜ 넓어졌다. 높이 역시 50㎜ 늘어났다. 앞·뒷바퀴 간 거리(축거)도 코란도 스포츠보다 40㎜ 늘어난 3100㎜다. 덕분에 기존에 단점으로 지적됐던 2열(뒷좌석) 공간이 넉넉해졌다.
크기만 커진 게 아니다. 실내 인테리어도 훨씬 깔끔해졌다. 대시보드와 센터패시아(중앙조작부분) 디자인은 G4 렉스턴과 동일했다. 고급스러우면서 군더더기가 없었다.
각종 편의 사항은 덤이다. 9.2인치 터치스크린은 내비게이션, 3차원(3D) 어라운드뷰 모니터, 애플 카플레이 등을 갖췄다.
픽업트럭 형태인 만큼 적재 공간도 넉넉하다. 짐을 실을 수 있는 데크 적재 용량이 1011ℓ에 달한다. 무게로는 400㎏ 적재가 가능하다. 이전 모델에 비해 적재 용량이 조금 늘어났다. 또 데크에는 12V, 120W의 파워아웃렛이 적용돼 캠핑 시 다양한 도구에 전력을 공급할 수 있다. 짐을 고정시킬 때 편리한 회전식 데크후크로 적재 편의성도 높였다.
오프로드 어디든 OK… 최대 장점은 가성비
운전석에 앉으니 차체가 높아 시야가 탁 트였다. 구동 모드를 2H에 맞췄다. 저·중속으로 국도를 달릴 때는 엔진 소음과 바람 소리를 잘 차단했다. 조용한 SUV 수준이었다.
픽업트럭이어서 승차감이 거칠 것이라는 예상은 깨졌다. 고급 세단처럼 후륜구동 방식을 채택해 승차감을 향상시킨 효과다.
렉스턴 스포츠는 지난해 출시된 G4 렉스턴과 엔진(e-XDi220 LET)을 공유한다. 변속기가 다른데 아이신사의 6단 자동 변속기가 들어갔다. 이 조합으로 최고 출력 181마력, 최대 토크 40.8kg ·m의 성능을 발휘한다. 이 때문에 고속 구간에서도 힘이 부족하지 않았다. 차체의 흔들림은 다소 발생했지만 불안감을 느낄 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5m에 육박하는 거구지만 코너링 성능도 매끄러웠다.
다만 시속이 100㎞를 넘어선 이후에는 가속 반응이 이전과 비교해 다소 느려지고, 브레이크가 민감하게 작동하는 점은 아쉬웠다. 큰 덩치를 움직여야 되는 만큼 연비도 큰 기대를 하지 않는 게 좋다. 실제 주행 결과 9.2km/ℓ를 기록해 공인 연비(9.8km/ℓ)보다 약간 낮은 수치를 나타냈다.
실망하기는 이르다. 렉스턴 스포츠의 진가는 오프로드에서 발휘됐다. 강화도 석모도에 도착해 구동 모드를 4H로 변경했다. 급경사로에서 차량을 정지시킨 뒤 브레이크에서 발을 뗐다. 뒤로 밀리지 않았고 가속페달에 발을 올리자 부드럽게 언덕을 올라갔다.
내리막길에서는 '경사로 저속 주행장치' 스위치를 눌렀더니 브레이크를 밟지 않아도 차가 스스로 속도를 제어해 안정적으로 내려왔다.
많은 장점이 있었지만 렉스턴 스포츠의 최대 장점은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다. 차량 가격이 2320만~3058만원으로 현대자동차의 준중형 SUV '투싼'과 가격이 비슷하다.
상용차로 취급돼 세금도 저렴하다. 배기량이 2200cc인 자동차는 연간 자동차세가 62만9200원에 달하지만 렉스턴 스포츠는 2만8500원에 불과하다. 매년 1월에 세금 10%를 절약하기 위해 자동차세 연납에 신경 쓸 필요도 없다. 전원생활 때문에 실어 나를 짐이 많은 가정이나 가족과 한참 여행을 즐길 30대 초·중반 가장에게 매력적인 선택이 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