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의 수상자들이 결정됐다. 베스트 11에 임재문(경기부양초) 김전태수(경기신곡초) 이재민(신정초) 최준영(진건초) 이윤건(제주동초) 이유민(서울숭곡초) 김연수(대전시티즌 유스) 강현수(서울대동초) 김민혁(울산현대 유스) 고준건(제주 유나이티드 유스) 양승민(서울잠전초)이 선정됐다. 여자 선수로는 유지민(인천가람초)이 이름을 올렸고, 지도자상은 김승제 감독(제주서초)에게 돌아갔다.
독일 분데스리가 전설이자 한국 최고의 축구 스타로 군림했던 '차붐'이 자신에게 받은 사랑을 돌려주기 위해 선택한 일은 '유소년'이었다. 한국 축구 발전을 위한 핵심 원동력으로 유소년 중에서도 초등학생을 바라본 것이다. 1988년 차범근축구상이 탄생한 배경이다.
1988년 1회 시상식을 개최한 뒤 한 해도 쉬지 않고 지금까지 달려왔다. 29회까지 오면서 차범근축구상은 한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유소년 시상식으로 발전했다. 차범근이라는 이름이 가진 영향력과 철저하고 엄격한 심사가 반영된 위상이었다.
자연스럽게 한국 축구 새로운 슈퍼스타들이 차범근축구상을 발판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많은 설명이 필요 없는 한국 축구의 '심장' 박지성(5회)이 1992년 상을 수상했다. '라이언 킹' 이동국(전북 현대·4회)과 기성용(스완지 시티·13회) 등도 한국 축구의 중심으로 자리를 잡았다. 황희찬(잘츠부르크·21회) 백승호(페랄라다·22회) 이승우(베로나·23회) 등 한국 축구의 미래라 불리는 이들도 차붐의 눈에 포착됐다.
수많은 결실을 일궈냈지만 차범근축구상은 안주하지 않았다. 더 나은 방향에 대한 고민을 멈추지 않았고, 더 많은 유소년에게 기회를 주기 위한 변화를 시도했다.
지난해 열린 29회부터 수상자를 대폭 늘렸다. 기존 7명에서 13명으로 확대한 것이다. 남자 선수 11명, 여자선수상 1명, 감독상 1명이다.
핵심은 베스트 11을 선정한 것에 있다. 그동안 선수를 선택할 때 화려함과 기록이 증명해주는 공격 포지션에 집중된 경향이 있었다. 이런 방향을 과감하게 틀었다. 전 포지션에서 1명씩 발탁해 베스트 11을 꾸렸다. 29회 시상식에서 골키퍼가 처음으로 수상하게 된 이유다.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 공격 포지션에 갇혔던 시선을 거두고 전 포지션에서 좋은 선수를 발굴하겠다는 차붐의 의지였다.
그리고 또 하나의 커다란 변화가 일었다. 29회 수상자들이 독일로 향한 것이다.
차붐은 항상 "내가 더 어릴 때 유럽으로 갔다면 더 큰 선수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유소년들이 더 빨리 유럽을 경험할 수 있게 해주고 싶다"고 강조해왔다. 이 철학을 실행에 옮겼다.
지난해 7월 차범근축구상 수상자 11명과 대한축구협회 추천 3명은 '팀 차붐'이라는 이름을 달고 독일 원정을 떠났다. 약 2주 기간 동안 독일 아우스크부르크, 다름슈타트, 프랑크푸르트 유스팀과 격돌하며 유럽을 경험했다.
30세가 된 차범근축구상은 다시 한 번 성장했다. 30회 시상식에서는 '대상'이 사라졌다. 29회 동안 가장 빼어난 활약을 한 선수 1명에게 대상을 수여했지만, 이번에는 대상을 따로 수상하지 않는다.
이 역시 차붐의 철학이다. 어린 선수들에게 순위를 매기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팀'을 강조하겠다는 의지다. 대상을 수여하면 너무 한 사람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됐다. 수상자 모두 좋은 선수들이기에 공평하게 응원 받기를 바라는 차붐의 진심이 담겼다. 또 어린 선수들에게 팀이라는 것을 제대로 알려줄 수 있는 방법이기도 했다.